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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박물관. 꽃과 생활용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 같기도 하다. ⓒ 이돈삼
▲ 쉬어가는 박물관. 꽃과 생활용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 같기도 하다.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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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가 정말 빠르다. 얼마 전까지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친 것 같은데 절기상 '망종'이 지났다. 들판에선 보리 수확과 모내기가 한창이다. 계절이 벌써 여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의 나들이 문화도 계절의 변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어디를 가면 눈도장 찍고 다니기에 바쁜 게 현실. 특히 단체여행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하다. 오늘은 속도전에서 벗어나 쉬엄쉬엄, 싸목싸목 하늘거리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본다.
백운산 자락,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에 있는 '쉬어가는 박물관'이다. 쉬어가는 박물관은 남해고속국도 광양나들목에서 11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박물관은 이 도로를 따라 옥룡면 소재지를 지나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광양시 옥룡면 용곡리 초암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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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박물관. 전시물품을 모두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 이돈삼
▲ 쉬어가는 박물관. 전시물품을 모두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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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부터 여유가 묻어나는 쉬어가는 박물관은 생활사박물관이다. 생활유물전시관을 겸한 찻집이기도 하다. 조경이 잘 돼 있어 수목원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차 한 잔 마시면서 생활유물까지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도 개인이 만든 박물관이다. 전시물품은 주로 오래된 생활용품들이다. 올해 69세 된 조홍헌씨가 공직생활을 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모은 것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손때 묻은 물건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취미 삼아 모으기 시작한 게 지금의 박물관까지 차리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전시물품은 장롱과 반닫이에서부터 떡살, 절구통, 농기구 등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던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종류만도 1000여 가지가 넘는다. 그 가운데서도 반닫이가 눈길을 끈다. 이 반닫이에는 오래 전 사고 팔았던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종이로 만든 안경집도 있고, 조선시대 서당에서 먹물로 쓰고 지운 서판도 있다. 서판은 요즘의 칠판에 다름 아니다. 떡방아를 찧고 떡을 만들었던 돌 떡판 그리고 폐종이로 만든 갓집, 나무로 만든 가방도 있다. 모두 전문 박물관에서조차 눈독을 들일 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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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갓. 못 쓰는 종이로 만든 것이다. ⓒ 이돈삼
▲ 종이갓. 못 쓰는 종이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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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숯을 넣고 찻물을 끓여내던 차화로, 놋쇠로 만든 상, 각양각색의 호롱불도 있다. 60년대 계산기, 50년대 교과서 그리고 '진달래' '희망'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옛 담배도 볼 수 있다. 나막신, 먹통, 담뱃대, 재봉틀, 축음기, 물레, 물지게, 주판, 멱서리, 대로 만든 반짇고리함, 각종 농기구까지 전시물품은 셀 수도 없다. 모두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마구 버려지고 태워졌던 것들이다.
전시품 역시 보통의 박물관과 달리 유리상자 안에 갇혀있지 않다. 집 안과 밖, 계단, 정원 곳곳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풍경 속에 전시품이 자리하고 있고, 전시물품이 풍경이 되기도 한다. 생활용품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다. 누구나 쉽게 만져보며 손끝으로 촉감을 느껴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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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박물관. 고목이 된 모과나무와 매실나무가 있는 야외 정원 같다. ⓒ 이돈삼
▲ 쉬어가는 박물관. 고목이 된 모과나무와 매실나무가 있는 야외 정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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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박물관.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탁자가 눈길을 끈다. ⓒ 이돈삼
▲ 쉬어가는 박물관.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탁자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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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박물관 건물 안에서도 마실 수 있고 밖에서도 마실 수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야외 그늘에서 마시는 이들이 많다. 박물관 풍경도 정말 아름답다.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박물관을 감싸고 있다. 정원에는 수십 가지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400살 된 모과나무가 있고 160살 된 매실나무도 있다.
조경석도 군데군데 자리 잡고 아름다움을 뽐낸다. 생활용품은 이런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도 옛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것이 있고, 통나무를 멋스럽게 깎아 만든 것도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잔디밭도 드넓다. 야외공원 같다.
박물관 조성은 조홍헌씨 혼자서 20년 동안 한 것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꽃씨를 뿌리고 나무도 심으면서 땀을 흘렸다.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도 한 잔씩 대접하면서….
그런데 찾아온 사람마다 찻집으로 만들면 좋겠다며 권유했다고 한다. 그 의견을 받아들여 재작년부터 차와 간단한 다과를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쉬어가는 박물관이 됐다. 여기서는 생과일주스와 팥빙수, 커피에 와플, 치즈케이크, 토스트 등을 취급하고 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전시물품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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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박물관. 생활유물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생활유물이다. ⓒ 이돈삼
▲ 쉬어가는 박물관. 생활유물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생활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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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박물관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백운산(1218m)은 지리산 반야봉, 노고단 등 지리산의 몇 개 봉우리를 빼고는 전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휴양림은 이 산이 품고 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인공림과 천연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계곡도 좋다. 황톳길 산책로도 조성돼 있어 맨발로 산책로를 걸어볼 수도 있다. 휴양림이니 만큼 통나무로 만든 숙박시설이 있고 야영장도 있다. 야영장에선 오토캠핑도 가능하다. 나들이는 물론 가족 휴가지로도 좋은 휴양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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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염색 체험. 도선국사 마을에서 해볼 수 있다. ⓒ 이돈삼
▲ 천연염색 체험. 도선국사 마을에서 해볼 수 있다.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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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체험을 하고 싶으면 휴양림 앞에 있는 도선국사 마을을 찾아가도 된다. 도선국사 마을은 쉬어가는 박물관에서 백운산휴양림으로 가다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사또가 주로 마셨다는 사또약수와 손두부로 유명한 고을이다.
여기선 모 심기, 찻잎 채취 등 농작물 수확체험을 비롯 손두부 만들기, 차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 천연염색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거리를 운영하고 있다. 고로쇠 약수로 된장과 간장을 담그는 농장도 이 마을에 있다.
먹을거리도 차원이 다르다. 광양은 참나무 숯을 이용해 구워내는 광양숯불구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아주 맛있다. 섬진강 모래톱에서 채취한 재첩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재첩 고유의 시원한 맛이 살아있는 재첩국물 그리고 쫄깃쫄깃한 재첩살을 부추, 고추장, 참기름으로 무친 재첩회무침도 별미다. 도선국사 마을에서 갓 만들어낸 손두부에다 막걸리 한 잔 걸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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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두부. 갓 만든 두부를 김치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 이돈삼
▲ 손두부. 갓 만든 두부를 김치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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