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맞는 가족여행은 조촐해도 즐겁다!

경춘선을 타고 강촌을 다녀오다

등록 2010.05.25 20:06수정 2010.05.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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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5월 21일 초파일) 때 가족들과 함께 기차여행을 했다. 장성한 딸들이 적극 동참해 주어서 고마웠다.

연휴인 만큼 붐비는 도로를 생각해서 자동차로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자는 남편의 의견에 모두 동의를 한다. 작은 딸은 먼 기차여행이 좋단다. 큰딸은 지루해서 싫단다. 이런저런 조율 끝에 만만한(?) 경춘선을 타고 강촌을 가기로 했다. 작은딸은 "헐~ 너무 짧다"고 말은 했지만 크게 불만을 토하지는 않는다. 경춘선은 부모세대인 우리나 자녀세대인 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딸들도 학교에서 엠티라는 것을 가게 되면 거의가 경춘선을 이용해서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차예매를 깜빡했다. 휴일 전전날에 부랴부랴 철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거의 모든 시간이 매진이다. 그렇다고 입석으로 가기에는 벅찬 거리다. 매진이 안 된 시간을 찾아보니 아침 첫 차 6시 25분 것이 남아있다. 준비해서 나갈 시간까지 따진다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큰 딸은 모처럼 휴일에 늦잠 좀 자고 싶단다. 교회를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일요일이 아닌 공휴일은 나무늘보처럼 늘어질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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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폭포로 오르는 길 ⓒ 박금옥


"다행히 토요일이 휴무 날이잖아, 그날 늦잠 자라. 그리고 우리가족의 장점이 뭐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잖냐"고 꼬였다. 옆에 있던 작은 딸이 이제는 컸다고 "지금은 올빼미가 되었는데" 한다.

아주 가볍게 움직이기로 했다. 냉동실에 잠자고 있던 쑥 개떡 몇 개와, 냉장고에서 자리차지하고 있는 케이크 한 조각, 사과 두 개 깎고, 커피든 보온병을 챙기는 것으로 준비를 끝내고 성북역으로 부랴부랴 서둘렀다. 역전에서 물과 김밥 두 줄을 더 샀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시작점에 선 사람들은 설렘 때문인지 말이 별로 없다. 조용히 도란거리거나 묵묵히 기차를 기다릴 뿐이다. 하기야 새벽 첫 차에 떠들 일도 없을 터. 기차 안에서도 청년들은 모자란 잠을 청하느라 눈을 감고 있고, 오히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인생 이야기들을 풀어내느라 조금 높은 음성들이 오간다. 싸온 음식들을 아침 겸으로 기차에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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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의 구곡폭포 ⓒ 박금옥


강촌에 도착하니 아침 8시다. 계획은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돌아보고 자전거 타기다. 강촌에는 강변을 따라 이륜 자전거, 사륜 자전거, 스쿠터 등을 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엄마, 구곡폭포 좋아?" "좋지, 엠티 올 때들 안 가봤어?" "도착하면 술 푸기 바빠. 우리들은....." 공대생 작은 딸의 말이다.

구곡폭포를 가려면 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든가, 40여 분 걷든가, 버스나 택시를 타야한다. 버스를 기다리니 안 온다. 지난번에 친구들하고 온 기억으로 버스비와 택시비가 비슷했던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한 사람당 천 원씩이다. 버스와 같다.


10여 분 달려서 구곡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매표소의 문도 열지 않았다. 입장료가 굳었다. 우리가족은 아침잠이 없다. 그렇다보니 여행지에서 빗장 걸어 두는 곳이 아니면 아주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난다.

