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애한테 관심도 없지?" 또 한소리 들었습니다

엄마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시대를 아는 엄마가 되자

등록 2010.08.30 13:02수정 2010.08.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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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애한테는 도통 관심도 없지?"

 

밖에 나갔다 오신 친정어머니가 불만에 겨운 목소리를 토해내신다. 밖에서 또 무슨 이야기를 들으신 게 분명하다. 함께 사시는 친정어머니는 늘 나의 교육관에 불만이 많다. 유치원만 겨우 보내고, 그 흔한 학습지 하나 시키지 않는 것, 남들은 영어유치원이다 영재교육이다 더 좋은 곳 찾아 보낼려고 모이기만 하면 그 얘긴데, 기껏 듣고와서 전해줘도 들은척 만척이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던지는 대답.

 

"유치원이면 충분해요. 다른 건 자기가 배우고 싶어하면 그때 가르치면 돼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오신 어머니 눈에는, 나의 무심함이 그저 이기심으로 느껴지시는 모양이다. 남들은 매주 공연을 보러간다드라, 누구는 영어유치원을 보낸다드라, 누구는 한글을 다 가르쳤다더라 등등 주문은 끝도 없다. 

 

언제나처럼 나는 아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온다. 혹시라도 남들 다 하는 것 자기만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까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엄마의 교육관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 때문이다. 

 

밖은 숨을 쉬기도 힘들만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였다. 아이는 더위에 약간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교육을 시작한다. 

 

"나무는 뭘 먹고 사는지 알아?"

"비!"(이건 일전에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아니, 물말고 밥도 먹어야지. 나무 밥은 뭔지 알아?"

"몰라."

 

"나무는 햇빛을 먹고 살아."

"햇빛??? 햇빛을 어떻게 먹어??"

 

"나뭇잎에는 자세히 보면 햇빛을 먹는 작은 입들이 있어. 그래서 햇빛이 닿으면 그걸 냠냠 먹어서 이렇게 이렇게 줄기로 옮겨가는거야. 그리고 그걸 모아서 열매를 만드는거지. 그런데 만약에 여름에 햇님이 햇빛을 많이 안 보내주시면 가을에 열매가 많이 생길까, 안 생길까?"

 

"안생겨."

"그럼 우리가 먹을게 있을까? 없을까?"

"없어."

"그럼 여름에 이렇게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게 좋을까? 아니면 햇빛이 없는게 좋을까?"

"햇빛이 있는게 좋아."

 

어느덧 더위에 찡그렸던 아이의 표정이 밝아져있다. 오히려 태양을 한번 쳐다보고 가로수 곁에 다가가 나뭇잎을 잠시 관찰하더니 나무한테 덕담까지 한다.

 

"햇님은 참 고맙다. 나무한테 밥도 주구. 나무야 많이 먹어."

 

나는 아이에게 광합성작용에 대해 가르쳤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 어느 생물시간에 광합성을 배워야할 때가 왔을 때, 아이는 오늘의 대화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알던 그것이 '광합성'이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 그리고 햇빛을 냠냠 먹던 그 입이 엽록소였다는 걸 신기해하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이제 겨우 다섯 살,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호기심이지 한글이 아니다.

 

나는 아이에게 원하지도 않는 해답을 가르쳐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게하고 싶지 않다. 호기심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이에 맞게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만 기억하게 할 수 있다면, 애쓰지 않아도 아이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갈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이런 즐거움과 권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박탈한다. 

 

모든 학문의 시작은 구체적인 현상이다. 광합성 작용이 있어서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신기해 그걸 연구하다보니 알게 된 것이 광합성이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일도 똑같이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무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고, 나무가 뭘 먹는지, 어떻게 열매 맺는지 궁금해 해본 적 없는 아이에게 어느 날 주어지는 '광합성'은 그저 외워야할 재미없는 시험답안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세상의 변화가 매우 느리던 시절에는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논리나 학문이라는 것이 결국 과거의 현상에서 찾아낸 규칙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그 규칙이 변함없이 적용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빨리 규칙을 익혀 논리적 인간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사회변화는 이미 가속을 얻기 시작해 하나의 규칙이 학설로 정립되는 순간, 곧바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야할 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미 수직에 가까운 포물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 지경이다. 대학교육만으로는 되지 않아 이제 평생 배워야 사회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평생교육 개념이 도입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규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논리력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쉽게 반응할 줄 아는 유연함과 창의력이다.  

 

과거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 달라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줄 알아야 세상이 달라졌을 때 적응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훈련은 유아기때 시작된다. 세상이 온통 모르는 것 천지인 유아기 때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해답을 찾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자라면서 이런 능력을 개발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교육기관에 맡겨진다. 아이들의 호기심이란 매우 개별적인 것이고, 그것에 가장 훌륭하게 반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오히려 교육비를 벌어야겠다는 고민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져보기도 전에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훈련을 받기 시작하고 엄마는 이런 교육을 위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여나간다. 아이를 위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빼앗는 형국이다.  

 

사교육이 나라를 망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교육을 없애달라고, 정책을 바꿔달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를 모두 반영해 교육이 바꿔있을 즈음이면 우리 아이들은 이미 사회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여전히 사회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교육개혁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바뀌지 않으면 내 아이는 늘 한 발 뒤떨어지는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교육이나 사교육을 통해 따라잡기엔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엄마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시대를 읽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결코 내 아이를 시대에 앞서가는 아이로 키울 수 없다.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길을 잘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가서 정상에 서보라 하는 것은, 저기 산이 하나 있는데 나는 여기 있을테니 너 혼자 잘 가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함께 올라가지 않고서 어떻게 아이가 넘어졌을 때 잡아줄 수 있겠는가. 그저 산 아래에서 응원했다고, 넘어질 때 많이 안타까웠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다했다 말할 수 있는가. 

 

"엄마도 아직 궁금한게 한 가지 있어. 나무가 햇빛을 뭉쳐서 열매를 만들어주면 우리가 그걸 먹잖아. 그럼 우리 몸이 그걸 잘게 쪼개고 풀어서 다시 햇빛으로 만드는 거야. 그러니깐 우리도 햇빛을 먹고 사는 거나 똑같잖아? 근데 그럴거면 그냥 사람도 햇빛을 먹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럼 먹을 게 없어서 슬픈 사람도 없을텐데….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건 나중에 효원이가 커서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아이에게 궁리해야할 과제까지 하나 던져주는 것으로 그 날의 산책, 교육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학원버스는 여전히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지금 배운 저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두 배는 노력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 웃는 얼굴조차 가엾게 느껴졌다.

2010.08.30 13:02ⓒ 2010 OhmyNews
#창의성 #시대변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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