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꿈 꾸더니, 꿈땜 한 번 톡톡히 했네요

교회 예배시간에 늦고, 집 문이 잠겨 열쇠공 부르고...

등록 2010.07.05 11:47수정 2010.07.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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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호주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5일, 한국시각)은 2주 전 겪었던 황당한 해프닝을 털어놓을까 합니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이 그날따라 드물게 늦잠을 잔 것부터가 전조임에도, 날이 날이려고 그랬는지 남편과 저, 두 사람 다 낌새를 못챘습니다.


그날은 일요일, 교회 가는 날이었습니다. 평소보다 출발이 5분 늦은 상태에서 등 뒤로 아파트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차고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빨려들 듯 몸을 날렸습니다.

뛰다시피 차고 앞에 선 두 사람, 그날의 일련의 불운과 막 조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늦었는데 하필 차고 열쇠가 안 달린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올라간 남편이 잠시 후 낭패어린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집 문이 안 열리네."
"왜요?"
"어머니 열쇠를 갖고 왔는데, 복사를 잘못했는지 언젠가 어머니가 외출하셨을 때도 안 열려서 내가 다른 열쇠로 열어드렸거든. 그러고는 다시 복사하거나 아니면 치워 둔다는 걸 깜빡 잊었어."

사태가 '대략 난감'하게 돌아갑니다. 한국을 다니러 가신 어머니 것까지, 현관 앞 열쇠 바구니에 모두 3세트의 열쇠가 있는데 하필이면 그걸 집어올 게 뭐란 말입니까.

일이 꼬이려고 드니 숫제 '꽈배기 공장'입니다


열쇠공을 부르려니 평소 누가 열쇠공 전화번호를 외고 다닌답니까. 집에 들어갈 수가 있어야 한인 잡지에서 찾아볼 텐데 당장은 방법이 없지요. 우왕좌왕 할 것 없이 교회부터 다녀온 후 해결하자는 생각에 한 동네 사는 교인의 차라도 얻어 타려고 주머니를 뒤지는데, 이런, 전화까지 집에 두고 나왔지 뭡니까. 그것도 두 사람 다. 일이 꼬이려고 드니 숫제
'꽈배기 공장'입니다.

또 하는 수 없이 맘을 바꿔 버스를 타고 다음 시간 예배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 30분이나 남았습니다. 그 사이에 열쇠공을 부를 수도 있겠다 싶어 가까운 한국 식품점으로 갔습니다. 잡지를 얻어서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공중전화를 통해 열쇠공에게 연락을 하자는 심사였지요.

하이고, 그건 또 누구 맘대로. 식품점 주인도 교회에 갔는지 10시나 넘어야 문을 연다는 팻말이 걸려 있는 게 아닙니까. 전화번호고 뭐고 다 글렀습니다. 이제는 얌전히 버스를 타고 교회에 가는 수밖에 없고, 버스 타기 전에 식품점에서 잡지만 한 권 집어오면 됩니다.  

심플해진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이 마주 보이는 찻집 창가에 남편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을 시간에 뜻하지 않은 데이트를 하게 된 것입니다. 둘 만의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역시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런 류의 황당한 일을 겪으면 '니가 좀 챙기지, 왜 나만 챙기냐'하면서 말다툼을 하느라 벌어진 일보다 더 불쾌하고 짜증스럽게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그날 우리 부부는 단지 실수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서로에게 신경질 한 번 안 부리고 지혜롭고 성숙하게 대처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기특한지요.

약속 시간 놓쳐 실없는 사람 돼, 문 딴다고 솔찮이 돈 들어가, 거기다 기분까지 나빠보십시오. 얼마나 '열 받겠나.'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 그날의 해프닝

그렇다고 시험이 거기서 끝났냐면 그건 아니고, 당분간은 계속 됩니다. 버스 타기 전, 드디어 문을 연 식품점에서 한인 잡지를 구해 필요한 전화번호를 찾아 공중전화를 걸려는데, 또 무슨 조화인지 투입구에 동전이 아예 안 들어가는 게 아닙니까.

'그래 좋다, 이것이 마지막 시험이겠지...'하면서 남편과 저는 "우리 시험 통과한 거 맞지?" 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는 예배 10분 전쯤 교회에 도착하니 그 사이에 교우의 전화를 빌려 열쇠공과 시간을 정하면 바야흐로 그 날의 수난은 끝나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그러나... 오호, 통재라, 그날따라 버스가 평소보다 '정확하게' 10분이 늦었습니다.
결국 평소보다 10분 늦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서야 간밤의 꿈이 생각났습니다. 학교에 지각하는 꿈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늦었는데도 내심 '어쩔 수 없었다,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하면서 당당하게 교실로 들어갔더랬습니다.

나의 꿈땜을 하려고 애꿎은 남편까지 끌어들인 게 약간 미안했지만 "교회가다 말고 아내와 데이트한 남편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를 외칠 밖에요.

그날 오후 '드뎌' 문이 열렸고, 문을 열어준 고마운 분께 차 한잔을 대접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 덧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그 날의 해프닝이 비로소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호주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호주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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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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