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그림.
느린걸음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 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13∼14쪽)."고 외친 김예슬 님이 당신 생각을 책 하나로 갈무리했습니다. 김예슬 님에 앞서 대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많았고, 김예슬 님 뒤에 대학교를 그만둘 사람도 많을 텐데, 사람들은 '김예슬 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김예슬 님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합니다.
김예슬 님 생각이 담긴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김예슬 저, 느린걸음 출판)는 125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김예슬 님이 대자보 하나를 쓰고 1인시위를 하면서 그만둔 대학 삶을 '짤막한' 대자보로는 모두 밝힐 수 없었기에 '조금 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자격증 장사를 하는 대학교이고, 소비중독으로 내모는 학습중독으로 젖어들도록 하며, 삶은 없이 학문만 가득한 지식인들 모습을 당신한테서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없는데다가 우리들은 88만 원 세대가 아니라고 하는 외침을 한 올, 두 올 담았습니다.
작은 책, 그야말로 작은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에 담긴 줄거리는 어느 하나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 수수한 책에 깃든 생각자락을 모르는 지식인은 하나도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조촐한 책에 서린 아픔과 생채기를 모를 여느 어른이나 교사나 어버이 또한 따로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고 하는 대학 문제는 그치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는 대학 문제는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다고 하면서 대학 문제를 비롯해 교육 문제를 푸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지만 정작 몸으로는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더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팍팍해지는 대학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말·글학자로만 알고 있으나, 교육학자로 오랜 나날을 보냈던 최현배 님은 일제강점기에 '페스탈로찌 논문'을 썼고, 해방 뒤에는 <나라 건지는 교육>(최현배 저, 정음사 출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말글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최현배 님은 1950년대에 진작 '대학입시가 큰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대학입시뿐 아니라 국민학교 입시 또한 몹시 큰 말썽거리였다니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느니 뭐를 더 가르치느니 하면서 떠들썩한 모양새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지난날에는 국민학교 입시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들볶여야 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알파벳을 가르친다고 법석이요 참다운 마음닦이를 하도록 이끌지 못하니,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볶이기만 합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는 내내 최현배 님이 쓴 <나라 건지는 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순 해가 흐르는 동안 '먹고 입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물질문명은 더할 나위 없이 나아졌으나,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는' 마음살이는 그지없이 뒷걸음을 치거나 나동그라지고 있구나 싶습니다. 참다이 나아지지 못하는 이 나라이니,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고,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는 판이기에 곱고 맑은 꿈이 꽃피우기 어렵습니다.
대학교는 대학교다워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살림집은 살림집다워야 합니다. 동네는 동네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새로워진다고 이 하나가 제대로 새로워진다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와 초·중·고등학교와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나란히 새로워지면서 올바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교사만 훌륭해진다고 학생들이 좋을 수 없습니다. 교사를 비롯해 여느 어른 모두와 어버이들이 다 함께 훌륭해져야 하고,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히 가르친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엉망진창이라거나 동네 삶터는 엉터리라 한다면 모든 배움이란 도루묵이요 부질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동네 삶터는 아름답거나 집안 살림살이는 훌륭하다 할지라도 학교가 엉터리라면 아이들은 아주 힘들고 벅찹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와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는 교사를 비롯해 동네 어른이자 형이자 언니이자 누나이자 오빠인 사람 모두 참되고 착하고 고운 길을 살피고 찾고 느끼며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나라 건지는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에 바야흐로 "대학교를 다녀도 좋고 대학교를 안 다녀도 좋은"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 되새겨 읽는 배움말

▲ 최현배 님이 쓴 <나라 건지는 교육>에도 '대학 문제'를 비롯한 우리 나라 교육 문제 이야기가 가득 담겼습니다. 이러한 책에서 다루는 안타까움이 예순 해가 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한 가지조차 달라지지 못합니다.
최종규
김예슬 님 앞서 대학교를 그만두거나 처음부터 안 다닌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김예슬 님은 숱한 '고졸자'나 '중졸자'나 '국졸자'나 '무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력을 으뜸으로 치면서 경쟁주의와 1등주의가 넘실거리는 한국땅에서는 졸업장 하나 안 가지면서 받아야 할 불이익과 손해가 제법 큽니다. 가방끈 짧은 사람한테는 전문 직업인 길이란 거의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직업인이 아닌 살림꾼 자리는 가방끈하고 하나도 얽히지 않습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사랑을 잘하겠습니까. 가방끈이 짧으면 믿음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가방끈이 길어야 아이를 잘 낳을까요. 가방끈이 짧으면 농사를 못 짓겠습니까.
