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리의 만남도 '비밀'이 되는 청와대

[取중眞담] '정운찬 해프닝'이 남긴 교훈

등록 2010.06.10 15:58수정 2010.06.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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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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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 남소연

청와대가 연일 '세종시'와 '정운찬'이라는 키워드로 인해 시끄럽다.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들의 말은 부쩍 줄어든 반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억측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

<조선일보>는 9일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세종시 수정안이 옳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이 수용하지 않으면 무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10일에는 '정운찬 해프닝'이 청와대와 총리실을 뒤흔들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이 "정운찬 국무총리가 9일 오전 이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지방선거 참패와 관련해 청와대와 내각의 대폭적인 인적 쇄신을 얘기하려고 했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특히 <조선>은 1면 머리기사에서 "수석들이 다음 일정을 이유로 이 대통령을 다른 곳으로 모신 것으로 안다. 경질 대상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인사 쇄신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느냐"는 총리 측근인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대통령 참모들의 교체를 요구했다는 것은 정치권의 큰 뉴스다. 1994년 4월 이회창 당시 총리는 신설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놓고 김영삼 대통령과 권한 다툼을 하다가 밀려나기도 했다. 여당의 초선의원 몇몇이 모여 청와대 참모들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정운찬 해프닝'은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종로 청사에 출근한 정 총리는 "신문을 안 봐서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고, 총리실도 "일부 언론의 총리 의중과 관련된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 총리가 대통령에게 ▲ 나로호 발사 상황 ▲ 남아공 월드컵 관련 선수 및 교민 안전 대책 ▲ 여름철 홍수 및 재해 대책 등을 보고했지만, 인적 쇄신 얘기가 나올 계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운찬 해프닝'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고위관계자 입에서 시작됐다. 이 관계자가 9일 낮 청와대 일부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오찬에서 정 총리의 의중을 얘기한 뒤 언론들의 취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살이 붙어 '거사설'로 확대된 것이다.

'정운찬 거사설'의 취재원이 권부의 막후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히 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왜 그런 얘기를 했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론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제대로 알리려고 해도 알릴 길이 없는 게 청와대 취재의 현 주소다. 6·2 지방선거 이후에는 참모들까지 전화를 안 받는 일이 많아져서 권력의 의중을 읽어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여당에 회초리를 든 민심은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던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생각을 바꿨는지가 궁금한데,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발언은 "지방선거 이후 정부는 다시 경제회복과 지속성장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 부처는 힘과 의지를 모아 달라"(3일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전부다.

대통령의 상투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친여매체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조차 7일자 칼럼에서 "민심이 소통부재(不在)의 MB정치와 토목 사업투성이인 MB정책에 NO를 선언했는데 MB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경제'만을 되뇌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꼬았다.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청와대 브리핑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박선규 대변인은 10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최근 정치권과 언론, 사회 각계에서 제기되는 목소리들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열어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은혜 대변인도 전날 "각계각층의 의견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있다"는 말을 이미 했다. 김 대변인은 7일에는 정례브리핑 자체를 취소해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아예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회동의 경우,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둘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청와대 밖에서 '정운찬 거사설'을 접한 기자들이 "뭔가 있구나"라는 시각으로 접근한 것도 청와대의 비밀주의가 조장한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꼭꼭 숨기면서도 '대통령 = 경제 살리는 지도자'로 포장하려는 청와대의 상징조작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예정됐던 62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11일로 하루 늦추면서 청와대 밖의 민생 현장에서 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대통령 이미지에도 좋다"는 게 청와대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이러한 모습이 자칫 '국정난제를 회피하는 무책임'으로 비칠 수도 있음은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청와대는 뒤늦게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이버대변인을 임명하는 등 '온라인 민심'을 잡으려는 제스처를 보였지만, 트위터에는 대통령과 참모들을 풍자하는 반응들이 넘쳐난 지 오래다. 선거 패배로 힘 빠진 권력이 대중과 소통하는 데 몇 배의 노력이 들 것임은 분명하다.

청와대와 민심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우려는 청와대 하부직원들 사이에서도 팽배하지만, 청와대 수뇌부에서는 '선거 패배 책임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보전하려는 기류가 팽배하다.

권력 실세들의 고리타분한 생각이 돌아선 민심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정운찬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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