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자고 가라는 딸아이에게 미안해요"

세계 120주년 노동절... 아직도 투쟁중인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

등록 2010.04.28 15:40수정 2010.04.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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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가정의날, 일년 열두 달 중 기념일이 많기로 첫 번째 꼽히는 오월. 그만큼 의미 깊은 달인 오월의 첫날 역시 유서깊은 기념일이다. '메이데이'라고도 불리는 노동절. 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야 할 명절이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도 있다. '해고자'라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으로 채용

 공장청산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와 민주노총의 기자회견 모습.
공장청산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와 민주노총의 기자회견 모습. 윤평호

지난 1999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대한공조에 입사한 김명환씨(35.신부동). 1년 임시직으로 입사한 그에게 회사는 한 해 뒤 재계약을 제안했다. 입사 동기 30여 명과 재계약에 서명을 망설이던 참에 정규직 노동조합이 팔을 걷어 부쳤다.

노조는 동일한 일을 하면서 누구는 정규직으로, 누구는 임시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며 회사측에 임시직의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전 조합원이 합심해 싸운 끝에 모든 임시직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노동자와 노조의 힘을 실감했다.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몇해 뒤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명환씨가 맡고 있는 직책은 노조의 산업안전부장. 평조합원에서 노조 간부가 된 10여 년 동안 회사와 그의 삶도 많이 변화했다.

1987년 천안시 입장면에 터를 닦고 출발한 대한공조는 외국계 자본이 참여하면서 젝셀바이오공조코리아로, 2005년부터는 프랑스 자본인 발레오가 지분을 100% 소유하며 발레오공조코리아로 명칭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혼자 몸에서 2006년 결혼해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평생직장이라 여기며 낮에는 공장에서 땀 흘려 일했다. 퇴근 후 가족들과 단란한 일상을 보내며 '이것이 사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 균열이 찾아왔다.


2009년 10월 회사측은 노조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1, 2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조합원 40명과 관리직 전원을 포함해 80여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10월 26일은 공장폐쇄와 청산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퀵서비스로 전 사원에게 해고통지서를 전달했다.

1백80여명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와 5백여명 가족들의 생계는 먹튀 자본의 횡포에 일순간 나락 끝으로 내 몰렸다. 졸지에 해고자 신분이 됐다. 바야흐로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경영진은 자취를 감춘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회사청산철회와 원직복직을 위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해고' 통보

 지난 10일 열린 발레오공조코리아공장 정상화를 위한 가족 단결의 날 행사 모습.
지난 10일 열린 발레오공조코리아공장 정상화를 위한 가족 단결의 날 행사 모습.윤평호

설비 반출 등을 막기 위해 1백여 명의 해고자들은 조를 이뤄 밤에도 한뎃잠을 자며 공장을 지켰다. 명환씨도 집에는 2~3일에 한번씩 들르게 됐다. 창원과 부산 등 전국에 산재한 발레오자본의 다른 사업장을 찾아가 원정투쟁을 벌일때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집에 가지 못했다. 네 살박이 딸 아이와 만나는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얼마 전 원정투쟁 준비를 위해 잠깐 집에 들렀죠. 배낭에 속옷 등 짐을 챙기고 있는데 딸 아이가 다가와 '아빠 집에서 자고 가라', '잠자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딸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참 착찹했습니다."

늦가을에 시작한 회사청산철회와 원직복직의 싸움은 어느새 해가 바뀌고 반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두 번이나 해외 원정투쟁단을 꾸려 발레오자본의 본사가 있는 프랑스에 다녀왔다.

3월에는 1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발레오공조코리아 공장 정상화를 위한 충남지역대책위원회'도 구성됐다. 이들과 함께 천안시청과 충남도의회 등을 방문해 먹튀 자본의 횡포를 고발하고 공장 정상화와 해고 노동자들의 생계안정에 도움을 요청했다. 의욕과 달리 현재까지 눈에 띄는 큰 진전은 없다.

부모님께는 아직 해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께서 회사 사정을 물으면 '열심히 나가고 있다'고 둘러댄다.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고 사실을 부모님께서 아셨을 때 받을 충격을 떠 올리면 차라리 거짓말을 나았다.

생계를 위해 아내는 3월부터 식당에 나가 주방일을 거든다. 혹독한 시절임에도 어려운 내색 없이 오히려 자신을 격려해주는 아내가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김명환씨. 며칠 뒤면 찾아올 세계 1백20주년 노동절. 노동절에 바라는 명환씨의 희망은 소박했다.

"올해는 농성 탓에 어린이날에 아이와 같이 시간을 못 보낼지도 모릅니다. 예전처럼 공장이 정상화되고 다시 출근해 서로 의지하며 일할 수 있으면 지금 못하는 것까지 아이에게 다 갚아야죠."

충남 하루에 7.3명 정리해고
충남노동인권센터 분석결과, 징계해고만 한달에 22명 발생
해고자가 속출하는 상황이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처럼 특정 사업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다. 2008년 한해동안 충남에서는 하루에 7.3명꼴로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월 평균 22명 이상이 징계로 해고됐다.

이 같은 수치는 충남노동인권센터(소장 방효훈)가 고용보험 통계연감과 매월 고용보험 통계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나왔다.

충남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2008년 전국적으로 8만3477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됐고 6천2백15명이 징계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자의 3.2%에 해당하는 2천6백58명, 징계해고의 4.2%에 해당하는 2백63명이 충남에서 발생했다.

실제 충남의 해고자 규모는 이 보다 더 많다는 것이 충남노동인권센터의 설명이다.

방효훈 소장은 "정리해고나 징계해고 이외의 해고자도 상당수 존재한다"며 "고용보험의 통계만으로는 그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방 소장은 "2008년에 충남에서만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으로 퇴사한 인원이 1만8486명에 달한다"며 "명예퇴직자의 경우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계약해지의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정리해고에 대한 위협과 같은 반강제적인 방법 등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71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71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먹튀 자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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