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아름다운 실패

[서평]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등록 2010.06.29 13:26수정 2010.06.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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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주마등 속에서 정치 팸플릿의 슬라이드 한 컷을 기억해 내는 것은 별난 일일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는 안에서 보면 침묵의 바다, 밖에서 보면 폭풍의 언덕"이라는 망명 정객 C의 지하 부정기 유인물 한 대목이다.

 

대체 그것을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까마득하지만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 제목 때문에 의식에 각인된 것 같다. 훗날 그것이 쿠데타 정권이 강요하는 침묵으로 인해 나라 안이 조용한 듯하지만 밖에서 보면 격동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 폭풍은 그쳤나요, 히드클리프……?

아니. 유감스럽게도. 캐시…….

 

일상성과 상품과 판타지가 우리에게 평온을 설득하고, 또 위로해 주고 있지만 여전히 지금 여기는 폭풍의 언덕, 평화 체제가 아니라 정전 체제다. 폭풍의 언덕에 섰던 두 사람의 이상주의자, 평화주의자를 새삼 떠올려 보기로 한다.

 

1954년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는 돈 키호테, 또는 디오게네스, 아니 웬 '미친 놈' 하나가 일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보기에도 참으로 위태롭고 가슴 졸이는 장면이었다. 그는 전쟁 직후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북진통일 반대! 평화통일!'을 외치고 있었다.

 

이듬해 그는 간이 더 부어, 혼자서 밤샘 열정을 바쳐 쓴 평화통일 방안이라는 종이뭉치를 쇼생크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처럼 비닐에 싸서 품고 임진강을 헤엄쳐 건넌다. 북쪽 당국자에게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남쪽이 보낸 간첩으로 간주되어 고초를 겪다 이듬해에 풀려난다. 남쪽으로 돌아온 그는 이번에는 남파 간첩으로 간주되어 고초를 겪고 투옥된다.

 

그가 김낙중이다. <굽이치는 임진강>은 바로 그런 이상주의적 평화주의자의 역정이 담긴 기록이다.

 

그에 관해 덧붙일 말이 있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정당의 선거자금이 북한의 공작금이라는 것이 밝혀져 '진짜 간첩'으로 단죄되었다. 그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지난 36년 동안 간첩으로 암약했다는 것은 부인했다. 그리고 특사로 풀려난 후 최근에야 오래 암약한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었다. 이 모든 그의 아름다운 실패는 이 돈 키호테 선생에 대한 나의 존경과 연민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다.

 

폭풍의 언덕에 살았던 또 한 사람의 이상주의자, 평화주의자를 소개하는 책이 나왔다.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갖은 실패 끝에 마침내 금광 사업에 성공했다. 그는 크게 일으킨 금광을 155만 원에 매각해 50만 원을 농촌 구제 사업에, 12만 원을 광부들의 위로금으로 내놓는 등 80만 원에 달하는 거금을 사회에 환원한다.

 

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평양 숭실전문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자 120만 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선다. 미국 북장로교회의 거절로 학교를 살리지 못하고 대신 120만 원에다가 사재 30만 원을 더 출연해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세운다.

 

해방 후 그는 194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에 조선산업건설협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및 광업부 고문으로 일하다 197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종만이다.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는 제주도에 사는 그의 딸, 구순의 이남순이 아버지 이종만의 삶, 가족사를 돌이켜보면서 약 100년, 3대에 걸쳐 정신의 뼈대로 세워 온 '대동 사상'이라는 염원과 생각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책이다.

 

책의 한 대목이다.

 

"북한의 피폐한 경제현실을 고려하면 이종만의 32번째 사업인 북한의 자원개발 사업 또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서 93년을 살면서 이종만은 단 한 차례도 사업에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이종만의 실패는 매번 아름답고 숭고했다. 그는 28번 쓰러지고 29번 일어나면서도 기필코 사업에 성공해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광부에게 광산을 돌려주려 했고, 일하는 사람이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려 했다.

 

이종만은 부를 누리기 위해 돈을 좇은 것이 아니라 부를 베풀기 위해 집요하게 돈을 좇았다. 그에게 돈은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종만은 자본가 신분임에도 '노동자의 나라'를 표방하는 북한으로 자진 월북했다.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꿈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이종만의 실패는 29번에서 그쳤을는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기 전 마음과 되고난 이후의 마음이 꼭 같은 사람은 드물다. 부자가 되고나면 가난한 시절 품었던 꿈을 잊어버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종만은 부자가 되기 전이나 후나 늘 한결같았다. 이종만의 실패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은이 이남순은 이 책에서 부친의 대동 사상을 이어받아 '영세중립평화통일'의 꿈을 피력한다.

 

이 책에 관해 덧붙일 말이 있다. 이종만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엄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자 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여전히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를 싸매고 이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자 화두다.

 

언덕엔 늘 폭풍주의보. 괴물 같은 거대한 풍차도 돌아간다. 우리가 돈 키호테의 이야기, 이상과 평화를 향해 몸을 던진 '순수의 바보' 이야기를 여전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풍이 잠들지 않고, 저기 풍차가 있으니까.

 

어서 가자, 로시난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2010.06.29 13:2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 북으로 간 아름다운 부자 이종만의 딸 이남순 영혼의 회고록

이남순 지음,
정신세계원, 2010


#평화 #영세중립평화통일 #이종만 #이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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