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인연에 감사하다

우리 집 고양이 카사 이야기(14)

등록 2010.06.22 15:55수정 2010.06.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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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카사가 새 보금자리인 하정화숙 쪽마루에서 방울을 달고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사가 새 보금자리인 하정화숙 쪽마루에서 방울을 달고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도


꿈에 나타난 카사


안녕 카사야!

네가 내 집을 떠나 새 보금자리인 귀래마을 하정화숙(荷亭畵塾)으로 간 지도 벌써 40여 일이 지났구나. 나는 숙면을 하는 습관이라 여간해서는 꿈도 잘 꾸지 않는데 엊그제는 네가 꿈결에 뚜렷이 보이더구나. 이튿날 혹 너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어 너의 새 보호자 박명수 화백에게 전화를 했더니 너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하기에 매우 반가웠다.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잡고 새 삶의 터전에 적응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불쑥 나타나 네 마음을 다시 흩뜨려 놓을 것 같아 꾹 참고 지낸단다. 때때로 나는 네가 몹시도 보고 싶을 때는 컴퓨터에 저장된 너의 이미지 수 백 컷을 모니터에 하나하나 띄운 후 눈시울을 적시면서 지난 추억에 젖는단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 때 두보(杜甫)는 늘그막에 "꽃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고, 가족과 한스러운 이별로 새의 지저귐에도 마음이 놀란다(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고 노래하였는데, 요즘 영판 내가 그 짝으로 한밤중에 네 이미지를 보고는 눈물을 흘린다.

a  카사와 다시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카사와 다시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 박도

지난달 중순, 너를 떨어뜨려 두고 떠나온 지 2주 만에 네가 보고 싶어 하정화숙으로 찾아갔을 때였지. 내가 "카사야!" 하고 부르자, 너는 어디선가 지난날처럼 나타나 반가운 목소리로 "응, 응" 하며 반갑게 대꾸하고는 애무해 달라고 그대로 마당에 드러누웠지. 내가 손으로 너의 온몸을 긁어주자 너는 "그렁그렁" 거리면서 눈을 감고는 마냥 행복해 했다.


"아빠, 왜 나를 이곳에 떨어뜨려 두고 갔나요?"   

나는 그 물음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구나.


어떤 사람은 서로 헤어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런 입에 발린 말로 너를 달래지 않겠다. 다만 그 시점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었다.

너에게는 빵 못지않게 자유도 중요했는데 너도 잠시 살아보았지만 아파트라는 곳은 네게는 감옥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 아니냐? 그렇다고 아파트에서 너를 안흥에서처럼 놓아서 기를 수도 없거니와, 또 그렇게 했다가는 네가 나들이 갔다가 다시 집으로 찾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웃 주민들이 너의 그런 행동을 허락치도, 보고만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a  카사를 다시 만나자 애무를 해달라고 마당에 드러누웠다.

카사를 다시 만나자 애무를 해달라고 마당에 드러누웠다. ⓒ 박도

솔직히 너를 보낸 이후 그동안 내 마음은 많이 아팠단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뚫은 듯 어느 한 분이 글을 한편 보내주었다.

"그전에 충분한 노력과 정성을 다하였다면 그것으로 인연은 다한 것이다. 지금은 마음을 추스르고 희망을 다시 찾을 때다."

그래 카사야, 그동안 우리는 피차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하며 살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단다. 우리가 이제 다시 만난다 해도 또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이 세상 이치란다.

이제는 우리의 인연이 다한 거라고 서로 인정하면서 지난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자. 그러면서 언젠가 다시 인연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이렇게 담담히 현실에 충실하며 피차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인생이요, 묘생(猫生, 고양이의 삶)일 것이다. 

너와 더불어 산 6년 세월 동안 이런저런 추억들이 내 삶을 기름지게 하는구나. 숱한 추억들 가운데 지난해 겨울, 너와 나만 지내던 어느 날 밤 내가 목욕탕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은 뒤 너의 저녁밥을 주고자 입원치 않고 돌아왔을 때다.

그날 의사, 간호사, 보험회사 직원들이 굳이 만류해도 나는 붕대를 감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네가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내 품을 파고 들 때가 지금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져 있다. 그때 털을 깎은 너의 맨살이 내 가슴과 배에 닿았을 때 그 뜨거운 촉감은 아직도 뜨겁게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열기가 너의 진정으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카사야, 아빠는 너와 함께 살았던 지난 인연에 감사한다. 너의 남은 삶이 평탄하기를….

a  내 집을 떠나기 전날 카사의 모습

내 집을 떠나기 전날 카사의 모습 ⓒ 박도


#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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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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