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충분한 휴가'가 필요한 이유

[取중眞담] '휴가 안 가는 대통령'에 청와대 직원들도 불만

등록 2010.07.23 14:29수정 2010.07.2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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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 청와대


대통령의 휴가 시즌이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에는 5일, 2009년에는 4일의 휴가를 각각 보냈다. 공무원 복무규정대로라면 법정휴가일수는 21일이지만, 올해 휴가도 4~5일을 넘기지 못할 게 분명하다.

휴가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4주,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3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3주의 일정으로 각각 휴가를 보낸다.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크게 줄였지만,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에서 한 달씩 여름휴가를 즐기곤 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휴가 얘기를 꺼내는 저의(?)를 눈치채고 발끈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기자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지인들의 의견을 청취할 때도 "잘한 게 뭐가 있다고 휴가 가냐고 하지 않겠어?", "대통령이 법정휴가를 다 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꿈같은 얘기"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동안 이 대통령의 휴가를 되돌아보면 이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8년 7월 26일 임기 첫 휴가를 떠나던 대통령은 관저로 배웅 나온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에게 "어차피 일 터졌다고 빨리 올라오라고 할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튿날 새벽 미국 연방정부 기관인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일본의 바람대로 '주권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에 포함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휴가지에 있던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라이스 국무장관에게는 전화했냐", "백악관에 전했냐"는 등 '속사포' 지시를 내렸다. BGN이 독도 귀속 국가를 '한국'으로 바꾸면서 들끓는 여론이 가라앉았지만 대통령의 휴가는 유야무야 끝난 뒤였다.

2009년 두 번째 휴가 기간(8월 3~6일)에도 세상은 이 대통령을 놔두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방의 군사휴양시설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사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자국 여기자 2명을 구출해내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클린턴은 평양 가고, MB는 휴가 가고...'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왔고, 야당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대통령은 한가하게 휴가를 보낼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대북정책 전환을 검토하라"는 비난 논평이 나왔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대통령에 대한 냉랭한 평가

올해라고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기자는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이 충분한 휴가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국정운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야 한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휴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국정에 매달렸다. 지난해 2차 금융위기가 잦아들면서 잠시 여유를 찾나 싶었지만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다시 고삐를 쥐는 형국이다.

그러나 불철주야 노력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랭하다. 6월 지방선거의 패배를 시작으로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 암투, 여당의원 사찰 논란, 세종시 수정안 부결, 여당 의원의 말실수 등이 줄줄이 터져나와 대통령의 힘을 빼고 있다.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당초 생각과 전혀 다르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면 작업의 생산성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혹시 앞뒤 돌아보지 않고 일에 몰입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이 오히려 그의 판단력을 흐리고 국정운영을 그르치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2256시간)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면서도 노동생산성은 30개 회원국 중 22위에 그쳤다는 최근 발표는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이 안 풀릴수록 궤적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하는 법인데, 대통령에게 그동안 '온전한 여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효율성은 떨어지는 모순을 대통령이 더 이상 안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대통령은 관광·서비스업의 성장과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15일 춘천 남이섬에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관광, 소위 레저산업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미래산업이다"라며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회의 끝난 후 남아서 구경 좀 하고 가라. 바쁜 척하지 말고 꼭 구경하라"고 말했다.

대통령부터 휴가지에서 충분히 쉬었으면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100만 명에 가까운 공무원들이 휴가를 다 쓰면 연가휴가보상비(연 7000억 원)도 아끼고 관광·서비스산업에도 도움이 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휴가 문화가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3월 1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2009년 여름 '공무원들이 총 23일의 할당 휴가 중 평균 6일만 사용했다'고 지적한 이명박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취임 후 총 4일(실제로는 9일)의 휴가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는 부처 직원들에게 대통령의 '휴가 사용' 지침을 시달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나는 휴가를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실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무원 사회의 '눈치보기' 관행을 바꿔보고자 이른바 '의무휴가안'을 기획한 행정안전부의 담당 과장도 주말을 포함해 3~4일 고향에 다녀올 휴가 계획을 세웠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도 "대통령이 휴가를 제대로 안 쓰니 눈치껏 쓸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지시하는 '탁상행정'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2년 전 오늘(23일) 대통령은 "내가 휴가를 가는 이유는 다른 공무원도 휴가를 가고,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3일에는 청와대에 온 전국의 시·도지사들에게도 "공직자들에게 꼭 휴가 가라고 부탁했다. (시·도지사들도) 휴가를 많이 가도록 권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부터 실천하길 바란다. 이번에도 휴가를 가시면 4~5일 후에 후다닥 돌아올 게 아니라 휴가지에서 충분히 쉬었으면 한다. 대통령의 심신이 편하지 못하면 대한민국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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