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초등학교 여학생 성폭력 사건 현장을 방문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지용
"서울 경찰이 치안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28일 오후 1시 30분경, 서울 동대문구 모초등학교 1학년 A양 성폭력 사건 현장을 방문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초등하교 여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20일 만에 유사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다시 발생했지만 조 청장은 서울 경찰의 치안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진 조 청장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 청장은 곧장 "그런데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연거푸 두 건이나 발생해 서울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정말 송구하다"고 사과하며,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이유로 경찰의 인력 부족을 들었다.
그는 "3년 전에 비해 경찰 인력이 4100명이 줄었다"면서 "순찰하고 방범하는 일에 그만큼 구멍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율방범대, 녹색어머니회, 부녀방범대의 도움을 받고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상설부대까지 투입해 순찰을 잘해서 완벽하게 (어린이 성폭력 등을) 예방하겠다"고 해결책을 내놓았다.
'강간' 사건인지 '강간미수' 사건인지 청장도 오락가락 조 청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은 계속됐다. 그는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고 일부러 강간미수로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부정하면서도, 이내 경찰 일선에서 축소 보고를 했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표현을 사용했음을 털어놨다. 그는 여기서 두 번이나 말을 뒤집었다.
조 청장은 "형사들이 축소 보고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곧바로 "(형사들이) 심정적으로 축소 보고하고 싶은 마음에 '미수'라는 표현을 썼다"라고 말해 축소 보고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것(이번 사건)은 형법상 '미수'"라며 "그래서 아마 그런 표현(강간미수)을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조 청장은 경찰 일선에서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에"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혼란스러운 기자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그럼 이번 사건은 어떤 법률이 적용되는가"라고 묻자 조 청장은 "강간, 강도 및 강간 미수 사건이고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성폭행'이다"라고 대답했다.
주민들 "아직 범인 못 잡는 경찰, 한심하다" 조 청장의 방문으로 골목에 기자들이 몰리자 동네 주민 20여 명도 밖으로 나와 현장을 지켜봤다. 조 청장이 서울 치안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과 달리 지역 주민들은 치안 상황에 대해 매우 불안해 했다.
조 청장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치고 골목을 떠나자 한 마을 주민은 조 청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며 기자에게 "저 사람은 누구냐"고 되물었다. 서울경찰청장이라는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인제 와서 여기 오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아직 범인도 못 잡고 있는 경찰이 한심스럽다"고 경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A양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송아무개씨(주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송씨는 A양과 동급생인 딸을 데리러 학교에 왔다. 그는 "A양과 우리 아이가 입학하기 전 같은 어린이집을 다녀 A양을 알고 있다"며 "동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불안해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여기는 주변에 작은 공장이 많아 외지인들이 많다"며"최근에 경찰이 순찰을 열심히 다니는 것 같았는데 왜 이런 일이 또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경찰은 용의자가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난 점을 토대로 인근 배달업소 등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A 양의 집에서 채취한 지문 7개 가운데 하나가 A 양 어머니가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으로 밝혀져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문일답] 조현오 서울경찰청장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다" |
다음은 조현오 서울경찰청장과 기자들이 나눈 일문일답.
- 또다시 아동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을 두고 치안에 구멍이 뚫린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서울경찰이 (아동 성폭행) 특별 예방활동을 강화하는 와중에 이런 피해가 있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최대한 범인을 조기 검거하고 예방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지역경찰관을 동원하는 예방활동은 물론이고 경찰 전의경 부대, 경찰 기동대까지도 예방활동에 최대한 투입할 것이다.
변명 같아 말하기 곤란하지만, 2009년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6.6건씩 성폭력 강간사건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치안상황을 보면 인구 10만 명당 살인, 강도, 강간, 절도 등 4대 범죄 발생건수가 485건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케나다 등 세계 주요 7개국의 2008년 통계를 보면 4대 범죄 발생 건수가 평균 2571건이다. 강도 사건은 우리가 그들 나라 평균에 11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런데 유독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는 7개국 평균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 서울경찰은 특히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 성범죄 예방에 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통계 수치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아동 성기호라는 정신병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 도처에 의외로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 사회교육, 학교교육을 통해서 이것을 계속 예방하고 교육을 해나가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가정파괴 현상이라던지 성적위주의 학교교육,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 병리학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아동 성폭행 정말 중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일차적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경찰은 물론이고 법원도 적극적으로 힘을 합해서 성범죄자들이 우리 사회에 발을 뻗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전자발찌 제도라던지 화학적 거세라던지 표지판을 (성폭행범) 주거지에 세우는 것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현장 주변에 CCTV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CCTV 문제도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서울 영등포 모 초등학교 사건 때는 CCTV가 있는데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CCTV에는 다 돈이 들어가지 않는가. 서울교육청에서는 물론이고 서울시에서도 아동 학생들 (성폭행)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찰도 적극적으로 (CCTV 설치를) 요청해서 방범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 또 자율방범대, 부녀 방범대 이런 분들까지도 동원하고, 경찰이 갖고 있는 모든 안전 요소도 동원하겠다.
- 구체적인 지침이나 예방활동을 한다고 했는데 계속 성폭행 사건이 낮에 일어났다. 낮 예방책이 미비하지는 않았나. "대한민국 치안상태에 대해서 통계수치를 가지고 말씀드렸다. 대한민국 경찰, 서울 경찰이 치안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런 사건이 연거푸 두 건이나 발생해 서울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송구스럽다.
그렇지만 이런 예방활동을 하는 데 뭐가 필요한가? 경찰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지 않나? 서울경찰이 인원이 줄고 있다. 3년 전 대비해서 인력이 4100명이나 줄었다. 그만큼 구멍이 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조금 전 말한 것처럼 협력 단체들, 자율방범대, 녹색어머니회, 부녀방범대 등의 도움을 받고,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상설부대까지 투입해 보다 철처히 범죄를 예방하겠다."
- 처음에 이번 사건을 성폭행 미수라고 발표했다. 어떻게 된건가. 수사 초반에 혼선이 있었던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제대로 다 보고를 받았다. 형사들이 축소보고한 것이 아니다. 심정적으로 축소 보고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미수'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번 사건을 형법상으로 보면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것(사건)은 '미수'다. 그래서 아마 그런 표현을 썼던 것 같고, 보고는 제대로 받았다.
우리 형사들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사건 수사를 하고 또 차후 예방을 하는 과정에서 사건을 축소하고 덮어두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법률상은 '미수'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어떤 법률이 적용되는 것인가? "법률상으로는 강간, 강도 및 강간 미수 사건이고 흔히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성폭행이다."
- 오늘 현장에 나온 이유는? "주요 사건에 대한 현장에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나. 진작 오려고 했는데 워낙 기자들이 많을 것 같아 사실 좀 피하려 했는데 자꾸 미룰 수가 없어 이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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