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촌 곳곳의 가로등마다 새겨져 있던 익살스러운 표정의 탈
박솔희
'21세기에도 여전히 연극은 연극이다'라는 이번 축제 슬로건은 연극의 아날로그적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밀양연극촌과 연희단거리패의 정신을 제대로 보여준다.
충분히 더 편리하고 안락하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객석은 딱딱한 나무의자였고 천장 없는 야외공연장 탓에 소나기가 내린 날은 관객들이 무대로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단다. 그 와중에도 배우들은 꿋꿋한 열연으로 박수를 받았고.
또한 밀양연극제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공연표 정가는 1만 원~3만 원 수준이지만 밀양시민만 구입할 수 있는 시민사랑권을 이용하면 5천 원에 공연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문화시설은 서울에 집중돼 있고, 사정이 그렇다보니 지방에서는 연극 한 편 볼래도 먼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남지역의 명소가 된 밀양연극촌, 그리고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덕분에 지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혜택이 나누어지는 모양새가 보기 좋았다.
온가족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울에서의 공연장이란 영화관이 질린 커플들의 이색 데이트 코스 정도로 인식되기 마련.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연극을 보고 싶어도 '뻘쭘'함을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밀양연극제에는 혼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도 적잖이 보였고 커플보다는 가족 단위가 많았다. 연극이 어려워 몸을 배배 꼬다가도 어느 순간 넋 놓고 무대에 집중하는 어린아이들부터 "뭔진 잘 몰라도 거 재밌더라야" 하시는 어르신들까지. 이번 축제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동극 <푸른하늘 은하수>도 선보이고 있다.
지역마다 우후죽순 생긴 컨셉이 뭔지도 모르겠는 지저분한 축제, 상업적 이득과 관광수입 증대에만 혈안이 된 축제들과 비교하면 지역민, 온가족과 함께 하는 이런 축제야말로 진짜배기라는 생각이 든다. 연극계가 어렵다는 게 하루이틀 얘기는 아니만 글쎄, 이런 순수성을 잃지만 않는다면 희망은 충분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이 된 <햄릿>의 명대사로 글을 맺고 싶다.
"연극 만세!" 덧붙이는 글 | 연희단거리패 http://www.stt198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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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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