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어버렸다

[초보목수의 한옥학교3] 연장과 맞춤·이음

등록 2010.09.13 10:55수정 2010.09.13 14: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학사대 지유 신영훈 교장선생님과 이광복 도편수의 작품으로 강화도 관광명소가 된 학사재의 골조공사 후 모습 ⓒ 이광복


한옥에 대한 이해없이 겉 모습만 본다면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장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아니 장님이다. 눈이 있어도 바로 볼 수 없다면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한옥의 큰 장점이 작게 보이고, 작은 단점이 크게 보여 개선의 여지를 잃게 되거나 발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옥에 관한 용어 이해

이번 주부터 시작한 이론 교육은 '목수의 일은 30% 기술과 70% 이론으로 구성 된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였다. 교재는 보성각에서 발행한 '장기인' 선생이 쓴 <목조(木造)>라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 중 읽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건너뛰고, 어렵거나 중요한 부분은 우선 학생이 읽고 선생님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강의 주제는 연장과 맞춤·이음이었다. 내가 읽었던 부분은 교재 83쪽 '새우기' 부분이었다. 치목을 끝내고 기둥세우기부터 부재를 이어가고 결구하여 천장과 마루까지 짜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50여 줄의 문장이었지만 100여 개의 낯선 용어들이 나온다.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어버렸다. 무색하기도하고 부끄러웠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둥과 대들보, 처마 정도 외에는 한옥의 용어나 구조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 집이고 기술인 한국건축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생활공간을 아파트에 내준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낯선 용어 탓이 더 클 것이다.

이조시대로 내려오면서 목수들이 관직에 등용될 수 없었지만, 고려시대에는 목수들의 수장은 정 3품 벼슬을 하사 받았다. 당시에는 한옥 건축기술이 전문학문 분야였다. 한옥에 사용되는 건축 용어로 일상 생활에 거의 사용하지 않은 한자와 순 우리말을 뒤섞어 사용하게 된 연유다.


한옥건축에 사용되는 용어는 10000개가 넘지만, 한옥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여 용어를 읽혀야 가능한단다. 치목과 결구 실습 때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우선 한옥얘기에 필요한 '기둥'과 '공포'(栱包) 그리고 '가구'(架構)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용어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것도 유용할 것 같다.

확대 ( 1 / 20 )
ⓒ 이광복

기둥은 지붕의 하중을 지면에 전달하는 수직구조 부재이다. 원, 사각, 팔각으로 가공하여 사용하지만, 원목의 껍질 정도만 벗기고 사용한 '도량주'라 불리는 기둥도 조선 후기 살림집과 사찰 등에 사용되었다.

'고주', '평주', '귓기둥'은 세워진 위치와 크기, 길이의 차이에 따라 구별하는 기둥의 이름이다. 평주는 집의 가장자리 부분에 위치하고 내부 기둥인 고주에 비해 짧고 가늘다. 귓기둥은 모서리에 세워진 기둥이며 귀솟음을 위한 추녀가 걸려 하중이 집중됨으로 다른 기둥에 비해 크고 길다.

'활주'는 빛가림과 처마의 곡선을 위해 길게 뻗어 나온 '추녀'를 지지하는 보조 기둥이다. '동바리'기둥은 마루 밑을 받치는 짧은 기둥을 말한다. '동자주' 역시 보(樑) 위에 올라가는 짧은 기둥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기둥을 새울 때 필요한 기술이 '그랭이질'과 '다림보기'이다. 다림보기는 기둥 중심에 처 놓은 먹선과 추선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며, 그랭이질은 초석 표면의 요철 모양을 기둥에 파서 기둥과 초석 사이에 들뜸 없이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공'(栱)은 처마를 원만하게 지지하고 기둥 위에서 연결되는 부재들이 안전하게 이어지도록 연결면을 확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글로는 '첨차'로 쓴다. 그러므로 공포(栱包)는 첨차로 이루어진 처마 밑을 받치는 부재 덩어리라는 의미이다.

