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참의원 선거(7월 11일)가 끝난 지 보름 가량이 지났다. 결과는 민주당의 패였다. 지난해 총선에서 중의원 480석 중 306석을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민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121표 가운데 44표밖에 획득하지 못해 기존보다 10석이나 잃었고, 반면 자민당은 51표를 얻음으로써 13석을 늘렸다. 전체 참의원 의석수 242석 중 121석은 획득해야 참의원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었던 민주당은 전체 106석만을 가지게 되어 국정 운영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일본 국회는 참의원과 중의원 양원제로, 중의원에서 통과된 법안일지라도 실제로 참의원에서 인준을 해주지 않으면 국회 '뒤틀림' 현상이 지속된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강행하려면 중의원에서 2/3의 찬성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작년 총선에서 정권을 잡았다고 하여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이 패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하토야마 사임 후 새롭게 등장한 간 나오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내세워 그것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취임 초기 지지도 60%를 웃돌았던 간 총리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서, 재정파탄을 막고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소비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에 대하여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과 방식상의 문제, 거듭되는 말바꾸기 때문에 신뢰와 지지를 상실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려면, 우선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룬 작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신선한 감동 준 민주당 슬로건, 그러나...
민주당은 예산 낭비형 국책사업 재검토, 관료의 국가운영과 정치 지배 근절 및 정치의 본연의 힘을 되살리겠다는 선언과 함께 자민당 독주 체제를 거두고 정권 교체를 하자는 슬로건 아래 당선되었다.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모토도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자민당이나 여타 보수당과 아주 큰 차별성을 띠는 '민주당스러운' '민주당만의' 색깔은 아니었다.
민주당이 획기적으로 자민당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은 하토야마 전 총리가 줄곧 어필했던 미국과의 관계를 대등하게 하고 안보정책을 새롭게 검토하며, 오키나와 헤코노 등지에 새로운 미군기지를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현민의 절대 다수가 미군기지에 대한 공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전체 여론도 오키나와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우고 있으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민주당이 이 약속을 번복하였으며, 결국 그 책임을 지고 하토야마 총리는 사임을 하게 된다. 지금의 간 총리도 시민운동의 경력을 가진 인물로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이들로부터 호감을 얻어 온 듯하나, 오키나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후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당시 민주당이 내건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현외 혹은 국외 반환 공약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후, 일본의 전후 시대를 결정해온 존재양식이라 할 수 있는 일미동맹과 주일미군 문제에 과감한 변화를 선언한 것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일본을 '전후' 사회로 표현하는데, 일본의 전후를 만들고 지배해온 미군정 시기와 자민당 독주의 전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미국과의 동맹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건강한 민주주의이고 평화주의였나는 생각해볼 여지가 많으나, 분명이 고속 경제성장과 선진국으로서의 발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속에서 살 수 있었던 배후에는 늘 미일 안보 조약 속의 동맹관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토야마 내각은 이러한 미일관계에 대하여 예속이 아닌, 대등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력하게 어필했고, 미주일 미군 재편과 미군기지의 존재 형태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핵심에 있었던 문제가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비행장을 절대로 오키나와 안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 설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걸 완전히 뒤엎어버렸으니 민주당의 상징성과 혁신성, 차별성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로운 일본에 대한 기대, 새로운 일본의 역사가 쓰여질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너무나 불분명한 일본 민주당의 색깔
여기에는 민주당이 대등한 일미관계를 내세우며 미군기지 문제 재검토를 시도하는 데 대한 미국의 역습이 강하게 작용했다. 처음부터 미국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보복성의 다양한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예상되었다. 하토야마 내각이 들어서자마자, 온 일본의 미디어가 연일 새 정부를 비판하기만 했고 마치 '타도 민주당' '타도 하토야마 내각'을 정신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언론의 정부 공격 기세는 대단했다. 그리고 오자와 간사장이나 하토야마 본인도 돈 문제로 수세에 몰렸다.
