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47회)

주합루의 종소리 <2>

등록 2010.06.15 09:31수정 2010.06.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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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궁이 한껏 몸을 사린 내금위(內禁衛)는 일종의 금군(禁軍)이다. 태종이 보위에 오른 초기에 만들어졌으나 왕권이 강화되자 엄격한 시험으로 선발된 장번군(長番軍)이었다. 오랜기간 근무하는 군대를 말한다.

처음엔 예순 명이 넘은 병사들로 정예병을 선발했으나 점차 수효가 늘어나 연산군 때는 700명이나 됐으며 왕조에 따라 명칭도 모양을 달리 했다. 중종 때엔 예차내금위(預差內禁衛) 제도를 실시했으며 연산군 때엔 충철위(衝鐵衛)로 개칭됐다.


몇 번의 개칭을 거듭하다 후기에 와 겸사복(兼司僕) · 우림위(羽林衛)에 속했다가 영조 51년엔 용호영에 합류됐는데 숫자는 300인으로 금군 700인 가운데 가장 많았다.

신익수(申益洙)는 내금위취재를 거쳤으므로 목전(木箭) · 철전(鐵箭) · 기사(騎射) · 기창(騎槍) · 검술(劍術)이 남달라 상감의 은총으로 종2품직에 올랐다. 그런 그에게 궁 안 소식을 전해 준 것은 내시부의 대전장번(大殿長番) 김내관이었다.

"나으리께서 오랜만에 궁에 들어오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만 생각한 것보단 궁안 사정이 어지럽습니다."
"그걸 알기에 자넬 만나는 것 아닌가."

"전하께서 왕궁의 직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변화를 꾀한 것은 벽파(僻派)가 일을 꾸미는 걸 막으려는 의도였으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소인이 대전장번으로 크고 작은 일을 살피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이상한 징후가 눈에 띄어 나으릴 청한 것이옵니다."
"말해보게."

"나으리께서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하의 가장 가까운 곳은 액정입니다. 미색이 빼어난 계집들이 들고 나는 걸 감찰하는 내시부는 전하의 가장 밀접한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안심하고 믿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대전장번을 비롯해 대전출입번과 왕비전출입번을 두었고 또한 세자궁장번과 세자궁출입번 그리고 빈궁출입번을 따로 두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전하께서 이렇게 하신 건 오랫동안 내시부를 길들여온 아니 액정서에 몸담은 모든 사람들이 미덥지 못해서입니다. 처음엔 소인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만 박상궁이 대비전에 자주 출입하면서 미색이 빼어난 나인을 여덟이나 가려뽑자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생각을 달리 하다니?"

"겉으론 모든 게 완벽하게 짜여져 누구 하나 끼어들 수 없는 듯 보이나 내명부는 다릅니다. 선대왕 때 궁안을 출입해 온 소격서 쪽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는 점입니다. 그래선지 박상궁은 여덟 명의 나인을 가려 뽑고 그들을 훈련시킬 환관학사를 불러들였습니다."


"환관학사라니 누군가?"
"향랑공(響廊公)입니다."

향랑공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은 내시부에 꿈틀거렸다. 조선의 왕실도 중원과 다름없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나인을 선발했다. 왕가에 따라 차이가 났지만 선대왕 때엔 <방호외사(方壺外史)>가 모본에 채택됐다. 그러나 정조 때엔 같은 동파의 책이긴 하나 방중술의 원조인 장삼봉(張三峯)이 손수 지은 책 <삼봉단결(三峯丹訣)>이 모본이었다.

방사에 관한 것만을 주옥같이 엮었는데 그 첫머리엔 역대의 방술사들이 쓴 <현미심인(玄微心印)>이란 게 있었고 행술서엔 <금단진전(金丹眞傳)>이 눈에 보였다.

향랑공이라 일컬음을 받은 오공수(吳供守) 내관의 뒤를 이어 상선(尙膳) 자리에 오른 추성운(秋聲雲)도 뛰어난 재간꾼임엔 틀림없다. 내시교관을 지낸 터였지만 상선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고 그 역시 뛰어난 청각력을 지니고 있어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대비전 깊숙이 서른 자 깊이의 땅을 파 그곳에 항아리를 묻은 채 나막신을 신은 나인으로 하여금 걷게 했다. 또각또각 울리는 소릴 복도끝에서 들으며 나인의 등급을 매겼다.

"상(上)의 중(中)!"
"아하 이 아이는 중(中)의 하(下)일세."

그러다 지난 그믐날엔 원하던 물건을 찾아냈다.
"오라, 이 아이구나. 상(上)의 상(上)이로다!"

그가 액정서로 자리를 옮긴 오경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사흘이 채 못 되어서였다.
"자네가 내시부를 맞게 됐다니 다행스런 일이네. 다름 아니라 지금 내명부에 떨어진 시급한 일이 자네 수중에 있으니 큰일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전하께서 학문에 전념하느라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지 않으시니 이 나라 종사를 위해 큰 일 아닌가. 이백(李白)이 황제의 사랑을 잃자 <첩박명(妾薄命)>을 쓴 건 자네도 아는 일이네만 끝의 두 구절이 내 마음에 납덩이처럼 남아 있으니 답답한 일이네."

