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순교에 업혀 평안을 꿈꾸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성지' 답사

등록 2010.06.22 11:42수정 2010.06.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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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목요일, 여성문화유산연구회 주최로 시작한 '서울걷기답사'의 마지막 날이다. 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오니 그동안 함께 했던 회원들이 모여 있다. 목적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아 가는데, 아침부터 뜨거운 햇볕과 습도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이제 걷기에는 적절치 않은 날씨가 되었다.


'버들꽃나루'라는 뜻의 양화진(楊花津)은 한양, 제물포, 강화를 잇는 나루터였다. 조선왕조의 인후와 같은 곳으로 교통, 관광, 국방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한강의 조운을 통해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양화진에 모였다가 도성이나 궁궐로 분배되었다. 또 군사적 요충지로도 중요하여 영조 때는 군진을 설치해 이 지역을 방비하기도 했다. 경치도 아름다워 정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양화진은 조선 말 대원군의 척화의지에 따라 초기 천주교도들의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하며, 개화파 김옥균이 능지처참되어 효시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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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공원. '양화진의 옛터'를 기억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장대석.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순교성지 사이에 있다. ⓒ 박금옥

양화진공원. '양화진의 옛터'를 기억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장대석.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순교성지 사이에 있다. ⓒ 박금옥

역 출구로 나와 양화정 정자가 있는 소공원 옆 골목으로 200m쯤 걸어들어 가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나온다. 우선 '100주년기념교회교육관' 1층으로 안내되어 영상물을 관람했다. 경건한 참배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묘역 안에서의 장황한 해설을 자제하기 위함이란다. 반드시 영상물을 관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설 안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묘역을 둘러보고 나올 수도 있다. 양화진을 관리하고 있는 100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 안내와 관련하여 일체의 헌금이나 기부를 받지 않는다"며 그곳에서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원봉사자들이라고 소개한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시작은 1890년이다. 미국 장로교의 의료 선교사인 J. W. 헤론은 내한하여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 조선 말기는 기독교가 불법이었기에 선교사들은 의료, 교육, 자선, 고아원등을 통한 간접선교를 했다. 당시 헤론은 이질로 사망하게 되고 이곳 양화진에 처음으로 매장된다. 


영상은 약 1시간가량 상영했다. 머나먼 이국 낯선 땅에 들어와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하며 애쓴, 이런 저런 순교의 역사를 보면서 눈가가 촉촉해 졌다. 선교사들이 남긴 값진 유산으로 인해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에어컨 바람의 시원함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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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던 언론인 선교사 '베델'의 묘역. 1909년에 안장되었다. ⓒ 박금옥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던 언론인 선교사 '베델'의 묘역. 1909년에 안장되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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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연세대학교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 묘역 등. ⓒ 박금옥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연세대학교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 묘역 등. ⓒ 박금옥

 

묘역을 둘러보기 전에 해설 담당자가 우리 구성원들의 성향을 묻는다. 종교와 무관하게 문화재를 답사하는 단체라고 하니 거기에 맞는 안내를 한다. 묘원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 143명이 안장되어 있고, 고아로 해외 입양되어 외국인 이름까지 받았으나, 그 나라로 가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묘도 자그마한 봉분을 하고 그 속에 있었다.

 

격동의 한반도에 들어와 이 나라를 사랑하며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구현한 선교사들의 족적은 매우 커 보였다. 자신들의 일생을 바쳐 헌신한 그들의 영령에 고개가 숙여졌다. 묘원을 둘러본 후에 그 안에 있는 '양화진홀'도 관람했다. 그곳은 선교사들의 삶과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는 역사의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전시되어 있다. 평일인데도 묘원을 찾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양화진공원', '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는 열린 공간처럼 연결되어 있다. 묘원과 곧바로 이어져 있는 양화진공원에 들어가니 공원 가운데에 네모 모양의 장대석들이 보인다. '양화진(楊花鎭)의 옛터'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영조 30년(1754)에 한강수로를 경비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던 군진으로 해서 한 때 이곳의 명칭이 나루를 뜻하는 '양화진(津)'에서 군사적인 특수지역을 뜻하는 '양화진(鎭)'이 되었던 적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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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절두산순교성지. '팔마를 든 예수상' ⓒ 박금옥

천주교 절두산순교성지. '팔마를 든 예수상' ⓒ 박금옥

 

공원을 넘어오니 곧바로 '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 영역이다. '절두산'의 옛 지명은 '잠두봉'이다.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주변의 빼어난 경치로 해서 풍류객들이 즐겨 찾았으며 한강변의 명승지라 해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한다.

