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차장 누나가 베풀어 준 삶

[내가 살던 인천 3] 새마을금고 저금통과 한일은행 저금통

등록 2010.07.20 16:53수정 2010.07.2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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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어머니는 늘 버스삯을 내주었습니다. 집부터 학교까지 버스로 두 정류장이었는데, 부두와 고속도로 사이 길디긴 건널목을 하나 건넌 다음에 왼편으로는 원목처리장이면서 공장 한 귀퉁이요 군부대가 있으며 항구에서 공장으로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큰 짐차가 끝없이 달리는 산업도로입니다.


오른편으로는 쓰레기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공장 하수구가 뻔히 드러나는 개천길인데다가, 인천부터 서울로 짐을 실어나르는 짐기차 다니는 철길을 건너야 하고, 다음으로 연탄공장 옆을 지나는 한편, 연탄공장 맞은 편은 옐로우하우스였습니다. 그리 멀거나 길다 할 수 없는 학교길인데,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아이한테 안 좋으면서 무서운 길입니다.

왼편 길이 되든 오른편 길이 되든, 이리로 다니는 어린이는 '제 국민학교 여섯 해에 걸쳐' 모두 다섯 번조차 보지 못했고, 이 길을 다니는 어른 또한 하루에 한두 사람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기나긴 건널목은 아이 걸음으로 다 건너기 앞서 깜빡거리다가 바뀌기 일쑤요, 경인고속도로를 빠져나왔거나 이 고속도로로 들어가려는 큰 짐차는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오건 말건 싱싱 내달렸습니다. 어머니나 할아버지들이 날마다 당번이 되어 건널목 앞에서 지킴이 노릇을 해 본들 큰 짐차나 시내버스 모두 건널목 푸른불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푸른불로 바뀌어 건널목을 건너며 다른 동무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데 갑자기 제 앞으로 싱 하고 큰바람 일으키며 큰 짐차가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람을 칠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달리면서 미안하다 하는 짐차는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니면서도 동네 어버이들은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 가는 일을 달가워 하지 않았습니다. 으레 버스삯을 주어 버스 타고 가도록 했습니다. 시내버스에서 버스삯을 걷는 안내양 누나는 '고작 두 정류장 가는 주제'에 국민학생 아이들이 '그 짧은 길을 걸어갈 줄 모른다'고 '어린애들이 사치스러워 죽겠다'는 말을 으레 내뱉았습니다.


우리 동네 들머리부터 국민학교까지 두 정류장 사이에서 아침마다 진땀 빼며 씨름을 해야 하니, '겨우 두 정류장 가고 내리는 아이들이 있어 버스삯을 금세 더 벌 수 있다' 할지라도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이 되어 버스로 학교를 다닌 지 며칠 지나지 않던 어느 날, 버스에서 어김없이 안내양 누나 푸념 어린 짜증 섞인 욕바가지 비슷한 말화살을 잔뜩잔뜩 듣다가 가슴이 몹시 아프며 부글부글 끓습니다. '우린들 이 짧은 길을 왜 콩나물시루가 되며 버스를 타고 싶겠어요?' 하고 외치고 싶었으나, 키 큰 누나한테 섣불리 대들지 못했습니다.

이날 버스에서 내린 뒤, '난 이 버스 두 번 다시 타지 않겠어' 하고 다짐합니다. 어머니한테는 말을 하지 않고, 저는 몰래 걸어다니기로 합니다. 건널목에서 빨리 건너려고 달음박질을 치기도 했지만, 더 빨리 걸으려면 어떡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며 연습합니다. 걸음 빠른 어른 뒤에 붙어 빨리걷기를 차근차근 익힙니다. 신호등이 언제 푸른불로 바뀌는지 셈을 한 다음 먼 데에서 신호등을 바라보며 몇 초 뒤에 불이 바뀔 테니 뛰어야 하는지 느긋이 걸어도 되는지 헤아립니다.

