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한계

마이클 폴란의 <세컨 네이처>

등록 2010.06.09 14:50수정 2010.06.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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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자라나는 풀을 보며 이웃과 이야기를 나눈다. 주변 밭에 풀씨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밭 풀을 '관리'해야 한다는 건 농부에게는 상식이다. 문제가 좀 있다. 이게 좀 폭력적이고 획일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간단하게 '독약'을 뿌려서 해결하고 만다.

 

독약이 싫다면 심은 작물이외의 풀들을 모조리 손으로 뽑아 주어야 하는데 뙤약볕 아래 수백평의 대지 위를 쪼그리고 앉아서 팔을 쉴 새 없이 놀린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일이다. 게다가 이 풀들의 번식력은 얼마나 좋은지, 뿌리는 또 얼마나 깊숙이 내리는지 인간의 힘으로 대결이 가능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제초제를 분무기 약통에 들이붓고 화학성분은 거의 막아주지 못하는 엉성한 마스크를 하고 밭으로 향하게 된다. '풀약'은 대부분 뿌리 윗부분을 시들어 죽게 만드는 것이다. 뿌리고 나서 비만 오면 다시 솟아나는 풀들이 보기 싫은 과격한 농부들은 뿌리까지 확실하게 죽이는 독한 약을 쓰는 수도 있다. 효과는 좋아서 며칠 후면 깨끗해진(?) 농토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무엇을 위한 '가꾸기'인가

 

 지구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고 자연과 손잡은 인간의 역할을 논한다.
지구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고 자연과 손잡은 인간의 역할을 논한다.황소자리
지구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고 자연과 손잡은 인간의 역할을 논한다. ⓒ 황소자리

열심히 농사지어봐야 마땅히 돈이 되지 않고 그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짓는 농사꾼들이 대부분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면적을 더 넓히고 관리의 영역을 전문화하기 위해 단일화 하는 작업이 가속된다. 점점 젊은 농군들에게 할당 면적은 넓어져가고 이들을 한번에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계화화 함께 살충제, 제초제(풀약, 벌레약) 사용은 필연적이다.

 

그 해악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지만 지긋지긋한 환경주의자들의 공격을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다. 누가 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수작업으로 작물관리를 하는 것은 바로 돈으로 연결되거나 자신의 몸이 축나서 결국은 병원비가 들어가게 되는 결론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약으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수확량을 조절하고 필요하지 않은 식물들을 제거하는 지금의 방식은 큰 화를 불러올 조짐을 가지고 있다. 토양은 '흙'이 가지는 성질 중  좋은 것은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냥 뿌리와 줄기를 지탱할 뿐, 미생물도 균도 지렁이도 곤충들도 살고 있지 않은 '광물'이 되어버린다. 이런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화학비료와 퇴비가 필수적이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병충해는 극심해지고 결국 더 많은 '약'을 처방하는 악순환이 되고 만다.

 

치열한 생존으로서의 농토를 조금만 벗어나면 새로운 농사법이 활기를 띤다. 도시근교의 작은 평수로 각자의 텃밭을 가꾸는 주말 농부들은 일명 '유기농'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어떠한 종류의 화학약품으로 곤충을 죽이거나 식물을 말라죽게 만들지도 않는다. 필요하면 직접 벌레를 손으로 잡거나 무성히 번지는 잡초들을 골라 뽑아준다.

 

이는 작은 규모의 농사에는 당연시되는 '관행'이다. 규모가 커지고 농업으로 돈벌이를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이런 방식의 농사는 신중히 선택하게 마련이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아직 그렇다는 이야기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문 농업인이 힘들게 지금까지의 관행을 거스르고 있다. 힘을 덜 들이고 풀을 제거하거나 작물에 해를 끼치는 곤충의 번성을 억제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는 것도 농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세컨네이처>는 정원 가꾸기(Gardening)에 관한 성찰이다. 저자의 정원은 두 개다. 이미지로 존재하는 정원과 실재로 미국땅 한 곳에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곳. 상상 속의 정원은 무수히 많은 사례와 자료들로 기준을 잡기에 쉽지 않다.

 

다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비교'의 기준으로 쓸 만하다. 할아버지가 가꾸어온 반듯하고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밭에 대한 기억과 과거 아버지의 집에서 무성히 자연 상태로 방치되던 정원의 모습이 그것이다.

 

지나친 것은 아니한 만 못하다

 

책을 읽으면서 급진적 환경주의자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한편, 파괴되고 다스려지는 자연은 있을 수 없음을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써나간다. 천편일률적인 미국의 울타리 없는 잔디밭 정원(미국의 중산층이 사는 동네의 풍경은 똑같다)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손길이 닿을 때 자연과 만나는 예술에 대한 주장은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원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아파트의 정원은 스스로 가꿀 일이 없다)은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기도 동의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땅의 농부들은 책보다 흙과 가깝고 그곳에서 몸을 놀리고 기계를 움직이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런 류의 책을 접하는 것은 힘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을 만한 독자들은 소수의 '텃밭이나 정원을 가진' 이들이다.

 

'세컨네이처 Second Nature'를 좌표로 보자면 원시림과 일본식정원(미국 앞뜰, 잔디밭정원)의 중간쯤에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무를 식재하고 지나치게 활동적인 일부 풀들과 나무들을 제거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세세한 관찰과 '인간의 손길'이 가져오는 조화로의 한걸음이라 할 것이다.

 

자연농법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나로서는 '방관'과 '관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가치관이 확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또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디쯤에 위치하는게 좋을까.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 하는 것이 좋다는 쪽이다. 때로는 게으름으로 주변의 오해를 사기에 걸맞는 '개인적 미션'을 수행하며 살겠다.

덧붙이는 글 | 세컨네이처Second Nature/ 마이클폴란 지음·이순우 옮김/ 황소자리/ 15,000\

2010.06.09 14:5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세컨네이처Second Nature/ 마이클폴란 지음·이순우 옮김/ 황소자리/ 15,000\

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 지음, 이순우 옮김,
황소자리, 2009


#세컨네이처 #마이클폴란 #정원 #가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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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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