평소엔 은총이 넘쳐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참담한 시구를 쓸 수밖에 없는 시기가 다가오자 절망했다.

색으로 남을 섬기는 자(以色事他人)
좋은 시절 얼마나 가랴(能得機時好)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때가 이르렀는데도 사람이 없다 그 말이네. 그런 얘기가 있네. 천리를 달리는 말을 구하려 많은 돈을 내걸었는데 누구 한 사람 찾아오는 이가 없었네. 그때 어떤 이가 죽은 천리마의 뼈를 들고 찾아와 그걸 비싼 값에 사달라고 했지. 이미 죽어 백골만 남은 천리마의 뼈를 비싼 값에 사들이자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졌네. 백골만 남은 것을 비싼값에 사들였으니 살아있으면 얼마나 주겠느냐였네. 그래서 좋은 말을 가진 이가 몰려들었지."

"···."
"이보게 추내관, 이번엔 그 말을 훈련시킬 교관이 없다는 게야. 그러니 천리를 달릴 수 있다한들 뭐하나. 고작 술에 취한 사내나 태워 한가롭게 놀이나 즐기는 것을."

상대가 왜 이런 얘길 하는 질 추성운은 눈치챘다. 자신이 듣기에도 정순왕후 전각의 술사들이 천하의 미색을 구하려 정신없는 건 전하께서 은혜롭게 사랑을 내리길 바란 것일 게다.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인 대비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녀가 상감과 불편한 관계란 점이다. 그렇다면 종사를 위해 후사를 보려는 게 목적이 아님이 금방 드러난다.

"어떤가, 자네 힘을 빌려주겠는가?"
"무슨 일이신지요."

"전하께서 사랑을 나누시어 주합루 종이 울려야 하는 데 여러 날 동안 소식이 없네. 내 <채비록>을 보았더니 신월(新月)이니 금련보(金蓮步)라는 게 눈에 띄었네. 그게 어찌 걷는지는 모르지만 전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방법이 있을 거라 그 말이야."

"그 걸음은 발을 친친 동여맨 전족(纏足)이니 걸음을 걸을 땐 각기 세 조각으로 나뉘어 다른 방향으로 꿈틀대지요. 그렇다보니 방사를 나누어도 속집을 오므리는 힘이 강해 그 즐거움은 대단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도인(悟道人)은 <성사십이품(性史十二品)>에서 속칭 문어발이라 칭하는 용주(龍珠)를 제1로 쳤다. 오경환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법을 약간 틀었다.

"이보시게, 자네가 상의 상이라고 뽑은 아이 말일세."
"이름을 상아(潒兒)라 했습니다."

"그래, 그래. 그 상아 말일세. 그 아이가 그토록 괜찮은 아인가?"
"물건이지요. 앞에만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아입니다. 방년 열여섯이니 상등(上等)이랄 수는 없으나 중등(中等)에 해당돼 전하를 천침하는 건 좋은 일로 보여집니다."

"그 아이가 주합루 종을 울릴 수 있는가?"
"소인은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자네가 공신이 되는 건 떼 놓은 당상이네."
"예에?"

"대비마마가 말씀하시길, 어느 누구든 주합루 종을 울리면 나라에 공을 세운 것이니 상을 내릴 것이라 했네. 일개 내관으로 공신이 되면 집안의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장차 양자로 들어서는 자식까지 음서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네. 어떤가?"

"종이 울리는 것 뿐입니까?"
"한데 말이야. 공신이라 해도 등급이 있잖은가. 삼등공신이라도 괜찮을 것이지만 녹봉과 임야를 자손들이 넉넉히 쓸 정도면 일등공신은 해야지."

"···."
"어허, 이 사람 낯빛이 구겨지는구먼. 그런데 별게 아니야. 자네가 상아라는 아일 전하의 침전에 넣어 주합루 종을 울리면 자넨 일등 공신이 되고도 남네. 허나, 그 이전에 해야 될 일이 있네."

"해야 될 일이라니오?"
"이번에 대전장번(大殿長番)이 된 내관이 있었지?"
"아, 예에. 김내관입니다."

"그 자에게 이번 사실을 알리게. 전하의 침전에 상아라는 아일 집어넣는데 일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미약(媚藥)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이야."
"그리···되면?"

"필경 이 일은 궁에 들어온 신득수의 귀에 들어가겠지. 일개 나인이 미약을 사용하는 건 금물인데다 상아는 대비전 소속이니 계략이 숨어있다 생각할 것 아닌가? 그 자를 칠 절호의 기횔세!"

[주}
∎금군(禁軍) ; 왕을 호위하던 군대
∎겸사복(兼司僕) ; 왕의 신변보호와 왕궁 호위 및 친병(親兵)의 양성을 담당했다. 선발요건은 무재(武才)·용모·학식·신장 등이었으며,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선발했다. 1652년에 금군청(禁軍廳)과 합해졌고, 1755년 금군청은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됐다.
∎우림위(羽林衛) ; 성종 23년 4월 병조의 요청에 의해 신설됐다. 양반의 첩 자손 중에 무재(武才)가 있는 자를 선발했는데 서얼의 진출로를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방호외사(方壺外史) ; 육잠허(陸潛虛)가 쓴 동파의 방술서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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