김예슬 님으로서는 주류 권력층 자리에서 스스로 떨려 나왔는데, 주류 권력층을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낮은 자리와 가난한 자리를 헤아리면 한결 너르고 넉넉하며 너그러운 새 이웃과 동무를 만나고 사귈 수 있어 기쁠 수 있습니다. 주류를 살피지 않고 사람을 살피는 자리로 들어선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하고, 권력층을 기웃거리지 않고 못목숨을 사랑하는 자리에 한 발 디딘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한 발을 디뎠을 뿐이지, 걸음을 걷는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디딘 한 발이 튼튼한 걸음걸이가 될 수 있게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디디는 한 발, 두 발이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스스로 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가난한 배움에, 가난한 몸에, 가난한 마음에, 가난한 믿음에, 가난한 말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마더 테레사 님은 '말이 가난해야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하느님 뜻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림과 배움과 몸과 마음과 믿음뿐 아니라 말까지 가난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음고리를 곰곰이 되짚으며 스스로 가난한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알알이 실린 말마디 몇 가지를 추려서 되새겨 봅니다.
[20, 45쪽] 이상했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이 졸업장과 자격증은 도대체 누가 요구하는가?[28, 40∼41, 58∼59쪽] 초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때는 아직 평준화가 되기 전 명문고에 진입하기 위해 시험과 시험의 허들을 넘었다. 그렇게 들어간 명문고에서 다시 명문대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내달려 왔다 …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니 등록금 전쟁이 기다리고, 다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 점점 늘어나는 영어 강의는 얼마나 학문을 이해했는가보다 얼마나 알아들었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30, 43쪽] 쉽게 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을 찾아 들으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피곤하게 논쟁할 일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린 그냥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두기로 착하고 매너있게 관계를 유지하면 됐다. 대학생이 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그나마의 자유는, 그저 20년 동안 공부로 쌓인 것을 다 풀어내겠다는 듯 어른들의 밤거리를 닮은 대학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화가 누구의 손에 돌아가고,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웰빙타령은 하면서도 내가 먹고 쓰는 게 어디에서 길러지고 누가 만드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제대로 연애할 줄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할 줄도 모른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삶에 닥친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에 우리는 얼마나 당혹하고 무지한가? … 돈을 벌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그것 외의 모든 것에 스스로 무능해져 버렸다.[52, 59, 62쪽] 대학은 이제부터 차라리 진리의 전당이기를 당당하게 포기 선언하고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천명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취직도 안 된 청년들을 리콜하든지 손해배상하든지 해야 하지 않은가 … '자격증 장사 브로커'인 대학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똑똑한 불량품'들의 존재가 죽은 대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다 … 대졸자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기대치는 부풀려지고, 과시적인 소비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진다 … 더 기계화되고 도시화될수록, 고유의 개성을 살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는 점점 더 박탈되고 있다.[57, 65쪽] 신문, TV, 인터넷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전파하며 광범위하게 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 직접 시를 쓰고 봉사를 하면서 그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면서 인생 전체에 걸쳐 더 발전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69∼71, 79쪽]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언론이 대응하는 방식과 차원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 사회과학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내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제적 진보는 아닌 듯했다. 제도와 정책은 진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삶의 내용과 생활문화는 한참 후진 듯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장은 옳을지 몰라도 내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과 사람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다 … 왜 '진짜'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민생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생활민심과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 … 내가 접혀 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 지구 시대에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80, 94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대학을 거부한 나의 요구는 88만 원을 188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더 근원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 좋은 일로 성공까지 하겠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성공경쟁이 아닌지. 기아 분쟁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그이들의 존엄한 감정이 자신의 맑은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좀 나직하게 나아갈 수 없을까.[86∼87쪽] 정말 인문학인가? 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삶' 사이는 머리와 가슴보다 더 멀지 않은가. 아무리 사랑'학'을 전공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사랑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린 삶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리속에 집중적으로 집어넣는 인문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나는 나 자신과 친구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접하며 절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인문지식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100쪽] 세상 모든 좋은 부모님들께 부탁 드린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말씀 드린다 …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느린걸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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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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