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일동' 사칭하는 4대강 사업 찬성 현수막

여주군 점동면 일대에 정체 알 수 없는 '유령' 현수막 걸려... 면사무소 긴급 철거

등록 2010.07.09 19:18수정 2010.07.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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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군 점동면 일대에 걸린 4대강 사업 찬성 현수막.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제작됐다.
여주군 점동면 일대에 걸린 4대강 사업 찬성 현수막.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제작됐다. 려심

'한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여주군민의 열망을 꺽지 마세요 ― 도리 주민일동'

8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의 작은 마을 도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정 단체 명의도 아니고 '주민 일동'이라고 쓴 것을 보면 '도리 주민들은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딱 좋은 문구였다. "여주군민 90% 이상이 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고 말한 김문수 도지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일까?

그러나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도리의 '주민 일동'이 4대강 사업을 지지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도리는 마을 전체 51세대, 110명(2008년 여주군 통계)밖에 살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 지지' 현수막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계속됐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최규창 할머니는 "마을 입구에 현수막? 그거 누가 출세했다고 붙여 놓은 거 아닌가?"라며 "4대강 같은 건 여기 늙은이들은 잘 모르고 남자들이 알아서 하지"라고 잘라 말했다. 4대강 사업 자체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의사가 없는 주민이었다.

심지어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주민도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이재은씨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어느 날 아침에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현수막이 걸려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부터 있던 갈대숲도 전부 없어지고, 나는 4대강 사업 싫다"고 사업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현수막에 대해 모르는 것은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입구의 구멍가게 주인아저씨는 "그런 게 있냐?"며 현수막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는 "나라가 좋은 일 하겠지 나쁜 일 하겠나"라며 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점동면 다른 마을에도 비슷한 현수막... 정부기관 개입 의혹


그렇다면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도, 반대하는 주민도 모르는 '주민 일동'을 사칭하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유령' 현수막은 누가 만든 것일까?

현수막을 전봇대에 직접 걸었다는 장안리 이장은 "현수막을 누가 만들었나"라는 질문에 대답을 피했다. 그는 오히려 "주민들은 모두 4대강 찬성하는데, 플래카드 누가 만들었는지가 뭐가 중요하냐"며 "공사를 해서 홍수 피해도 막고 우리 지역이 발전한다는데 외지 사람들이 왜 반대하는 것이냐"라고 언성을 높였다. 현수막을 걸었지만 누가 제작했는지는 밝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현수막이 도리뿐만 아니라 점동면 일대 다른 마을에도 걸려 있는 것이 확인됐다. '여주 지역발전 한강 살리기가 선도한다. 외지인은 간섭 마라!'라는 문구로 삼합리에, '4대강 사업 반대 목소리에 우리 군민은 동조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장안리에도 걸려 있다.

똑같은 글씨체에 똑같은 색깔로 제작된 현수막은 '세계 속의 경기도'라는 문구와 경기도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삽입한 것까지 똑같았다. 세 개의 현수막이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주군청 등 지방자치정부가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여주군청의 경우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철거한 적이 있고 지난 6월 각 마을에 보내는 '반상회 자료집'에도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만화와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라는 홍보자료를 싣기도 해 '정부기관에서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는 의혹이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이 만들었다면 왜 말 못하나"

여주군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주군청은 지난 6월 지방선거기간에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경고조치를 받고 현수막을 철거한 바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현수막은 군청에서 자체적으로 달았다기보다는 국토해양부 등에서 지시를 받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주군청은 최근에 다시 설치된 점동면 일대의 현수막에 대해 "선거 이후 4대강 사업 관련한 현수막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여주군청의 한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선거기간 현수막을 설치했다가 철거한 것은 맞지만 지금 걸려 있는 현수막 가운데 군청에서 만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여주군청과 함께 선거기간에 현수막을 설치했다가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단체는 '여주군 생활체육회', '이장협의회' 등으로 이들이 제작한 현수막은 선거가 끝난 후 군내 곳곳에 다시 걸려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여주지역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의 한 활동가는 "현수막이 제작된 형태(같은 글씨체, 색깔, 경기도를 상징하는 문구)를 봤을 때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현수막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며 "주민들이 직접 했다면 만든 사람을 왜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장에서 직접 만나본 주민들 중에는 4대강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다"며 "외지인들이 봤을 때 '이 마을은 전체가 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고 인식하도록 관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점동면사무소는 각 마을에 설치된 현수막들을 '불법 옥외 광고물'로 보고 철거에 들어갔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현수막은 마을 이장들이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설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오늘 중으로 관련 현수막들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4대강 #이명박 #여주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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