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자 김진 칼럼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중앙일보
"'만약 너희가 도발하면 우리는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의 모든 핵심 목표를 폭격할 것이다.' 그래도 과연 북한이 장사정포를 쏠까. 만약 그래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일까.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북한 정권에 지진(地震)이 되어 자유민주 통일의 기회가 앞당겨진다면 그것이 나쁜 일일까."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이 지난 24일에 쓴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칼럼이다. 뉴미디어 학자로서 진단하건대, 김진 위원은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게임이나 영화의 이미지를 현실에 투사하는 '트랜스코딩(transcoding)' 현상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김진 논설위원이 '3일만 참아달라'고 했으니,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게임을 3일만 참아달라고 말이다. 항상 3일째가 어려운 법이지만, 전쟁을 사흘 견디기보다는 쉬울 것이다.
1994년에도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변함 없이 '전쟁불사'를 외치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반도를 전쟁의 포연에서 구해낸 것은 미국 전직 정치인과 언론이었다. 한참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카터 전 대통령과 케이블 뉴스 씨앤앤(CNN) 방송팀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전세계 텔레비전에 방송되자, 미국 정부로서는 북한 공격의 명분을 잃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대화로 상황이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언론인이자 교수 돈 오버도퍼는 저서 <두 개의 한국 (The Two Koreas)>에서 이렇게 분위기를 전한다.
"이를 지켜 보던 미국 정부관리는 카터의 행위가 '반역행위나 다름 없다'며 분개했다. 또 다른 관리는 미국이 경제, 군사제재에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북한이 지연작전을 쓰려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결국 이렇게 천명하기에 이른다. 카터 대통령 때리기에 나서기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331쪽.'기다리는 것도 전략'일까?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현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대북정책은 '기다림의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라니, 내 지난 과거가 갑자기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온 것이 현재의 대치 국면이다.
천안함 사건이 이번 지방자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선거를 통해 북한 정권을 심판하고 싶은 유권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남한 공동체 지도자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동시에 각 정당이 그동안 약속하고 실천해 온 (혹은 실천 안 해 온)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의 남북 대치상황은 대북정책의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당연히 현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경제, 교육, 건강, 복지, 환경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한가하게 기다려도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선거를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투표라는 국민의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제 말도, 글도, 거리의 몸짓도 자유롭지 않게 된 한국사회에서,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사실상 유일한 권력이다.
투표장으로 가서 줄을 서는 것은 분명히 귀찮은 일이다. 훨씬 안락하고 즐거운 유혹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이 지난 선거에서의 '안락한 선택'의 결과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귀찮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투표소로 달려가는 것은 '전쟁불사'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용감한 선택이다. 적어도 말로만 떠드는 건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몇 분만 줄을 서면 2년 반을 훨씬 더 즐겁고 평화롭게 보낼 수 있다. 무지하지 않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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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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