도요타 리콜 사태에도 문제는 대기업의 안전 불감과 무책임, 노동자 착취와 기업 구조의 다양한 문제가 놓여 있기는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또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싱가포르, 중국, 한국 등 아시아 4개국을 방문하며 각국 정상과 회담을 했을 때도 일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반면 마지막 코스였던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아프간에 3만 명의 한국군 파병을 약속받았고, 주한미군 기지도 계속 유지하며 한미간의 군사적 동맹을 더욱 강화한다는 공동 비전까지 발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으로의 이양마저 연기되었다. 이를 두고 하토야마 전 총리가 미일 관계를 망쳐버렸다는 비난이 보수 언론과 기업으로부터 빗발쳤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결국 오키나와 현민 그리고 일본 국민과의 약속을 져버리고, 미국의 요청에 백기를 든 과정은 이러하다.
물론 일본 시민들이 총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준 것이 꼭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자민당이 독주하며 망쳐온 경제와 연금제도 붕괴 등으로 더이상 자민당 정치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국민의 절망이 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민주당의 출발은 불안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즉, 민주당이 대단히 좋아서라기보다 자민당보다는 낫다는 기대로 찍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의 색깔이 대단히 불분명하다. 하나의 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사람이 민주당에 모여 있는 것이다. 상당한 좌파에서부터 극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 하나의 정치를 해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작년 총선에서는 오자와-하토야마-렝고(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의 삼각 연합으로 인하여 민주당은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거대한 노조 조직이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이다.
민주당에겐 지금 새로운 정치쇼가 필요하다
이번 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패배는 분명이 민주당의 패배다. 그러나 이것이 자민당의 승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국민들은 이미 자민당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려 버렸기에 다시 자민당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이번 선거는 투표율 자체가 저조했고, 또 민주당과 자민당의 박빙의 승부, 즉 득표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곳도 많았다.
또한 이번 민주당의 패배 원인에는 조직력에서의 실패도 있다. 자민당은 자위대, 경찰, 부인회, 노인회, 상공회의소, 농협의 일부 조직 등 강한 조직 동원력을 가지고 있으나, 민주당 조직력의 핵심이었던 렝고가 이번 선거에서는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각 지역의 일교조와 자치노조의 선거 지원은 민주당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힘인데, 홋카이도 일교조 등이 압수수색과 구속을 당하면서 완전히 발이 묶였고, 다른 지역에서도 노조가 선거운동이나 특정당 지원을 할 수 있는 루트가 상당히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영향력이나 의석수 면에서는 그 존재가 미미한 편이지만, 비교적 진보성과 친서민성을 띤 사민당이 후텐마 기지 현외 이전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저항으로 민주당 연립 내각에서 탈퇴한 것도 민주당에게는 당장의 큰 타격은 아니었으나, 결코 좋은 소식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 간 나오토 총리가 8월 중 정치쇼를 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8월 말까지 미군 측에 오키나와현 헤노코에 미군 헬리콥터 기지를 건설하는 방침과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10월까지 연장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미군은 더 기다려 줄 듯하지 않다. 8월 말까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설과 헤노코에서의 새로운 기지 건설을 두고 간 나오토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현지에서도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게다가 9월에는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와 시장 선거, 그리고 민주당 당 대표 선거가 있다. 따라서 8월말부터는 오키나와에 국내외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은 물론 국민이나 오키나와 주민들과의 약속을 어긴 민주당에는 부담이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8월 15일을 즈음하여 한국 강제병합 100년 관련 총리 담화를 발표하거나, 일본판 '새만금'인 이사하야만(1997년 물막이공사와 방조제 수문 닫음)의 수문 개방, 혹은 일본 공해 문제와 인권 피해의 상징인 미나마타 병 환자들에 대한 전원 피해 보상 등 어느 하나는 시도할 가능성이 짙다.