구곡폭포까지의 길은 삼림욕길이다. 평평한 흙길 옆으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아직 사람이 별반 들지 않은 길은 호젓하다. 여름 초입의 숲은 새색시 연둣빛 저고리색이다. 숲에 들어서자 새소리 물소리가 귓가로 확 다가든다. 급할 것 없는 시간이니 걷는 걸음이 마냥 늘어진다. "숲속을 걸어요~" 노래를 부르던 작은딸이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보더니 "캬~ 좋다."고 외친다. 20여분을 걸어서 구곡폭포에 도착했다. 폭포수는 하늘 꼭대기에서 땅으로 내리꽂히고 있다. "와, 구곡폭포가 이런 곳이었어?" 아이들의 탄성은 그칠 줄 모른다. "원래 겨울에 더 볼 만하지, 이 물이 바위 전면에 겹을 치며 얼어붙으면 사람들이 빙벽을 타기위해 오기도 해" 남편은 겨울에 얼음이 얼 때가 더 볼만 하다고 알려준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없다. 맘껏 감상을 하고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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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마을로 넘어가는 길에서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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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턱 아래로 보이는 문배마을 ⓒ 박금옥


이제 문배마을로 넘어갈 차례다. 문배마을은 폭포 위에 있는 마을로 구곡폭포의 발원지인 셈이다. 마을은 폭포 옆으로 연결되어있는 능선 오솔길을 타고 오르면 된다.
그저 옛길을 걷는 듯 할랑거리며 걷는다. 조금 숨이 차는 가파른 산길이나, 모래나 돌길이 아니라 차분한 흙길이다. 산마루턱을 넘어 문배마을로 들어섰다. 약 20여분 걸렸다. 병풍을 친 산 속 분지에 오도카니 들어서 있는 10여 채의 집과 들판이 보인다. 듬성듬성 보이는 집들은 거의 식당 간판을 내걸고 있다. 농사도 짓고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도 하며 사는 것 같다. 마을 한 귀퉁이에 구곡폭포로 떨어지는 생태연못이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사람 소리 적은 마을에 갖가지 새소리가 바글거린다. 연못 근처 나무그늘에 의자가 놓여있다. 그냥 앉아서 제각각의 할 일을 한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쑥을 뜯거나, 민들레 홀씨 날리기를 하거나........자연 속에 하나의 풍경이 되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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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마을에 있는 구곡폭포의 발원지 격인 생태연못. ⓒ 박금옥


그렇게 한 시간여를 보내고 나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마을로 들어선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가족끼리, 혼자서.......다시 구곡폭포 쪽으로 넘어왔다. 이제는 휴일의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문배마을 쪽이나 구곡폭포 쪽이나 왁자하니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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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닭갈비 ⓒ 박금옥


강촌 역 근처 닭갈비집에서 점심을 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달다. 식사 후에는 자전거를 빌렸다. 한 시간에 만 이천 원이다. 그곳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게는 넉넉한 시간을 준다면서 30분을 더 내준다. 딸들은 연인자전거를 빌려서 앞뒤로 탄다. 운동장 면허를 갖고 있는 나는, 연습 차원에서 별도의 자전거를 빌렸다. 뒤에서 남편이 코치를 한다. "어깨 내려라" 긴장하면서 타다보면 저절로 어깨가 올라가 있다. 그것이 보이니 잘 타는 사람들이 보면 웃길 것 같다. 그러다 결국 사고를 냈다. 쓰고 있는 모자가 앞으로 내려오기에 한 손을 자전거에서 떼는 순간 갈팡질팡 자전거와 함께 춤을 추다가 무릎을 땅바닥에 '퍽'소리 나도록 부딪쳤다. 자전거 바구니에 들어 있던 쑥이 공중부양을 한다. 일순간 경직이 되어 있던 가족들은 다행히 별일 없이 웃으며 일어나는 엄마를 보고는, 그제야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던 모습과 쑥의 흩어짐에 대해 "어머니, 큰 웃음 주셨습니다"며 깔깔거린다. 무릎은 퍼렇게 멍들었다. 아이들은 계속 구곡폭포까지 내달리고 우리들은 숲에서 쉬었다.
근처 계곡과 카페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 25분 기차를 타기위해 강촌역으로 나왔다. 오후가 될수록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거개가 엠티를 온 젊은이들 같다. 활기찬 그들로 해서 강촌이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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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에서 춘천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 ⓒ 박금옥


아침과 다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풀어져 있다. 얼마나 즐거웠는가를 서로 시샘하듯 무용담으로 쏟아 내느라 장바닥 같다. 그 속에 우리도 보탬을 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여행이었지만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에 자족하며 기차에 앉자마자 노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들의 가족여행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경춘선 #강촌 #구곡폭포 #문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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