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는 초중고등학교와 일반 모두 종이로 된 버스표만 오래도록 써 왔고, 쇠표가 나온 뒤로도 초중고등학생은 종이 버스표만을 썼습니다.
최종규
퍽 오랫동안 종이 버스표만 쓰인 인천인데, 1992년에 드디어 쇠붙이 버스표가 나올 무렵, 시내버스 아닌 마을버스에서도 쇠붙이 버스표를 썼습니다.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가 있던 용현5동을 다니던 마을버스에서는 종이 버스표를 안 쓰고 맞돈조차 잘 안 받으면서 쇠붙이 버스표를 따로 받았습니다. 동무들은 학교에서 동인천 시내로 나갈 때에 '몇 정류장 안 되는' 거리임에도 어김없이 마을버스 쇠붙이 버스표까지 사서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저는 그만한 거리를 왜 버스까지 타느냐며 동무들을 나무랍니다. 용현동 마을버스 쇠표는 인천 시내버스 쇠표와 견주어 거의 플라스틱 쪼가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을버스 쇠표가 볼품없어 보여 마을버스를 안 타지 않았습니다. 이십 분쯤 걸어가면 되는 길을 마을버스 기다린다며 십 분 남짓 서 있는 일이 더없이 아깝다고 느꼈고, 동무들이 마을버스를 기다린다며 서성이며 지껄이는 수다가 썩 듣기 싫었습니다.
하나같이 거친 말투와 욕설이 섞인 수다를 듣느니,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집으로 걸어가거나 동네 골목을 느끼며 동인천 시내나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한 시간 즈음 걸어가곤 했습니다. 짧아도 삼십 분쯤 달려야 하지 않으면 버스를 타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고, 걸어서 한두 시간쯤 되는 곳은 가볍게 걸었습니다. 비가 와도 걷고 눈이 와도 걸으며 땡볕이어도 걷습니다.
언제나 걸으며 지내다 보니 버스 탈 일이 드물어, 학생 때에 늘 버스삯을 많이 아꼈고, 버스삯을 아끼면서 버스표를 쓸 일 또한 드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도 '시내버스 일반 쇠표'를 사서 쓸 일이 드물어, 저한테 남아 있는 버스 쇠표는 몇 되지 않습니다. 용현동 마을버스는 딱 한 번만 탔으니(동무가 버스표 내줄 테니 한 번은 같이 타고 가자고 해서), 우리 나라에 거의 없는 '마을버스 쇠표'라는 녀석을 따로 챙겨서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제 마음에는 버스표 나날이 마감하고 '교통카드 나날'로 바뀌어 갈 무렵에 바야흐로 쇠표가 처음으로 나와 몇 해 동안 반짝 쓰이다 사라진 인천이라는 고향 삶터가 안쓰럽고 슬펐다는 이야기 한 자락 남아 있습니다. 만들려면 진작 만들든지, 끝까지 종이 버스표를 밀어붙이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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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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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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