8·15총리 담화 발표나 이사하야만 방조제 수문 개방 등에는 정부의 예산이 새롭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정치쇼로써 얼마든지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거를 통해서도 드러낫 듯이 신뢰와 지지율을 상실한 민주당이 일본 전국을 '감동'시켜 인기를 회복할 만한 쇼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민주당의 실패, 기지 이전 약속 안 지켰기 때문"
선거의 후유증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나가사키 대학에서 만난 후나고에 코이치 교수(교육학부, 헌법 전공) "그래도 자민당의 시대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정치의 변화는 시작되었다"며 "그것을 꼭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변화에는 본래 시간이 가장 걸린다, 특히 정치의 변화란 가장 느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천연 비누와 약제를 사용해 미용실을 운영하는 기우라 타에코씨는 "나가사키 현에서 이루어진 온갖 나쁜 정책을 다 추진했던 가네코 전 지사(자민당 의원)가 당선된 것은 정말 끔찍하지만, 사실 민주당 후보(이누즈카 후보)도 눈에 띄는 점이 없었다"며 "적어도 자민당 의원들은 여기저기 돌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얼굴을 많이 내민다, 자민당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싫지만, 민주당 후보도 낙선할 만했다, 이누즈카, 그리고 민주당 하면 떠오르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적인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 당시 갯벌 매립이나 방조제 건설 등에 반대운동을 펼쳐온 오오무라시의 어느 식당 여주인도 "민주당이 실패한 것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며 "정말 실망했다"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사세보시에서 미군기지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림피스> 편집위원장 시노자키 씨는 "참의원 선거 결과는 민주주의라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지금 눈 앞의 이익'이다, 미래 세대의 이익은 아닌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이 자민당에게 절망해놓고서 왜 이번 선거에서는 그래도 자민당에게 표를 더 주었는가 생각해볼 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위해서 후보들은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이익, 현민의 이익' 공세를 펼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결국 신칸센이나 댐 건설, 불필요한 공공사업 확대 등을 외치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는 일본 정세
선거 결과를 두고, 일본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민주당과 자민당 어느 쪽이 정치를 해도 일단 자민당 시대에 일본의 자랑이던 연금제도는 철저히 붕괴했다. 거의 모든 일본인은 자신이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를 확신하지 못한다. 연금제도의 붕괴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금지급액은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히 축소되거나, 지급 개시 연령이 70세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본의 공무원, 회사원의 퇴직 연령은 60세다. 기본급여와 퇴직금, 보너스 등도 줄어든 노동자가 퇴직후 10년 동안 새롭게 어딘가에 취직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대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일본은 장기간 심각한 경제위기와 재정난에 허청대고 있고 그 출로도 전혀 보이고 있지 않으므로, 소비세는 간 총리의 발표처럼 적어도 10%이상 인상될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물가는 50%까지 폭등할 수 있다. 지금 일본의 생필품 물가가 저렴한 것은 무리한 할인경쟁 때문인데, 소비세가 인상되면 각 업체들도 물가를 대폭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일본이 지금 위기 상황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어디로 튈지도 모를 정도로 일본의 정세는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어느 쪽으로든 변화할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든 선회할 수 있는 안개 속의 일본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나가사키의 평화운동가인 시바타 토시아키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일본에는 일본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리드해 갈 만한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일반적인 여론의 인식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의 패배지만, 자민당의 성공은 아니다.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움직이고 흩어지고 모여 새로운 흐름이 나올 가능성도 있지만, 그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라는 것이 꼭 좋은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 일본의 경제는 대단히 어려우며, 서민의 생활은 너무나 힘겹다. 실업률은 점점 더 올라가고 있으며 물가도 올라갈 것이다. 대기업과 정부는 가난한 이와 실업자, 사회적 약자를 버리고 기업과 정부만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더 애를 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불황과 빈부격차, 실업, 사회적 불안 등 코너에 몰린 이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음과 동시에, 국내의 재일코리안이나 재일중국인, 그리고 소수자들을 적으로 삼아서 차별하고 배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하기 쉬운 시대로 흘러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선진국 모델로 삼고 꾸준히 따라온 한국에 일본의 위기와 불안, 변화의 방향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당분간은 더 일본 사회를 면밀히 지켜볼 일이다.
2010.07.27 17:3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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