이러는 동안 버스삯이 한 푼 두 푼 쌓입니다. 1982년 인천에서 국민학생 버스삯은 60원이었는데, 처음 며칠은 하루 동안 남는 120원으로 문방구에서 50원짜리 햄빵(햄이 든 빵은 아니고 햄버거 만드는 빵으로 속에 아무것도 안 든 빵) 하나 사먹는다든지 오락실에서 오락 두 판(한 판에 50원)을 한다든지, 100원짜리 아폴로를 사먹으며 동무들한테 나누어 준다든지 했습니다.

이무렵 형과 저는 어머니한테서 얻는 적은 돈을 푼푼이 모아 만화책을 사거나 우표를 사 모았습니다. 아주 마땅하게, 며칠 뒤부터는 학교 앞 문방구 군것질을 그만둡니다. 120원이 모이면 120원을, 집에서 심부름을 했다고 50원이나 100원을 받으면 170원이나 220원을 들고 은행에 갑니다. 국민학교는 일찍 끝나니까,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집이 있는 동네 길 건너편에 있는 '한일은행'으로 찾아가 차곡차곡 넣습니다.

요즈음은 토요일에 은행을 열지 않지만, 이때에는 토요일에도 낮 한두 시까지는 은행을 열었습니다. 한 시를 살짝 넘겨 은행이 문을 닫을 무렵 막 달려가서 들어가면, 마지막 일을 보려고 줄을 서서 볼일을 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학교가 끝나고 은행까지 쉬지 않고 달려와서 헐레벌떡 돈 120원이나 170원이나 220원을 넣었습니다. 꽤 큰 심부름을 하고서 500원을 받았다든지, 돈 많은 작은아버지가 놀러와서 1000원을 주셨다든지 했다면 620원이나 1120원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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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3학년 때 은행 누나한테서 받은 저금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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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통에는 뚜껑이 있는데, 이 뚜껑은 종이로 막고 '드문 쇠돈'을 연도에 따라 모으며 차곡차곡 간수했습니다. ⓒ 최종규


이태쯤 거의 날마다 찾아가서 몇 백 원씩 넣은 돈이 십만 원 남짓 불어난 어느 날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받던 누나가 "처음에 네가 몇 백 얼마를 들고 날마다 올 때에는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귀찮았는데, 여러 해 동안 이렇게 꾸준히 오는 모습을 보니 장난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기쁘다."며 저금통을 하나 선물해 주는 한편, 제 보통예금 통장을 '복리 이자 자유우대 통장'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4학년이 된 다음에는 학교 마치고 집에 닿을 무렵이면 동네 앞 은행이 닫혀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어쩌는 수 없이 동네 맞은편 한일은행으로 못 가고, 학교 앞에 있는 새마을금고로 갑니다. 새마을금고에서도 똑같이 돈을 넣으니, 이곳에서도 한 해쯤 뒤에 저한테 "참 대단한 아이"라면서 저금통을 하나 줍니다.

저로서는 저 스스로 '대단한' 아이가 될 마음이 없었고, 그리 대단한 아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지 않으니 날마다 돈이 푼푼이 쌓였고, 나중에 만화책이나 우표를 사고 싶어 은행에 건사해 놓았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남아 있으면 동무들이 꼬드겨 어쩔 수 없이 군것질을 하거나 오락실에 가야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버스 차장 누나가 우리를 가리켜 '사치스럽고 고생을 모르는 아이'인 듯 주워섬긴 말이 끔찍하게 싫었는데, 먼 뒷날 이무렵 버스 차장 일을 하던 누나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보내다 도시로 와서 풋풋한 젊음을 보내야 했는가를 깨달으니, 이렇게 말할 만했겠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버스 차장 누나조차 도시 가난한 동네 아이들 삶과 이 아이들을 키우는 어버이 마음까지는 몰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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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 무렵에 받은 새마을금고 저금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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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저금통에도 '년도에 따라 쇠돈'을 푼푼이 모았습니다. 가짓수에 따라 차곡차곡 모으기를 아직까지 잇고 있어, 이 작은 저금통은 벌써 꽉 찼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인천 #저금통 #인천이야기 #버스 차장 #한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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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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