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에서 낮잠을 자는 골목고양이를 만난 아이는 한참 동안 고양이 낮잠을 가로막으면서 놀자고 합니다. 이렇게 이 아이가 골목고양이하고 노는 동안 다른 또래 어린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최종규
헌 빨래기계를 거저로 준다는 사람이 있고, 이제는 빨래기계 한 대쯤이야 돈으로 얼마 치지 않아 집안에 들이기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빨래기계를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냉장고며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빨래기계가 들어오는 일이란 하나도 반갑지 않고 달갑지 않으며 고맙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기계한테 맡기기 싫고, 괜히 빨래기계 냉장고 텔레비전을 키우며 애먼 전기를 더 쓰고 싶지 않아요. 글을 쓰는 셈틀하고 손전화에 밥 먹이는 데하고 밤에 등불 켤 때를 빼고는 전기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우리가 오늘날처럼 전기를 많이 쓰던 날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거든요. 지난날 여느 살림집은 어디나 전기를 얼마 안 쓰거나 없이 살았으며 등불 하나 켜면서 조마조마해 했습니다. 여느 살림집에는 셈틀이란 없던 우리들이요, 빨래기계를 집집마다 들인 지 수십 해가 된 우리 나라가 아닐 뿐더러, 냉장고가 여느 살림집에 들어온 햇수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어느 집이나 손으로 일을 하고 손으로 부대끼며 손으로 얼싸안으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기계를 쓴다든지 돈을 쓴다든지 하면서 내 살림살이를 남한테 맡기지 않은 우리들 발자취입니다. 아이를 키우든 아이를 가르치든 먹을거리를 마련하든 누구나 제 손으로 꾸리던 우리들 살림살이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손빨래를 하며 생각합니다. 이제는 내 이웃집 가운데 어느 집도 빨래기계 안 쓰는 집은 없을 테지만, 이 아침나절에 어느 이웃집이나 빨래를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빨래를 마칠 무렵이면 아이한테 밥을 먹일 테고, 새벽바람으로 일 나가는 집식구가 있으면 새벽밥을 지어서 먹을 터이며, 집식구 모두 아침부터 바깥일을 나가야 한다면 지난밤에 아침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있었으리라고.
이리하여 아침 예닐곱 시부터 낮 열두 시 무렵까지는 골목동네마다 빨래를 하는 때입니다. 이무렵에 집일을 모두 마치고 골목마실을 나서면 동네마다 막 마친 빨래를 햇볕 잘 드는 자리에 널어 놓으려고 부산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열두 시를 넘은 때에 골목마실을 하면 새로 빨래를 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햇볕과 바람으로 거의 다 마른 빨래가 팔랑팔랑 나부끼는 모습을 찾아봅니다. 때로는 바람에 날린 빨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이때에는 슬며시 빨래를 집어들고 탁탁 흙먼지를 털어 빨래줄이나 빨래대에 곱게 얹습니다. 빈 빨래집게가 있으면 집어 놓습니다. 빨래집게로 안 집어서 빨래가 날리는데,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가운데에는 빨래집게가 어엿하게 있는데 깜빡 잊는다든지 집에서 전화가 울리면 그냥 널어 놓고 들어간 채 잊곤 하거든요.
어제 낮에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책쉼터 〈낮잠〉이라는 곳에서 만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제 골목 사진을 보고 사진을 이렇게 잘 찍으려면 어떡해야 하느냐고 묻기에 "제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은 아니고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에요. 다만 날마다 여러 시간을 여러 해 돌아다니면 누구나 찍을 수 있을 뿐이랍니다." 하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느끼고,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내 삶과 이웃 삶을 살피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닌 내 눈썰미에 따라 좋은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굳이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글이 아니라 한다면 언제나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어요. 애써 작품이 되기를 꿈꾸는 그림이나 사진이 아니라 한다면 노상 신나게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마음과 즐기는 매무새인데, 우리들은 좋아하는 마음과 즐기는 매무새를 하루하루 잃고 있다고 느낍니다. 손빨래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고, 손걸레질을 즐기는 매무새를 나날이 잃고 있구나 싶습니다. 두 다리로 마실하는 재미를 잃고, 아이를 안거나 걸리며 키우는 보람을 잊구나 싶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어른인 나부터 신나게 돌아보고 우리 딸아들한테 알뜰살뜰 보여주며 함께 나눌 책 하나 우리 눈길로 살피어 장만한 다음 같이 읽기란 어려운 노릇이겠지요.
(2) 그림책 <내가 라면을 먹을 때>에 담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