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먹으라고 내놓은 음식, 차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란 여행기 50] 천년된 마을 카라나크 서민집을 방문하다

등록 2010.06.11 11:25수정 2010.06.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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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된 마을 카라나크. 지금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흙을 제외한 구조물은 모두 사라지고, 흙집은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예전엔 야즈드 버금가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천년 된 마을 카라나크. 지금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흙을 제외한 구조물은 모두 사라지고, 흙집은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예전엔 야즈드 버금가는 마을이었다고 한다.김은주

 카라나크 옆 마을에서 키우는 양과 염소. 멀리서 봤을 때는 돼지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무슬림의 나라 이란에는 돼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카라나크 옆 마을에서 키우는 양과 염소. 멀리서 봤을 때는 돼지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무슬림의 나라 이란에는 돼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김은주

 카라나크 바로 옆에 위치한 마을로 실크로드의 후예들이 생활하고 있는 작은 마을.
카라나크 바로 옆에 위치한 마을로 실크로드의 후예들이 생활하고 있는 작은 마을.김은주

대상숙소를 나와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카라나크라는 천년된 마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안 살고 있었습니다. 올드시티를 닮은 마을인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창문이나 대문 등 흙 이외의 구조물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곳이 야즈드 버금가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곳으로 오다보면 20㎞ 내지 30㎞마다 무너진 대상숙소가 보였는데 그 대상숙소를 중심으로 생겨난 마을이었습니다. 그 옛날 대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는 영화를 누렸을 것 같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실크로드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되자 대상도 사라지고, 대상숙소를 운명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마을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흙으로 지어진 집들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직도 실크로드의 후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너져가는 흙집 옆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고, 황량한 들판에는 그들이 심어놓은 푸른 야채가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우리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양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푸른 야채밭에서는 까만 차도르를 한 아낙과 농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밭일을 하면서 치렁치렁한 차도르를 걸치는 게 불편할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보기는 좋았습니다. 밀레의 '만종'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황량한 들판을 개간해서 조그마하게 일군 밭에서는 어떤 탐욕도 읽을 수 없었고, 그 모습은 '만종'에서처럼 경건했습니다.

 이란의 서민 가정집 안방 풍경. 나란히 놓인 분홍색 베개와 뒤의 플라스틱 병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란의 서민 가정집 안방 풍경. 나란히 놓인 분홍색 베개와 뒤의 플라스틱 병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김은주

 우리가 대접받은 음식들. 난과 요거트, 그리고 말린 난이 보인다.
우리가 대접받은 음식들. 난과 요거트, 그리고 말린 난이 보인다.김은주

 우리를 초대한 주인 아저씨. 이란 사람들은 사교적이었다. 친절을 베풀 때도 적극적이었고, 이방인에 대해 호기심도 있다. 대체로 성격도 밝은 편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초대한 주인 아저씨. 이란 사람들은 사교적이었다. 친절을 베풀 때도 적극적이었고, 이방인에 대해 호기심도 있다. 대체로 성격도 밝은 편이었던 것 같다.김은주

작은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동네처럼 사람들은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는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마침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어서 우리 일행은 남자에게 먹을 걸 파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끼니때를 한참 놓친 우리 모두는 배가 등가죽에 붙어있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머릿속은 먹을 거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절박한 배고픔을 눈치 챘는지 남자는 우리 모두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가 들어선 동네는 생산수단이라야 수로를 이용해서 밭농사 조금 부치고 양 몇 마리 키우는 게 전부라 너도나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남자의 집도 살림살이가 빠듯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살림살이지만 정리정돈이 잘 돼있고, 안주인이 섬세한 사람인지 방을 예쁘게 꾸며놓았습니다.


분홍색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플라스틱 물병이 보였는데 무슨 의도로 그 자리를 지키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을 예쁘게 꾸미고픈 안주인의 의도로 이해했습니다. 작은 텔레비전도 보였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그런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그때는 17인치나 15인치를 봤었는데 그 정도 크기의 텔레비전이 이 집에서는 보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녀는 조금 흥분했습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가져와 방안에 가득 찬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기려는 모양이었습니다. 남자의 아내가 우리에게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며 우리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또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동안 남자와 여동생은 음식을 내왔습니다.


주인 남자는 난과 요거트, 그리고 차를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이들 가족이 점심으로 먹기 위해 남겨두었던 것을 다 내온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배고 고팠던 우린 염치없이 그 난을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가져온 걸 다 먹어치우자 남자는 다시 딱딱하게 굳은 난을 가져왔습니다. 난은 하루나 이틀 걸러 사오는데 먹다가 남은 건 이렇게 말려서 두고 먹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린 이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말린 것은 말린 것대로 고소한 맛이 있어서 좋다며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주인 남자는 야채 한 접시와 치즈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집 음식을 모두 먹어치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한사코 거절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남자는 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전에 마슐레에서 중산층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도 주인은 계속 먹을 걸 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집은 그때 그 집에 비하면 가난한 집이라 먹을 게 난과 요거트 뿐이었지만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대접하려는 마음은 그 어떤 부자보다도 넉넉했습니다. 마음이 부자인 가정이었습니다.

가난한 카라나크에서 물질과 인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30여 년 전 우리나라에는 자동차가 귀했고, 내가 살았던 시골에는 텔레비전도 한 마을에 몇 대 안 되었으며 아이스크림도 아주 가끔씩 장사가 와야 맛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방문한 카라나크의 그 가정집의 경제상황과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심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저녁에 방문한 나그네를 스스럼없이 사랑방에 재워주었습니다. 안면식도 없던 뱀 장사를 재워주기도 하고, 뻥튀기 아저씨를 재워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방문한 카라나크의 가난한 주인아저씨가 낯선 여자들을 방 안으로 가득 초대해 집안에 있던 모든 음식을 나눠주던 것처럼 그때 우리는 인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보면, 아마도 대답은 '아니오'일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걸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우리가 불신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사람 사이의 정은 희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카라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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