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서야하는 경계병 동고비가 본분을 잊고 둥지는 나몰라라 한 채 은단풍꽃을 따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책속설명
김성호
그런데 날마다 크게 하릴없이 심심했던 모양인지 철없는 수컷은 어느 날 딴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처럼 아예 멀리로 꽃놀이를 나가 한참만에야 돌아온다. 이때를 놓칠세라. 둥지를 탐낸 곤줄박이 한 쌍이 나타나 둥지를 차지하려고 한다. 게다가 전혀 엉뚱한 동고비가 진흙을 물고 제집인 줄 알고 나타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암컷은 이들과 싸우며 상처를 입고 만다. 이 모두 수컷이 제 할일을 내팽개치고 꽃놀이를 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꽃놀이를 마친 수컷이 천연덕스럽게 나타난다. 암컷이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둥지 앞에서 수컷을 향해 날개를 쫙 펴고 몸을 좌우로 흔드는 특별한 행동을 한다. 암컷의 잔소리가 먹힌 것일까? 이후 수컷의 행동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다. 다시 나타난 곤줄박이 부부를 단박에 몰아내는가 하면, 암컷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등 이제까지 안하던 살가운 짓까지 한다. 아마도 반성을 하고 아양을 부리는 걸까?
이 부분까지 읽다가 동고비 부부의 일상이 우리네 부부와 닮았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처럼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웃고 탄복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동시에 저자의 열정에 고마워하며 이런 책이 계속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까지 갖고야 말았다.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관찰일지다.
알 낳아 품던 동고비 암컷, 수컷에게 어리광 부리다둥지를 짓는 과정에 재미있는 일이 또 벌어진다. 동고비 부부가 나타나 둥지를 짓기 시작하자 주변의 또 다른 새들이 오며가며 둥지 안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 풍경이 마치 우리들의 이웃들과 닮았다. 이웃 누군가 집을 고치거나 새로운 누군가 이사를 오면 어떻게 고치는가? 어떤 사람들이 이사를 오는가? 궁금해 고개를 쑥 디밀고 둘러보는 것처럼.
하루 수십 번에서 수백 번, 한 달 가까이 진흙 등을 물어다 날라 입구가 야구공 만한 딱따구리 둥지에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입구를 가진 동고비 둥지가 완성된다. 둥지가 완성되자마자 알을 낳아 품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둥지를 지으며 그토록 악착스럽던 암컷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컷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먹이를 보채는 등 어린 새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암컷이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수컷이 날아와 둥지 밖에서 잠시 기다리지만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둥지 입구의 좁은 통로로 고개를 쑥 집어넣어 어린 새들을 슬쩍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좁은 통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어린 새들과 첫 대면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고 또다시 밖에서 기다립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둥지 안의 어린 새들이 더욱 궁금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둥지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이라 서툰 몸짓으로 몇 번 시도하더니 결국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자신의 어린 새들과 둥지 안에서 첫 상봉이 이루어지지만 오래 있지 않고 나옵니다. 반가움보다 먹이를 구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동고비를 만난 지 59일째(4월 28일) 관찰일지 중에서암컷이 둥지를 짓는 동안 꽃놀이까지 나갈 만큼 한가했던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고 알을 품는 동안 암컷과 둥지를 여왕처럼 살피고 보호하며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초라해진다. 이런 수컷이 안타까운 걸까? 부화가 일어난 첫날, 둥지에서 먹이를 주로 받아먹던 암컷이 먹이활동을 나간다. 그러자 수컷은 새끼를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의 새끼들과 첫 만남을 하게 된다.
"암컷은 역시 암컷입니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비밀 창고를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구로 나와 날아갈 듯 머뭇거리다 고개를 죽 내밀어 바깥 진흙 벽 꼭대기에서 씨앗으로 보이는 것을 빼내 먹더니 바로 둥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한참을 웃었는데 어린 새를 돌보가 위해 그 작은 씨앗 하나로 시장기를 달래고 또 다시 둥지로 들어가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습니다." - 동고비를 만난 지 62일째(5월 2일)의 관찰일지 중에서수컷의 묵묵한 부성애와 암컷의 악착같은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이 두 부분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이 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책을 통해 만나는 동고비 부부의 자식들을 돌보는 과정은 눈물겹도록 감동스럽다(다른 새들도 그렇겠지만).
부화한 지 16일만에 배변 가리는 어린 새들부화한 새끼들이 커갈수록 먹이를 나르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 동고비 부부는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하루 수백 번씩 먹이를 나른다. 그래도 새끼들은 끊임없이 보챈다. 그리하여 동고비 부부는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더욱 바빠진다. 그리하여 날로 더욱 초췌해지고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쉬는 모습이 점차 늘어난다.
깊은 시름과 힘든 일로 지쳐있을 때 자식이 보여주는 대견스러움과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명약이다. 부화한 뒤 처음 얼마간은 엄마 동고비가 둥지 속에 들어가 일일이 배설물을 물어내어다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부화한지 16일째, 어린 새들은 둥지 바깥쪽에 엉덩이를 두고 배설을 함으로써 어미의 일손을 덜어준다. 동고비 엄마도 "이런 맛에 자식을 키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