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57) 진실미(眞實美)

[우리 말에 마음쓰기 903] '성(聖)스럽다'와 '거룩하다'

등록 2010.04.22 14:21수정 2010.04.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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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성(聖)스럽다

.. 이런 짓을 하는 작자들에 비하면, 돈 받고 몸을 파는 매춘부는 성聖스럽게 느껴질 수준이다 ..  <이희진-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소나무,2008) 37쪽


'작자(作者)'는 '사람'이나 '놈'이나 '치'로 고치고, '비(比)하면'은 '견주면'이나 '대면'으로 고칩니다. 또는 "-들을 생각하면"이나 "-들을 떠올리면"이나 "-들을 보면"으로 손질합니다. "느껴질 수준(水準)이다"는 "느껴질 판이다"나 "느껴지곤 한다"나 "느껴진다"로 손봅니다.

 ┌ 성(聖)스럽다 : 거룩하고 고결하다
 │   - 성스럽고 장엄한 감동이 밀려왔다
 │
 ├ 성聖스럽게 느껴질 수준이다
 │→ 거룩하게 느껴질 판이다
 │→ 거룩하게 느껴진다
 │→ 거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거룩하다고 느껴진다
 └ …

보기글에 실린 빗대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몸을 파는 아가씨'들을 '더럽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밑생각이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글을 쓴 분은 이렇게 빗댈 수 있고 저렇게 빗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빗댐은 그다지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썩 알맞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이처럼 빗대는 말투는 몸을 파는 사람을 더 괴롭히거나 짓누르는 말투이며, 사람들 생각을 치우친 쪽으로 뿌리내리는 노릇을 합니다.

 ┌ 성스럽고 장엄한
 │
 │→ 거룩하고 커다란
 │→ 거룩하고 큰
 │→ 거룩하고 대단한
 └ …

외마디 한자말 '성스럽다'는 "거룩 + 고결"이라고 합니다. '고결(高潔)'이란 "고상 + 순결"이라고 합니다. '고상(高尙)'은 "몸가짐이 훌륭함"을 가리키고, '순결(純潔)'은 "깨끗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 말 '거룩하다' 뜻풀이를 살피면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로 되어 있고, '위대(偉大)'는 다시금 "뛰어나고 훌륭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이 말이 되는 셈인데, 한 마디로 하자면 '성스럽다'란 우리 말로는 '거룩하다'라는 소리입니다. 곧, 우리 말 '거룩하다'를 한자말로 '聖스럽다'로 옮겨적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 깜냥껏 꾸밈없이 말하고 스스럼없이 글을 쓰는 틀을 우리 스스로 내치고 있는 셈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거룩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아름답거나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우리들 매무새와 생각은 어떻게 가다듬거나 추슬러야 좋은가요.


생각을 드러내고 마음을 나타내는 말과 글입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은 우리가 꾸려 가는 삶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우리가 부대끼는 모습,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찬찬히 삶이 되어 말과 글로 펼쳐집니다. 높은 일과 낮은 일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높낮이를 세워 놓고 있다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우리 마음결에는 높낮이를 깔아 놓고 있다면, 번드레한 말이요 빛나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조금도 반갑지 않습니다. 하나도 고맙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삶을 찾으며 참다운 넋을 빛낼 노릇이요, 참다운 넋으로 참다운 말을 펼칠 노릇입니다. 참다운 사랑을 하며 참다운 믿음을 키우고, 이러한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참다운 말과 글을 나누어야 할 노릇입니다.

ㄴ. 진실미(眞實美)

.. 주관을 넣으면 넣을수록 진실미(眞實美)는 그 가치를 발휘할 기회를 더욱더 갖게 되는 것이다 ..  <김현승-고독과 시>(지식산업사,1977) 172쪽

'주관(主觀)'은 '내 생각'이나 '글쓴이 뜻'으로 다듬고, "그 가치(價値)"는 "제값"이나 "제 값어치"로 다듬어 봅니다. "발휘(發揮)할 기회(機會)를"은 "뽐낼 기회를"이나 "뽐낼 자리를"이나 "빛낼 자리를"로 손질하고, "갖게 되는 것이다"는 "가질 수 있다"나 "갖게 되는 셈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어느덧 서른 몇 해를 묵은 글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손질하거나 다듬어 봅니다만, 이제 와서 이렇게 손질하거나 다듬은들 무슨 뜻이 있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 글이 발돋움하고 우리 말이 새로워질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분들이 처음부터 좀더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쏟는다면 애써 글다듬기를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시를 쓰든 정치를 읊든 무엇을 하든 글줄 하나에 깊고 넓게 넋을 담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 진실미(眞實美) : 참되고 바른 것이 지니는 아름다움
 │
 ├ 진실미(眞實美)는
 │→ 참되고 바른 아름다움은
 │→ 참과 바름과 아름다움은
 └ …

국어사전에서 '진실미'라는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참되고 바른 것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참되고 바름"일 터이고, '미'란 "아름다움"이겠군요. 우리 말로 하자면 말뜻 그대로 "참되고 바른 아름다움"일 테고요.

문득 궁금해서 '진실'을 따로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진실미'를 "참되고 바른 것이 지니는 아름다움"으로 풀이하는 국어사전에서는 '진실'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요.

 [진실]
  (1) 거짓이 없는 사실
  (2)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한자말 '진실' 뜻풀이에서는 '참'이라는 말마디는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과 '순수'라는 다른 한자말이 보입니다. 그러면, '사실(事實)'이나 '순수(純粹)'라는 한자말들은 '참'과 같은 뜻으로 쓰는 낱말이라는 소리가 될까요. '참'이라고 하면 되는 자리에 '사실'이나 '순수' 같은 한자말을 끼워넣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가요.

흔히 '진선미(眞善美)'를 이야기합니다. 하도 이 말마디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진선미는 진선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진선미'란 '참됨ㆍ착함ㆍ고움'입니다. 한자로 한 글자만 적으면 되니까 이 말마디를 쓰는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글자수가 적다고 해서 쓰기에 좋은 말이 아닙니다. 뜻이 또렷하면서 느낌이 환한 가운데 사람들 누구나 쉽고 널리 알아들을 수 있어야 쓰기에 좋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누군가를 가리켜 '진선미'를 찾거나 살핀다고 할 때에, 이 한자말 뜻 그대로 '참되고 착하고 고운' 세 가지를 나란히 찾거나 살핀다고 할 만한지요. 참말로 참된 삶과 착한 매무새와 고운 모습 세 가지를 골고루 헤아리거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할 만한가요.

쓸 만한 한자말은 써야 합니다. 쓸 만하지 않은 한자말은 안 써야 합니다. 쓰임새가 아름답다면 북돋우고 쓰임새가 얄궂다면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쓰인다고 해서 이냥저냥 생각없이 써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여러모로 쓰인다고 하지만 어영부영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알맞게 삶을 차리고 넋을 차리며 말을 차려야 합니다. 참된 삶을 붙잡고 참된 넋을 사랑하며 참된 말을 즐겨야 합니다. 착한 삶을 북돋우고 착한 넋을 일깨우며 착한 말을 나누어야 합니다. 고운 삶을 아끼고 고운 넋을 보듬으며 고운 말을 펼쳐야 합니다. 나 스스로 참되고 착하며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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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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