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정상회의의 어두운 뒷면
불볕더위와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이다. 향린교회에서 12일째 단식농성 중인 미셸 이주노조위원장을 방문했다. 그는 2009년 7월 이주노조위원장을 맡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밥을 먹고 있다. "아니 굶는 사람 옆에 두고 자기들끼리만 밥 먹어요?" 했더니 미셸 위원장은 선한 웃음을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내게 음료수를 내놓는다. 4년 5개월 동안 이주노동자로 살아오면서 받았던 차별과 서러움에도 그는 꿋꿋해보였다. 그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투쟁 중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G-20을 빌미로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반대하는 단식농성장에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We are not Criminals!)",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We are not Terrorists!)", "G20의 이름으로 단속추방 중단하라!(Stop Crackdown in the name of G-20!)"는 구호가 붙어있다.
이명박 정부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G20 서울정상회의의 뒷면에는 많은 그늘이 있다. 철거민, 노점상, 비정규노동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차별받고 고통 받는 노동자․민중들의 서러움이 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4만 7천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상태로 전락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귀국하면 농장을 차리는 것이 꿈인 미셸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 인종차별과 멸시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노동3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주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도로의 전환, 이주노동 인정이다.
내년 2월이면 한국체류 비자가 끝난다. 그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한다. 그런 미셸 위원장으로서는 너무 버거운 과제다. 그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주노조의 본산임을 자처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문제를 자기 과제로 껴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삼겹살 먹으며 여가 즐기게 된 것, 고작 20여 년밖에 안돼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 다른 나라에서 이 나라로,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현재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이주했다. 시기만 달랐을 뿐이다. 긴 역사를 통해 어디에선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 산업사회를 맞이해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이주했다. 지금 서울의 인구밀도는 강원도의 190배라 할 정도다. 도시사람들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다. 다만 먼저 들어 온 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일 뿐이다.
수출 세계 9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적 경제성장을 이룩하기까지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한 때는 이주노동자로서 해외에 나가 번 돈으로 경제성장의 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멀게는 구한말부터 시작된 식민지배의 강제된 이주노동자로부터 오늘날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해외취업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배가 일반화될 당시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테프트-카스라'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로 결정하고 강제적으로 병합했다. 필리핀은 200년간의 스페인 통치와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침략 등 숱한 고난을 겪은 뒤 2차 세계대전 후 한국처럼 독립국가가 되었다.
한국과 필리핀은 여전히 정치․군사․경제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를 비교하면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이름으로 파병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1963년에 개장한 돔 형식의 장충체육관을 설계한 기술진이 필리핀이었다.
차별과 멸시 견디며 일하는 이주노동자 탄압, 선진국과 거리 멀어
처음부터 우리보다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는 없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긴 하지만 연인원 2천만 명이 해외를 다녀오고 자가용이 넘쳐나며 여름휴가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고작 20여 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지금도 일본, 미국, 호주 등에서 수많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상 또는 불법체류 형식으로 노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급격한 이동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 노동자들도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주노동은 일반화되고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가 차별하고 멸시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보듬고 가야 할 동반자들이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정부는 G-20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는 미명하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지난 6월 1일부터 시작해 8월말까지 강제연행, 폭행, 벌금, 강제추방 등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고 한국경제의 제일 밑바닥에서 차별과 멸시를 견뎌내며 헌신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면서 얻을 G20 정상회의 결과와 선진국은 너무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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