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의료인력 고용 현황. 출처 : OECD보건통계
새사연
이은경 : 이 통계에는 한의사 수가 포함되어 있어 실제 의사 수는 더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의대와 의대생의 수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앞으로 의사의 수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점도 참고해야 한다.
황지원 : 한 사회의 적정 의사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추세로 보면 의사의 수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이나 특정 과로의 쏠림 현상, 또 전문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과 그로 인해 의사 양성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사회 : 의사가 지나치게 많다거나 또는 적다거나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도 많지만, 단순히 의사의 수만을 따지기에는 더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는 얘기로 들린다.
박유원 : 실제 수도권 큰 병원에 가면 의사 만나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 반면에 의사들은 수가가 낮아서 많은 환자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보면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불균형이다.
사회 : 전문의의 비율이 너무 높은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달라.
조남선 : 내가 의대를 다니던 20여 년 전만해도 일반의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문의 자격이 없이는 개원을 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의대 졸업자의 90% 이상이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된다. 일반 진료를 보려고 해도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따야 한다. 문제는 실제 국민들에게 필요한 인력이 양성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느라 세부 분과의 전문의만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지원 :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1차의료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한데 실제 1차의료를 담당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영국에서 지역 의료기관에 속해 일반적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인 지역보건의(GP)도 우리나라 일반의처럼 의대만 졸업한 의사는 아니다.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일반 진료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1차의료를 담당할 전문의를 양성하는 방향이 옳다.
이은경 : 의대 졸업 후 수련 체계가 필요한 것은 맞다. 지적한 대로 의대 졸업 후 의사 자격만 딴다고 해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는 없다. 문제는 졸업 뒤 거치는 현재의 수련 과정이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수련 과정이 반드시 분과로 나뉘어 진행돼야 하는가에 대한 검토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과목은 점점 세분화되는 추세인데 수련을 마친 뒤 실제 그 분야의 진료를 하게 되는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지 않은가. 대부분의 의사들은 병원에서 몇 년 동안 힘든 수련을 받고 나오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감기, 고혈압, 당뇨 등 1차 진료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달현 : 10년 가까이 갈고 닦았던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쓰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낭비다. 따라서 이를 개혁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의 수련 체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치과와 한의사 영역에서는 새로운 수련 체계를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핵심은 어렵게 배운 것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황지원 : 맞다. 각막 이식 같은 고도의 수련을 하다가 개원한 뒤에는 라식수술만 한다면 낭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남선 : 흉부외과 전공의를 하려는 사람이 너무 모자라서 정부가 흉부외과의 수가를 100% 올려주기로 한 일이 있다. 그 뒤로 흉부외과 지원자가 실제로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가슴을 열어 수술을 할 수 있는 대학병원급 이상의 자리가 제한돼 있어 대부분이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은경 : 급성기병상에 필요한 의사 수는 거의 정해져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현재는 이보다 더 많은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달 체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주치의 제도도 좋은 방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출되는 간호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활동 간호사 수사회 : 이번에는 간호사 수에 대해 살펴보자.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왜 유독 간호사만 부족한가.
황지원 : 배출되는 간호사의 수는 적지 않다. 문제는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이 적다는 데 있다.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배출된 인력은 23만 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만 명 수준이다. 10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렇게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보호자가 오줌줄 삽입과 같은 의료 처치를 직접 담당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박유원 : 지나친 경쟁도 원인이다. 병원들이 비싼 의료 장비를 들여오고 병상을 확충하다 보니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많이 뽑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인건비가 전문의에 비해 싸기 때문이다.
조남선 : 그러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입원수가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보통 하루 입원비는 본인이 부담하는 6000원을 포함해 2만 원 정도인데, 이런 비용으로 간호사를 3교대로 운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도 간호사를 몇 명 이상 두면 입원수가를 조금 더 올려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부족하다.
이은경 : 간호 인력에 대한 연구는 이미 상당히 이루어져있는 편이다. 간호사 1명이 봐야 할 환자의 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 등도 이미 마련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기관들이 비급여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고민하기 때문에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정달현 : 미국은 병상 수는 적지만 간호사 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조남선 : 전에 미국인 환자의 맹장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간호사에게 밥을 먹여 달라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힘들면 간호사가 와서 밥을 먹여준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간병인을 쓰거나 보호자가 환자에게 붙어있어야 한다.
박유원 : 지방 중소 병원은 숙련된 간호사를 충분한 만큼 고용하기가 어렵다. 의료 서비스의 질은 당연히 떨어지게 되고 환자들은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들이 줄어드니 결국 중소 병원의 경영 사정은 더 악화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
사회 : 간호 인력의 수급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들이 있다고 했는데,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은경 : 병원 별로 병상당 간호사 수에 따른 등급제를 적용해 간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병원에게는 높은 수가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간호관리료를 현실화하는 방안이나 간병서비스를 보험급여화 해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드는 등의 대안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정책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나친 수익성 경쟁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여야 수익이 나는 구조가 원인인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정달현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의료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싸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와 처치, 또 대규모 병상 확충에 재정의 대부분이 사용되면서, 실제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간호/간병 인력은 늘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몰리고 있다. 진정한 의료의 질은 값비싼 의료 기계가 아닌, 잘 훈련된 의료 인력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 :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병상의 수에서부터 의료기기와 인력에 이르기까지 한국 의료의 인프라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의 의료 자원을 둘러싼 국가의 정책 결정이나 개별 의료기관의 선택이 의료적 요인보다는 영리적 요인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성기병상과 고가 의료기기가 지나치게 많은 반면, 간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 또 수도권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지방 중소 병원들은 운영조차 어려운 현실 등이 모두 한국 의료가 오랜 세월 수익성을 좇아 발전해온 결과라 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환자와 그 가족들, 또 외국의 의료 현실을 경험해본 분들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많은 기대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공유하기
30억 의료기기 '다빈치', 아시아 최다보유국된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