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초대한 주인 아저씨. 이란 사람들은 사교적이었다. 친절을 베풀 때도 적극적이었고, 이방인에 대해 호기심도 있다. 대체로 성격도 밝은 편이었던 것 같다.
김은주
작은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동네처럼 사람들은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는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마침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어서 우리 일행은 남자에게 먹을 걸 파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끼니때를 한참 놓친 우리 모두는 배가 등가죽에 붙어있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머릿속은 먹을 거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절박한 배고픔을 눈치 챘는지 남자는 우리 모두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가 들어선 동네는 생산수단이라야 수로를 이용해서 밭농사 조금 부치고 양 몇 마리 키우는 게 전부라 너도나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남자의 집도 살림살이가 빠듯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살림살이지만 정리정돈이 잘 돼있고, 안주인이 섬세한 사람인지 방을 예쁘게 꾸며놓았습니다.
분홍색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플라스틱 물병이 보였는데 무슨 의도로 그 자리를 지키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을 예쁘게 꾸미고픈 안주인의 의도로 이해했습니다. 작은 텔레비전도 보였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그런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그때는 17인치나 15인치를 봤었는데 그 정도 크기의 텔레비전이 이 집에서는 보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녀는 조금 흥분했습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가져와 방안에 가득 찬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기려는 모양이었습니다. 남자의 아내가 우리에게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며 우리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또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동안 남자와 여동생은 음식을 내왔습니다.
주인 남자는 난과 요거트, 그리고 차를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이들 가족이 점심으로 먹기 위해 남겨두었던 것을 다 내온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배고 고팠던 우린 염치없이 그 난을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가져온 걸 다 먹어치우자 남자는 다시 딱딱하게 굳은 난을 가져왔습니다. 난은 하루나 이틀 걸러 사오는데 먹다가 남은 건 이렇게 말려서 두고 먹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린 이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말린 것은 말린 것대로 고소한 맛이 있어서 좋다며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주인 남자는 야채 한 접시와 치즈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집 음식을 모두 먹어치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한사코 거절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남자는 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전에 마슐레에서 중산층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도 주인은 계속 먹을 걸 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집은 그때 그 집에 비하면 가난한 집이라 먹을 게 난과 요거트 뿐이었지만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대접하려는 마음은 그 어떤 부자보다도 넉넉했습니다. 마음이 부자인 가정이었습니다.
가난한 카라나크에서 물질과 인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30여 년 전 우리나라에는 자동차가 귀했고, 내가 살았던 시골에는 텔레비전도 한 마을에 몇 대 안 되었으며 아이스크림도 아주 가끔씩 장사가 와야 맛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방문한 카라나크의 그 가정집의 경제상황과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심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저녁에 방문한 나그네를 스스럼없이 사랑방에 재워주었습니다. 안면식도 없던 뱀 장사를 재워주기도 하고, 뻥튀기 아저씨를 재워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방문한 카라나크의 가난한 주인아저씨가 낯선 여자들을 방 안으로 가득 초대해 집안에 있던 모든 음식을 나눠주던 것처럼 그때 우리는 인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보면, 아마도 대답은 '아니오'일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걸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우리가 불신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사람 사이의 정은 희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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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으라고 내놓은 음식, 차마 먹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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