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서 있는 진흥왕 척경비와 UN군 승전비

[사진] 창녕에 오면 평화의 소중함이 보인다

등록 2010.07.31 12:13수정 2010.07.3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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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멀리 진흥왕 척경비가 보인다 '신라의 광개토대왕'인 진흥왕은 국경을 넓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멀리 함경북도 마운령 등에 순수비를 세운다. 창녕의 척경비도 그와 비슷한 기념물이다.

멀리 진흥왕 척경비가 보인다 '신라의 광개토대왕'인 진흥왕은 국경을 넓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멀리 함경북도 마운령 등에 순수비를 세운다. 창녕의 척경비도 그와 비슷한 기념물이다. ⓒ 정만진

▲ 멀리 진흥왕 척경비가 보인다 '신라의 광개토대왕'인 진흥왕은 국경을 넓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멀리 함경북도 마운령 등에 순수비를 세운다. 창녕의 척경비도 그와 비슷한 기념물이다. ⓒ 정만진

 

신라 24대 임금인 진흥왕은 흔히 '신라의 광개토대왕'이라 일컬어진다. 그만큼 진흥왕은 나라의 영토를 넓혔다. 그가 개척한 땅의 넓이는 북한산의 순수비, 함경도의 황초령비, 마운령비가 잘 증언해준다.

 

국보 33호인 창녕의 진흥왕 척경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555년 비화가야(경남 창녕 일대)를 정벌한 진흥왕은 561년 그 일대를 직접 방문하여 왕의 지배력을 천하에 과시한 다음 화왕산 한 줄기인 목마산 서쪽 기슭에 비를 세워 그 사실을 기념하였던 것이다. 

 

a 척경비 뒤로 화왕산이 보인다 진흥왕 척경비는 본디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1914년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4년 척경비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척경비 뒤로 화왕산이 보인다 진흥왕 척경비는 본디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1914년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4년 척경비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 정만진

▲ 척경비 뒤로 화왕산이 보인다 진흥왕 척경비는 본디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1914년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4년 척경비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 정만진

a 진흥왕 척경비 비석에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의 이름도 보인다. 비석에는 당시 왕의 창녕 일대 순수(巡狩)에 동행했던 인물들의 이름과 관직도 새겨져 있는데, 김무력의 벼슬은 18등급 중 3등급인 잡간(지금의 장관급)이었다. 창녕비보다 10년 전에 세워진 단성적성비에는 6등급이었던 무력이 창녕비에는 3등급으로 승진하였는데, 그 사이인 554년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신주(한강 하류 유역)에서의 전승에 대한 논공행상 덕분이었을 것이다.

진흥왕 척경비 비석에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의 이름도 보인다. 비석에는 당시 왕의 창녕 일대 순수(巡狩)에 동행했던 인물들의 이름과 관직도 새겨져 있는데, 김무력의 벼슬은 18등급 중 3등급인 잡간(지금의 장관급)이었다. 창녕비보다 10년 전에 세워진 단성적성비에는 6등급이었던 무력이 창녕비에는 3등급으로 승진하였는데, 그 사이인 554년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신주(한강 하류 유역)에서의 전승에 대한 논공행상 덕분이었을 것이다. ⓒ 정만진

▲ 진흥왕 척경비 비석에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의 이름도 보인다. 비석에는 당시 왕의 창녕 일대 순수(巡狩)에 동행했던 인물들의 이름과 관직도 새겨져 있는데, 김무력의 벼슬은 18등급 중 3등급인 잡간(지금의 장관급)이었다. 창녕비보다 10년 전에 세워진 단성적성비에는 6등급이었던 무력이 창녕비에는 3등급으로 승진하였는데, 그 사이인 554년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신주(한강 하류 유역)에서의 전승에 대한 논공행상 덕분이었을 것이다. ⓒ 정만진

그로부터 약 1400여 년이 흐른 1950년, 낙동강변의 창녕에는 다시 전운이 흐른다. 육이오가 발발한 지 채 두 달도 안 되어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려온다. 미군은 8월 3일 왜관 철교와 인도교를 폭파한다. 창녕에도 북한군 제 4사단이 몰려와 도강을 시도한다. 이 때 미군 제 9사단 등이 진퇴 공방 끝에 이를 물리친다. 진흥왕 척경비 바로 옆에 서 있는 UN군 전승기념비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a 550년의 진흥왕 척경비, 1950년의 UN군 전승비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을 보면 새삼 평화의 소중함이 일깨워진다.

550년의 진흥왕 척경비, 1950년의 UN군 전승비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을 보면 새삼 평화의 소중함이 일깨워진다. ⓒ 정만진

▲ 550년의 진흥왕 척경비, 1950년의 UN군 전승비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을 보면 새삼 평화의 소중함이 일깨워진다. ⓒ 정만진

550년 전후, 창녕에서는 동족끼리의 큰 싸움이 벌어졌다. 물론 그 당시에는 동족이란 개념이 없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죽고 죽이는 혈투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400년이 흐른 1950년 8월, 다시 이 곳에서 동족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외국인인 UN군까지 가세했다.  

 

두 비석은 나란히 서 있다. 국보인 진흥왕 척경비에 비해  UN군 전승기념비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비의 재질이 돌도 아니고 천박한 시멘트 덩어리이다. 그나저나 그 둘은 나란히 서 있다. 창녕의 두 비석은 1400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 속의 전쟁을 되새기게 해준다. 평화의 소중함을 나란히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a 죽어서 땅에 묻힌 권력자들 진흥왕 척경비에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창녕고분군이 나온다. 창녕박물관 앞뒤로 가득 늘어선 고분군을 보면 권력무상,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땅을 넓히고 재물을 확충하기 위해 그토록 싸우고, 죽고 죽였지만, 결국 높낮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어서 티끌처럼 없어질 뿐이다. 왕의 무덤을 밟고 노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해준다.

죽어서 땅에 묻힌 권력자들 진흥왕 척경비에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창녕고분군이 나온다. 창녕박물관 앞뒤로 가득 늘어선 고분군을 보면 권력무상,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땅을 넓히고 재물을 확충하기 위해 그토록 싸우고, 죽고 죽였지만, 결국 높낮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어서 티끌처럼 없어질 뿐이다. 왕의 무덤을 밟고 노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해준다. ⓒ 정만진

▲ 죽어서 땅에 묻힌 권력자들 진흥왕 척경비에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창녕고분군이 나온다. 창녕박물관 앞뒤로 가득 늘어선 고분군을 보면 권력무상,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땅을 넓히고 재물을 확충하기 위해 그토록 싸우고, 죽고 죽였지만, 결국 높낮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어서 티끌처럼 없어질 뿐이다. 왕의 무덤을 밟고 노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해준다. ⓒ 정만진

2010.07.31 12:13 ⓒ 2010 OhmyNews
#진흥왕 #창녕고분군 #UN군 전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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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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