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이든 두번이든 수능시험이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수능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2009학년도 대입수능 시험 날 수험장 앞 풍경.
권우성
또 현재 수리 영역만 가와 나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국영수 영역 모두 난이도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2원화하는 것과 탐구영역에서의 시험 과목을 한 과목으로 축소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전에 탐구영역에서 1~4과목 내에서 학생이 과목과 수를 선택할 수 있던 것을 1과목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학습부담이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인제 우리 지리 같은 과목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수능 개편안 같은 체제로 가면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를 합쳐서 한 과목으로 가르치라는 것인지, 아니면 세 과목으로 배우되 시험만 한 과목으로 하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이전에 세 영역으로 나누어서 배우던 것을 한 과목으로 통합한다고 해서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는 정부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우리 학교 지리 선생님의 말이다. 부전공 하라는 것인지... 차라리 지리교사 그만두라는 것이 더 솔직해 보인다고 항변한다. 국사 과목 역시 이전에 국사와 근현대사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던 것을 국사 과목으로 통합하고 한꺼번에 시험을 보는 게 학습부담을 줄인 것일까. 그럼 과학 선생님들은 이를 환영할까? 대학교에 가서 이공계열 학문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에서 적어도 2가지 영역 이상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게 과학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제 과학 과목도 교양 과목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구나!"라고 한 과학 선생님이 한탄한다.
학생들이 학습부담을 과중하게 느끼고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켜 온 것은 국영수 과목이지, 1~4과목 선택하던 탐구영역이 아니다. 탐구영역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영수 과목의 비중을 확대시켜 오히려 학습부담을 증가 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수준별 수능이 사교육비 감소? "그런 쓸데없는 짓 왜 해요?"이번 개편안은 국영수 과목을 모두 난이도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구분하여 학생들이 선택하여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고, 자기 학업 능력에 따른 난이도를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교육 감소를 가져올 것이란다. 이 역시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난이도는 과목당 30~50개에 이르는 문제별로 다른 것이어서 그것을 가지고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쉽게 내거나 모든 문제를 어렵게 낸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를 들면, 1번 문제는 난이도가 '상'이고 2번 문제는 난이도가 '중', 3번 문제는 난이도 '하' 하는 식으로 출제하고 이들의 분포를 조절함으로써 전체적인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과부는 마치 모든 문제의 난이도가 똑같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예체능 계열 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난이도에 따른 수능 2원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이나 학과에서 같은 점수라면 난이도가 높은 수능 형태를 선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싫든 좋든 난이도가 높은 수능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난이도가 서로 다른 A형과 B형 시험을 각각 치른 학생들이 각각의 수능 점수를 대학에 제시할 경우 이 차이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대한 대책이 없다.
A형과 B형의 난이도 차이를 실제로 얼마 정도의 점수 차이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두 번의 수능 시험에서 한번은 A형, 한번은 B형을 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과적으로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서는 A형이든 B형이든 특정한 형태를 요구해 버리면 학생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어 학생의 선택권은 사실상 없어진다. 이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역시 아무런 근거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해진다.
수준별 수능 시험이 학생의 부담을 감소시켜서 사교육비를 감소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해요? 99% 둘 다 보거나 높은 수준 시험 볼 텐데..." 수능 자격고사화 등에 대한 근본적인 체제 변화가 필요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사실상 '선발고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선택권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 응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은 많은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감소시키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교육계의 진단이다. 수능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SAT,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영국의 A-level, 독일의 아비투어 등은 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우리의 수능 시험을 영어로 'K-SAT'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이 시험들은 대부분 일정한 수준을 요구하는 자격시험이라는 점에서 1점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 수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SAT만 하더라도 자격시험이고, 수시 시험 체계이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과도한 학습 부담이나 사교육비 유발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외고랑 자사고랑 강남애들만 가려뽑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