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빽 없는 삼팔 따라지, 그게 바로 나여

[새 터 찾아 삼만리 12] 목수들의 하루 일과

등록 2010.04.16 10:12수정 2010.04.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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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재 거푸집을 만들어 완성해 놓은 모습
목재 거푸집을 만들어 완성해 놓은 모습송성영

"어, 어 저기!"


갑자기 목재 거푸집 한쪽 면이 '두두둑' 소리를 냈습니다. 건물이 들어설 주변에 목재 거푸집을 짜놓고 레미콘과 펌프카를 동원해 콘크리트를 붓고 있는데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버팀목이 부러지는 소리였습니다.

콘크리트를 쏟아 붓던 펌프카 작동을 멈추게 하고 목수들과 우르르 달려들어 버팀목을 떠받쳤습니다. 다행히 터진 부분이 50센티미터도 채 안 돼 쏟아져 내리던 콘크리트가 곧바로 멈췄습니다. 

목수들은 서둘러 터진 부분을 수습하고 다시 목재를 잇대 단단히 말뚝을 박아 거푸집을 만들었습니다. 목수들의 팀장인 윤구씨가 터진 부분을 마무리 해놓고 나서 진단을 내렸습니다.

"버팀목을 하나 더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거기가 좀 약했던 모양입니다." 
"이만하기에 천만다행이네요. 다시 뜯어서 작업해야만 하는 줄 알고 진땀 뺐는데."

애초에 터를 다지던 굴착기 기사는 목재 거푸집 기초공사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목재 거푸집에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콘크리트를 쏟아붓게 되면(일반적인 기초바닥 작업보다 지면에서 10센티 정도 더 높게 깔기로 했습니다) 금방 터져버려 다시 작업해야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윤구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걱정 마세요.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끄떡없습니다. 목재로 하면 철제 폼에 들어가는 임대비에 인건비, 공사기간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했던 약간의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굴착기 기사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무사히 기초공사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그 불안감을 감수한 대가로 기초 공사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고 거푸집에서 나온 목재를 재활용하여 건물 틀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수들의 팀장인 윤구씨에 대한 철저한 믿음의 대가이기도 했습니다. 


 거푸집에 받침대를 촘촘하게 세워 놓았지만 콘크리트를 쏟아 부을 때 그 압력을 못이겨 한쪽 면이 터져 나갔다. 다행히 터진 부분이 미세해 곧바로 수습할수 있었다.  목재는 나중에 재활용 했다.
거푸집에 받침대를 촘촘하게 세워 놓았지만 콘크리트를 쏟아 부을 때 그 압력을 못이겨 한쪽 면이 터져 나갔다. 다행히 터진 부분이 미세해 곧바로 수습할수 있었다. 목재는 나중에 재활용 했다.송성영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늘 그랬듯이 식당을 찾았습니다. 일하다보면 먹는 일이 가장 큰일입니다. 집터까지 배달할 만한 식당은 고사하고 마을 근처에 적당히 대놓고 먹을 만한 식당조차 없다보니 공사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도화면까지 꼬박 꼬박 나서야 했습니다.

식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섯 사람이 한 끼 식사를 하려면 최소 3만원. 하루에 10만원의 식사비용이 들어갑니다. 애초에 식사비는 인건비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목수들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팀장 윤구씨에게는 식사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인건비를 적게 책정해 시작한 공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윤구씨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전기밥솥에 쌀과 밑반찬까지 챙겨왔지만 새참을 해먹을 틈이 없었습니다. 목조주택을 짓는 목수들은 보통 한 팀에 넷 다섯 명 정도가 따라 붙는다고 하는데 그 팀을 이끌어야 하는 윤구씨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하루 노동 시간인 8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습니다.

목수들은 팀장을 중심으로 각자 맡은 일을 척척해 나가는 '프로'였습니다. 30대의 젊은 목수들에게는 새참이 따로 없었습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에 잠시 짬을 내 일회용 커피를 마시거나 어쩌다 빵 쪼가리 하나로 참을 대신했고 일하는 도중에는 술을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 먹고자 하는 일인데, 그렇게 철저하게 일하고 있는 목수들에게 빈약한 식사를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매일 같이 반복되는 힘겨운 일을 하는 목수들에게는 충분한 상차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둘러앉은 목수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무리 전남 고흥의 날씨가 포근하다 할지라도 겨울 날씨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춥다는 겨울날씨였고 거기다가 바닷바람이 거세 체감온도가 뚝 떨어져 일하는 데 애를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목수들은 일하기 시작한 지 사나흘이 지나면서 점점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통성냥 한쪽면에 오스카 와일드의 '인간은 오직 노동에 의지해 세상에 편안하게 지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편안을 누릴 수 없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통성냥 한쪽면에 오스카 와일드의 '인간은 오직 노동에 의지해 세상에 편안하게 지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편안을 누릴 수 없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송성영
"어? 이거 우리 고향에서 만든 거네."

논산이 고향인 이종수씨가 식탁 위에 놓여 진 화랑 성냥을 들어 올려 보입니다. 요즘 보기 드문 통성냥이었습니다. 통성냥을 둘러보니 옆면에 아일랜드의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가 썼다는 글귀가 어색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인간은 오직 노동에 의지해 세상에 편안하게 지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편안을 누릴 수 없다.'

