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식물인간,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없어"

"심신상실 상태에 빠져 권리 행사할 수 없어,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칙에 반해"

등록 2010.06.10 18:25수정 2010.06.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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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의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제때 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했더라도, 보험사는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2년) 완성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L(46)씨는 1997년 10월 H보험사의 상해보험에 가입했는데, 1998년 6월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경북 영덕군의 한 국도를 가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오던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L씨 측이 2006년 7월 대리인을 내세워 보험금을 청구하자, H보험사는 "소멸시효기간 2년이 경과했다"며 거부했다.

L씨는 2008년 1월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았고, 그의 처가 후견인으로 지정됐다. 후견인은 "교통사고 이후 현재까지 타인과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로서 생존해 오고 있어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므로 소멸시효가 중단되거나 진행하지 않으며, L씨에 대한 금치산 선고에 따라 후견인이 지정됨으로써 비로소 시효가 진행되므로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인 대구지법 민사23단독 남천규 판사는 2008년 9월 L씨 측이 H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4174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남 판사는 "원고는 사고 직후부터 식물인간 상태가 됐기 때문에 스스로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까지 피고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원고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가 돼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H보험사가 항소했으나, 대구지법 제1민사부(재판장 김성엽 부장판사)도 지난해 5월 "의식불명의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원고가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식물인간 상태인 L씨 측이 H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보험금 청구권은 보험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2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만, L씨는 보험금청구권을 발생시키는 보험사고 자체로 인해 심신상실 상태에 빠져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으므로, 원심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원고의 보험금 청구가 늦은 것에 대해서도 H보험사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L씨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 두 차례에 걸쳐 L씨를 대리해 사실상 후견인 역할을 하던 부친 등에게 보험금 중 일부를 지급했다"며 "이는 L씨의 심신상실 상태로 그가 스스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게 됐지만 원고 측이 그 때문에 굳이 법원으로부터 금치산선고를 받지 않더라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믿게 한 피고의 책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식물인간 #의식불명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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