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당신, 그래도 살기가 힘겨운 이유는?

[조국 교수의 법 고전읽기 ②] 버틀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등록 2010.07.02 13:37수정 2010.07.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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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지난 6월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쳇바퀴 안의 다람쥐가 열심히 뜁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봐야 그 밖으로는 죽어도 못 나갑니다. 뛰다가 멈추면 넘어지면서 그 자리죠. 한국의 국민들과 학생들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언제나 불안에 시달립니다. 이걸 바꾸려면 사회권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개인의 불안함이 사라집니다."

불안한 달리기가 끝없이 강요되는 거대한 쳇바퀴. 조국 서울대 교수가 진단한 한국의 자화상이다. 조 교수는 지난달 29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린 '법 고전읽기' 특강에서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교육, 청년 실업, 내 집 마련, 불안한 노년이라는 4개의 개미지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개인이 삶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한 모든 국민이 불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사회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속도전 개념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영국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교재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조 교수는 러셀이 제시했던 '하루 4시간 노동제'와 보육제도 강화를 통한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를 해결책 중 하나로 소개했다. 조 교수는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파격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제 정치인에게 사회권 의제를 정책적으로 제시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0 한국, 과잉노동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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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 사회평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와 과잉노동 현상을 비판한 에세이집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여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책 내용은 1930년대 영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과잉노동과 노동소외에 대한 부분들은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들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OECD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316시간으로 OECD에서 가장 많다. 이는 OECD 평균인 1768시간보다 548시간이 더 많다.


자살률은 10만 명당 18.7명으로 30개국 중 3위이며 특히 여성 자살률은 10만 명당 11.1명으로 1위다. 조 교수는 "산업재해율도 OECD 1위"라며 "한국은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일하다가 가장 많이 다치며 자살도 가장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성인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오전 8시까지 등교해서 정규수업 종료 이후에도 학교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혹은 학원 등의 사교육을 받고 10시 이후에 귀가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2010년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국가 중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러셀의 '게을러야 한다'는 명제는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며 "기업에서 생산 조직 시스템을 조금씩만 바꿔도 현재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더 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에 이어 최근 포스코에서도 노동정책을 바꿔서 기존 '4조 3교대'에서 '4조 2교대'로 근무 형태에 변화를 줬습니다. 노동자들 휴무일이 연간 90일 가량 늘면서 새로운 고용도 창출됐고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사회권은 쉽게 말하면 '사람답게 살 권리'다. 세상에 '사람답게' 여유 있는 삶을 살자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답게' 여유부리는 시간에 내 생계는 누가 책임져주느냐는 것.

이 질문에 러셀은 '국가'라고 답한다. 조 교수는 "이 지점에서 사회권이 출발된다"며 "경쟁 사회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러셀이 게으름을 찬양한 이유는 이것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의 가장 큰 쟁점이 4대강과 무상급식 두 가지였죠. 진보 진영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들고 나온 후보들이 많았는데 30대 주부들은 아마 (그 후보들을)다 찍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0대 주부들이 가장 힘든 게 그거거든요. 무상급식을 하면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조 교수는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여성을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며 "육아에 드는 비용을 남편이 아닌 국가가 부담하고, 기혼 여성은 수유기와 산후 조리기간 이외엔 가정 밖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표현으로 바꾸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셈이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 말고도 일관되게 4시간 노동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모든 사람이 일을 하면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돈을 벌게 되면 소비가 진작되어 사회가 부유해지며, 여가시간이 늘면 자기 생각을 하는 '주체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조 교수는 "이러한 러셀의 주장들이 최근 남미 국가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는 2006년 집권 후 0~4세 아동에게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수천 개의 국립보육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책이 칠레의 여성 고용을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보육이 해결되니 가임 여성들의 출산율이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돈을 버니까 쓰는 거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실행한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은 2010년부터 브라질 인구 1억 9030만 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500만 명에게 일정 수준의 돈을 그냥 주는 것이다. 브라질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에게까지 돈을 주는 이 제도의 목적은 내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정책을 펴면 국민들의 구매력이 늘어나고 경제가 선순환을 할 수 있다"며 "한국도 이런 정책을 펼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예산 쓸 돈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브라질보다 훨씬 부자 나라입니다. 돈의 규모보다는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건지를 조직해야 하는 거죠. 브라질이나 칠레는 우리보다 경제력이 아래인 나라들입니다. 그들의 실험을 보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죠. 칠레는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고, 볼사 파밀리아는 남미 전체로 퍼져나가려고 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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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취직 안 되는건 당신 탓이 아니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TV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자기 탓인 줄 알아요.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조 교수는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의 대사를 인용하며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한국 국민들 스스로가 사회권을 국가가 시민에게 적선하고 시혜를 베푸는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사회민주주의로 나가려면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반드시 사회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너무 착한 겁니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자기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도 요구도 안 하고 있죠.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디자인 서울'이나 '한강 르네상스'에 지난 4년간 8조 원 가량이 들어갔습니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내라고)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합니다. 국가는 그만큼의 돈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조 교수는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미 대선을 대비해 복지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등 '좌클릭' 행보를 시작했다"며 "진보 진영에서도 사회권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국 #러셀 #사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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