힘겨운 노동 끝에 식탁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노동의 신성함을 되새기게 하는 글귀였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몸 하나를 밑천 삼아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편안하게 살 틈이 별로 없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이 오히려 편안한 세상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통해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뒤끝에서 오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그 글귀를 읽게 돼서 그런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있는 글귀처럼 다가왔습니다. 

윤구씨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돈께나 있는 사람들의 번듯한 주택을 지어주고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아주 못된 집주(목수들은 집주인을 '집주'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들은 아예 임금을 떼먹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게 어디 집 짓는 공사 현장에서만 그러겠습니까?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힘든 노동력을 착취한 그들은 번듯한 집에 눌러 앉아 목구멍으로 밥알을 넘기겠지요. 다른 사람들의 땀으로 가만히 앉아 밥알을 넘길 수 있는 그 놈의 목구멍들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글세방에 돌아오면 목수들은 차례대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가벼운 전신 운동을 합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근육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땀 흘리는 사람들은 부러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보 목수인 성훈씨를 제외하고 모두들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이었습니다.

목수들은 하루의 피로를 샤워를 통해 개운하게 날려 보내고 가족들과 안부전화를 합니다. 대전에서 생활하는 이종수씨는 17개월 된 아들이 있다는데 거의 매일 밤마다 영상통화를 하기도 합니다.

더러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더러는 텔레비전을 시청합니다. 마침 사글세방에는 유선 케이블선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글세방 할머니 말로는 예전에 서너 달쯤 사글세를 살다갔다는 약장수가 설치해 놓았다고 합니다. 여러 편의 영화 파일이 담겨져 있는 윤구씨의 노트북은 텔레비전 역할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집 짓는 현장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는 목수들을 위해 텔레비전까지 시청할 수 있는 노트북을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체력 좋은 윤구씨는 공사 현장에서는 팀원들을 이끌어가며 일머리를 척척 진행해 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팀장이지만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으면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청년이 됩니다. 그는 노트북에 영화와 함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저장해 놓고 즐겨 보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영락없이 말 많은 노인네가 되기도 합니다.

"저런 정치하는 인간들을 순 사기꾼이라니..."
"어이구 저 여자가 다 알고 있는데, 거기 숨어 있다고 모르나?"

강원도 두메산골이 고향인 그는 구수한 사투리를 뒤섞어 혼잣말로 중얼 중얼거리며 텔레비전과 대화를 합니다.

나는 체력 좋은 윤구씨 옆댕이에 누워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보다가 가물가물 눈이 감겨 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처럼 작은 화면 안에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영화 속에 큰 집이 보이고 큰 거실이 보입니다. 내가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사람 사는 데 고래등 같이 큰 집이 뭔 소용이 있는가? 그저 빗물 새지 않고 등 따숩고 배부를 수 있는 집이 있으면 그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곤하게 잠에 떨어집니다. 어째튼 그날, 목수들의 노동력에 비하면 새 발에 피에 불과했지만 노동을 했기 때문에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집 자리에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을 이용해 목조건물 틀을 짜기로 했는데 목재가 도착하지 않아 하루 일을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목수들은 고흥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 유람을 나섰고 나는 바다낚시를 나서기로 했습니다. 집 짓는 동안 목수들에게 횟감을 마련해 주겠노라 큰 소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낚시 미끼를 사기 위해 도화면으로 나섰는데 때마침 장날이었습니다. 도화면에는 3일과 8일, 전통오일장이 서고 있다는데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장터 분위기는 한가했고 장에 나온 물건들은 대부분 해산물들이었습니다.

3, 8 오일장을 기억해 두기 위해 화투패 두 장으로 끗발을 가리는 '섯다 판'의 삼 팔 따라지를 대입시켰습니다. 끗발 좋은 '삼 팔 광땡'이 아닌 '삼 팔 따라지'. 육이오 민족 전쟁 당시 이북에서 이남으로 피난 온 사람들을 끗발 없는 '삼 팔 따라지' 인생이라고 했었습니다. 돈도 빽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도 빽도 없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흥 땅에 집 한 채 달랑 짓고 빈손으로 정착하려 하는 내 처지가 그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싸가지 없는 생각이지만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을 것이었습니다.

 집터 주변 바닷가 곳곳에 갯바위 낚시터가 있다.
집터 주변 바닷가 곳곳에 갯바위 낚시터가 있다.송성영

갯지렁이를 사들고 바다로 나섰습니다. 집터에서 부터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모래와 자갈이 섞인 해변이 있고 그 옆으로 갯바위가 늘어서 있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낚시 바늘을 던져 놓았는데 영 소식이 없었습니다. 찬바람을 맞아가며 서너 시간 동안 겨우 놀래미 한 마리 건져 올렸는데 그걸 가져오기가 민망해 바다에 놓아주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가을 집터 주변 갯바위에서 팔뚝만한 숭어와 깔다구(농어 새끼)에 감성돔까지 낚았는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사실 그때는 바다낚시꾼과 동행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아무리 날씨 따뜻한 남녘 바다 고흥이라 해도 겨울철에는 낚시가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차가우면 물고기들이 움직이지 않아 입 앞에 미끼를 던져 줘도 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 짓는 기초공사를 마무리해가며 바다낚시의 초보자인 나는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바다를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험이라는 노동력도 없이 거저 얻으려 했으니 바다가 내게 원하는 것을 내 줄리 있었겠습니까?
#목수들의 하루 #노동력 #기초공사 #갯바위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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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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