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에는 홍등들이 건물과 거리에 넘쳐났다.
박금옥
1883년 인천이(당시 제물포) 개항되면서 일본, 청국,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청국인들은 1882년에 군역 상인 40여명이 최초로 들어온다. 그것을 필두로 일본 조계지와 청나라 조계지, 서구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조계지란 자유로운 거주와 통상활동이 보장되는 곳이며 더 나아가 치외법권 구역이다.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해는 프랑스 조계지였다고 한다. 그랬기에 일본의 구속을 피해 활동을 할 수 있었단다. 인천에 형성되어 있던 각국의 조계지는 30년간 존속되다가 1914년에 모두 폐지되었다.
조계구역은 응봉산(지금의 인천 자유공원)일대였다고 한다. 나중에 자유공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인천항과 차이나타운거리와 일본의 조계구역들의 경계가 어렴풋이 한 눈에 들어왔다. 차이나타운은 홍등을 단 음식점들로 가득했다.
관광객들은 자장면(꼭 자장면만은 아니겠지만)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고,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 만치 인기 있는 거리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초로 자장면을 팔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공화춘'이라는 건물은 보수 중이었다. 인천 중구의 지역특구 개발정책에 따라 '자장면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