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키우고 있는 배추 모종. 비 때문에 아주 신경이 쓰인다.
오창균
새벽에 내리치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옥상의 배추 생각만 하다가 날이 밝아 바로 올라가 밤새 안녕한지 살피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된 지도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밤새 쏟아진 폭우에 걱정이 되어 옥상에 올랐다.
해충을 막기위한 텐트형 모기장에 씌운 비닐은 저만치 날아가 처박혔고 모기장 한쪽이 주저앉을 만큼 지난밤 폭우는 기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배추모종은 별탈 없어 보이지만 해를 못 봐서인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모종을 살펴보고 있는데 옆집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저씨 밤에 큰 일 날뻔 했어. 하수구가 막혀서 아랫집에 물이 들이쳐서 아주 난리를 쳤다니까. 우리 아들이 비 맞으면서 막힌 흙을 다 파냈다니까. 아랫집 아줌마가 우리집 때문인줄 알고 막 올라왔는데, 아저씨 옥상에서 쓸린 흙 때문에 막힌거여. 하하하''아 그랬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흙이 쓸려간 것 같네요.'옆집 할머니에게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서 보니 물이 내려가는 수채통 옆에 놓인 바가지에 걷어낸 흙이 담겨 있었다. 배추모종을 만들 때는 일반 흙보다 입자가 굵은 상토흙을 사용하는데 바닥에 흘린 상토흙이 빗물에 쓸려서 수채통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수채통 옆으로는 작은 쪽문이 있는데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문틈으로 빗물이 넘쳐서 방까지 넘칠 뻔 했다고 한다. 너무 미안한 마음과 뒤처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을 느꼈다. 맞벌이 하는 1층집에 찾아가려 했으나 출근 시간이라서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점심 때가 가까워 전화로 먼저 사과를 하고,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싶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10년 넘게 살았어도 옥상에는 올라가 보지 않아서 그런 줄도(옥상 농사 하는 것을) 모르고, 옆집 하수구인 줄 알고 할머니집에 찾아갔는데 그 집 아들이 비 맞으면서 흙 파내느라 고생했어요. 피해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만 해주세요.'거듭 사과를 하고 옥상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수채통에 흙을 걸러낼 수 있는 망을 그날로 설치를 했다. 저녁에 1층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찾아 왔다고 한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집에 없었고 아내가 대신 사과를 했다. 아주머니는 옥상에서 농사를 하는지는 몰랐다며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며 돌아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