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 아래 음골에서 월광욕 하는 여인

[역사소설 민회빈강20]음기 센 음곡, 누가 찾아갔을까?

등록 2010.04.22 10:35수정 2010.04.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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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북한산이라고도 불리며 한양의 조산이다. ⓒ 이정근



백두산 정기를 머금은 산줄기가 물을 찾아 내달리다 삼각산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어디로 갈까? 보현봉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튼 줄기는 백악 아래 둥지를 틀고 인왕과 안산을 지나 용산에서 목을 적셨다. 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또 하나의 산줄기는 응봉 아래 보금자리를 마련해놓고 낙산을 지나 청계천에 발을 담갔다.


경복궁의 주산이 백악이라면 동궐의 주산은 응봉(鷹峰)이다. 우뚝 솟은 백악이 권위적인 남성을 연상케 한다면 울창한 숲속에 살짝 솟아오른 응봉은 부드러운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성종 이후,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왕들이 은밀한 후원이 있는 창덕궁을 애용하면서 궁궐에 치맛바람이 거셌다. 음기가 센 응봉과 무관하지 않다.

그 산줄기에 걸터앉은 숙정문이 음기가 세다고 연산과 중종 시대에는 아예 여인네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하지만 몸 하나로 신분 상승을 노려야 하는 후궁들이 살금살금 찾아들었다. 음기를 받기 위해서다. 세인의 눈을 피해 음골을 오가던 궁중 여인들이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소의 조씨가 인조의 총애를 받으며 내명부를 쥐락펴락하자 매봉 음골(陰谷)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뜬소문이 아니었다. 조씨는 음기가 가장 센 한사리 때면 나인을 대동하고 음골을 찾았다. 보름달이 휘영청 걸린 교교한 밤. 우윳빛 속살을 드러내고 월광욕(月光浴)을 하는 여인, 그녀는 소의 조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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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한양 성곽의 북문이다 ⓒ 이정근


응봉은 매봉이다. 매는 평소에 발톱을 감추고 있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발톱을 드러낸다. 사냥 본능이다. 행동에 나서면 실패하지 않는다. 눈이 좋고 발톱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자시가 지난 이슥한 밤. 매봉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전하! 무섭습니다."
소의 조씨가 인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뭐이가 그리도 무섭느냐?"
임금이 조씨를 꼭 껴안았다.

"조금 아까 부엉이가 울었습니다."
품속에 안겨 있던 소의 조씨가 얼굴을 들고 빠꼼히 쳐다보았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눈동자였다.


"밤에는 밤새가 울고, 낮에는 낮새가 우는 것이 상례이거늘 무에 그리 무섭다 하느냐?"
"부엉이가 침소에 날아 들어와 소첩을 할퀼 것만 같습니다."
"걱정이 심하구나."
"정말입니다."
소의 조씨가 인조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때였다. 부엉이가 '부엉, 부엉!' 다시 울었다.

"지금도 무섭느냐?"
인조가 팔에 힘을 주었다.

"아니옵니다. 전하가 이렇게 가까이 계시면 무섭지 않는데 소첩 혼자 자는 날이면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정말이십니까?"
소의 조씨가 몸을 뒤틀며 인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인조의 팔에 힘이 가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죽긴 왜 죽느냐?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더 행복하다."
"숙원에서 소의로 품계를 올려주시고 소첩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해줄 것이 이것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
"열락의 세계도 보내주시지 않았습니까. 호호호."
요기어린 웃음을 흘리던 소의 조씨가 인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은 같이 느끼는 것 아니더냐?"
"꿈을 꾸듯, 구름 위를 거닐듯 소첩을 운우(雲雨)의 락(樂)으로 보내는 전하는 무쇠이십니다."
"네가 여기 있는데 내가 널 어디로 냈다고 그러느냐? 하하하."
"아니, 몰라요, 전하두…."
소의 조씨의 손가락이 인조의 가슴을 후볐다.

"과인도 이제 오십을 넘어 쉰하나 이니라."
인조의 입술에서 버거운 숨이 새어나왔다.

"비록 춘추는 그러 하오시나 옥체는 청춘이십니다."
"허허, 짐을 희롱하면 능멸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인조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바윗덩어리잖습니까?"
소의 조씨의 손이 어느새 인조의 배꼽 아래에 멈춰있었다. 인조의 호흡이 가빠졌다. 조씨의 얼굴도 홍조를 띠었다.

"전하, 경덕궁에 나가있는 중전마마도 찾아주십시오."
조씨가 실눈을 뜨고 눈을 흘겼다. 인조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위한 마음에 없는 말이다.

"중전은 병치레 때문에 나가 있느니라."
"그래도 이십 갓 넘은 젊은 몸입니다. 가끔씩 찾아 주셔야 소첩의 마음이 편하옵니다."
"너무 젊어 과인이 힘들더구나."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을 낳고 용평대군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승하한 인열왕후 뒤이어 맞아들인 장렬왕후는 22세였다.

"소첩도 전하를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넌 과인을 너무나도 편하게 해주어서 항상 귀엽다."
동문서답인지, 우문현답인지 모르겠다.

"어제 밤엔 저도 모르게 올라갔습니다. 황공하옵니다. 무엄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다. 그 누구도 내 위에 올라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너 하나만은 예외다."
합문 밖에서 시위하고 있던 지밀상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가끔씩 올라가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거죠?"
인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소의 조씨가 눈을 치뜨고 인조를 바라보았다. 농염한 얼굴에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가끔씩이 무슨 말이더냐. 매일 올라가도 괞찮다."
"망극하옵니다."
진한 색담이 침소의 공기를 출렁거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은 없었지만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삼각산 #숙정문 #매봉 #음기 #월광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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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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