서울대 총장 선거의 '희한한 민주주의'

교수 '1인 1표', 직원 '1인 0.1표'... 일부 직원들 "선거 보이콧하고 싶다"

등록 2010.04.14 20:23수정 2010.04.14 20:23
0
원고료로 응원
'이장무 524.7표, 조동성 490.3표, 오연천 450.9표.'

지난 2006년 5월 10일 치러진 24대 서울대 총장 선거 결과다. 그런데 이 선거 결과에서 '독특한 득표수'가 눈길을 끈다. 각 후보의 득표가 소수점 아래까지 계산된 점이다. 민주적 선거의 기본방식인 '1인 1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득표수다.

2006년부터 직원들도 투표 참여... 하지만 직원들은 '1인 0.1표'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권우성

오는 5월 3일, 25대 서울대 총장 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선거로 선출된 총장은 '마지막 직선제 총장'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이후 서울대 법인화 초대 총장과 이사장을 겸임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주 각별하다. 법인화 이후 초대 이사장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관장하며 인사권과 학교운영권을 가질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91년부터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해왔다. 현재는 먼저 선거 몇 개월 전에 '총장 후보 선정을 위한 운영위원회'를 꾸린 뒤 운영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총장후보초빙위원회'를 구성한다. 13명으로 구성되는 '총장후보초빙위원회'는 총장 입후보자들을 검증하고, 총장 후보 대상자를 지명하는 등 총장 후보 선정과 관련된 업무를 맡는다.

이후 총장후보초빙위원회는 5인 이내로 총장 후보 대상자를 지명한다. 25대 총장 선거의 경우 성낙인(법대)·오세정(물리천문학부)·오연천(행정대학원) 교수 3명이 지명된 상태다. 후보 대상자가 지명되면 선거운동을 거쳐 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에는 교수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참여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투표 결과 최다 득표자를 총장에 임명한다.
 
직선제를 실시한 91년부터 일반직원들이 총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전임 교수 이상의 교수들만 총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서울대 안에서는 교수뿐만 아니라 일반직원들도 총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이에 맞서 서울대는 간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평의원회는 2006년 24대 총장선거를 앞두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부 의견을 받아들여 일반직원들도 총장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종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에 참여하는 일반직원들에게는 '1인 1표'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평의원회는 일반직·기능직·기성회직 등 서울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결정했는데, '1인 1표'인 교수와 달리 일반직원들에게는 '1인 0.1표'를 부여한 것이다. '일반직원 1명의 표'는 '교수의 10분의 1'로 계산되는 셈이다.

지난 2006년 24대 총장 선거 당시 투표권을 가진 교수는 1735명, 일반직원은 982명이었다. '1인 1표'의 원리를 따르면 유효투표수는 2717표여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의 희한한 투표방식에 따라 유효투표수는 1833.2표(1735표+98.2표)에 그쳤다.  


"'교수 1표, 직원 0.1표'는 교수 기득권 유지 방식"

이 희한한 투표방식은 오는 5월 3일 치러지는 25대 총장 선거에도 적용된다.

지난 1월 기준, 서울대 교수는 1822명, 일반직원은 1020명이다. 이에 따라 유효투표수는 1924표(1822표+102표)다. 1020명에 이르는 일반직원들이 모두 투표에 참여한다고 해도 이는 '교수 102명'이 투표하는 것과 같다.  

이에 서울대 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 서울대 지부는 '직원 투표권 비율 상향 조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평의원회는 지난 9일 본회의를 열고 '직원 투표권 비율 상향 조정'을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부결됐다.

대학노조 서울대 지부는 "총장 선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으로서 의사반영권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원 투표권 0.1표는 이러한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한 직원도 "교수는 '1인 1표', 직원은 '1인 0.1표'로 계산하는 것은 교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투표방식"이라며 "이것은 결코 민주주의적인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의 최고대학이라는 서울대가 얼마나 권위주의적인지를 잘 보여준다"며 "일부 직원들은 '선거를 보이콧하자'고까지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 총장 선거 #직원 0.1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