 

1866년(고종 3년)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의 하나로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수천 명의 조선인 천주교도를 처형한다. 그 해  프랑스는 조선이 천주교를 박해했다는 이유를 들어 강화도를 침략하는 병인양요를 일으킨다. 명분은 천주교 박해지만 실상은 조선의 문호개방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 군함은 강화도를 침략해 오기 전에 서울의 양화진까지 올라와 수로를 탐사해 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병인양요는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대원군에게 천주교도들을 박해하는데 힘을 실어주는 촉매제가 되었다.

 

조선 정부는 양화나루가 서양세력에 더렵혀지게 된 것은 천주교도들 때문이라며 수많은 신자들을 잡아들여 잠두봉 근처에서 머리를 자르는 참수를 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머리를 잘라 장대에 걸어 놓는 효수형을 했다고 한다. 그로인해 아름다웠던 잠두봉은 역사적 현장의 피비린내 나는 아픔을 고스란히 내포하게 되는 '절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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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순교성지. 김대건 신부 좌상이 보인다. ⓒ 박금옥

절두산순교성지. 김대건 신부 좌상이 보인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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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서 바라본 절두산(잠두봉)위의 성당. ⓒ 박금옥

한강변에서 바라본 절두산(잠두봉)위의 성당. ⓒ 박금옥

 

성지 안은 평화로워보였다. '팔마를 든 예수상'이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팔마'란 '죽음으로써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데 나뭇잎 같이 생겼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무심치 않도록 나무와 꽃들에게조차도 이름표들을 달아 놓았다.

 

천주교인들은 성지 안을 돌며 기도를 한다. 옆을 지나는 우리들은 조용한 속마음으로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헤아려 본다. 성지 안을 한 바퀴 돌아 한강변으로 나가보니 잠두봉(절두산) 절벽에 세워져 있는 성당은 자연의 한 부분처럼 고요해 보인다. 맞은편 여의도는 안개 때문에 부옇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당산철교 옆으로 국회의사당이 초점 흔들린 사진속의 정물처럼 흐릿해 보인다.

 

예전 사람들의 투박한 삶이 버무려져 있었을 한강변의 나루터를 상상하며, 혹은 한동안 원망과 울부짖음과 소름끼치는 한의 현장이었을 때를 느껴보며, 당산철교 밑 계단을 오르니 다시 성지 안이 되고 순교자 기념비 광장이 나온다.

 

형틀과 절두된 머리를 형상화한 조형물 밑에 순교자들의 단아한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감은 눈과 꾹 다문 입술은 슬퍼 보였으나 순교의 길을 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로도 비쳐졌다. 그곳을 지나면 답사 시작의 자리가 된다. 성지 안과 밖을 모두 돌아본 셈이다. 성지를 나와서 걷는 길 왼쪽으로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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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자 기념비. 형틀과 잘려진 머리를 형상화해 놓았다. ⓒ 박금옥

절두산 순교자 기념비. 형틀과 잘려진 머리를 형상화해 놓았다. ⓒ 박금옥

 

희생과 헌신, 그리고 순교의 역사적 현장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 양화진 일대는 속 시끄러울 때 조용히 찾아와 조근 조근 걸어 보는 것도 좋겠고, 마음 맞는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둘러보기에도 안성맞춤한 곳인 듯싶다.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은 이곳에서는 무의미하다.

2010.06.22 11:42 ⓒ 2010 OhmyNews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천주교절두산순교성지 #양화진 #잠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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