한옥의 뼈대는 지면에 수직인 기둥과, 건물 앞면과 평행한 방향으로 기둥을 연결하는 도리, 세로방향으로 연결하는 '보'가 공포에 의해 연결되어 지붕을 받치는 형태이다. 공포는 '주두', '첨차', '살미', '소로'로 구성되며 첨차와 살미는 놓이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불러 다소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기 쉬우나 구성원리를 이해하면 달라진다.

'주두'(柱頭)는 기둥 놓여 위에 공포를 타고 내려오는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부재이다. 주두와 같은 형태이나 크기가 주두보다 작은 받임대가 보 위에 놓이면 '소로'(少櫨)로 불린다. '살미'(山彌)는 첨차와 직교하여 보 방향으로 걸리는 공포 부재를 총칭하는 말이다. '익공'(翼工)은 새 날개처럼 뾰쪽하게 깍은 보 방향으로 걸린 살미이다.

공포는 종류와 배열에 따라 구분되며 종류로는 도리를 '장혀' 위에 바로 사용하는 '민도리'와 처마의 지지점을 앞으로 내미는 '출목'(出目)을 위한 공포를 사용하는 포식으로 구별한다. 공포 배열 형태에 따라 기둥 위에 설치하는 방식을 '주심포방식',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치하는 방식을 '다포형식'으로 분류한다.

'가구'(架構)는 집의 뼈대 역할을 하는 기둥, 보, 도리를 얽는 방법을 말한다. 서까래를 바치는 도리는 집의 앞쪽과 뒤쪽 기둥을 연결하는 각각의 도리와 대들보 위에서 지붕을 바치는 도리를 합쳐 최소한 3줄의 도리가 있어야 하며 이런 형태의 집을 '삼량가'라고 한다. 건물에 사용되는 도리의 줄 수에 따라 '사,오,칠량가'로 구별되며 구량 이상 집은 보기 힘들다.

보(樑)는 앞뒤 기둥을 연결하는 수평부재이며 '보야지'는 보를 안전하게 기둥에 연결하기 위해 기둥에 설치하는 받침목이다. 삼량집에는 보가 곧 대들보가 되지만 도리가 다섯줄인 오량집은 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얹고 그 위에 보가 하나 더 걸리게 되며 이때 사용되는 보를 '종보'라 한다. 칠량집에는 위로부터 '종보' '중보' '대들보'가 사용된다.

'창방'은 도리와 소로를 통해 상하로 연결되며 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이다. 이때 사용하는 도리는 창방과 비슷한 '납도리'를 쓰는 경우가 많고 도리 밑에 소로없이 바로 '장혀'를 두기도 한다. 장혀는 도리밑에서 도리를 받혀주는 바침대 역할을 하며 도리에 비해 폭이 좁다. 도리와 함께 서까래의 하중을 지지한다.

설계를 위한 실습 숙제

a

주먹장 이음 부재가 수직방향으로 이어가기위한 이음방법이다. 단단하게 연결되므로 고급가구 제작 등에 자주 사용된다. ⓒ 정부흥

a

주먹장 이음 두 부재가 주먹장 이음법에 의해 연결된 모습이다. ⓒ 정부흥


a

삼분턱 분해 한옥의 부재인 나무는 길이가 한정되어 있어 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이음과 맞춤의 기법을 이용하여 연결하기도 하고 건너가기도 한다. 이음과 맟춤 기술은 한옥의 핵심기술이다. ⓒ 정부흥


a

삼분턱 맟춤 기둥 위에서 각 부재가 건너가고 질러가기 위해 결구된 모습이다. ⓒ 정부흥


이음과 맞춤에 대한 강의를 마친 이 선생님께서 주먹장맞춤을 그리는 숙제를 내셨다. 잊혀져 가는 스케치업 건축 설계 프로그램으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별로 어려울 것 같지않던 도면 작성 작업이 얼마 동안 사용하지 못했더니 벌써 대부분 잃어버렸다. 간단한 주먹장 장부를 그리기 위해 밤을 지샜다.

다음날 계속되는 이음과 맞춤 강의가 끝나자 이번에는 삼분턱맞춤 도면그리기를 숙제로 남겼다. 스케치업 프로그램과 씨름하면서 삼분턱맞춤을 원하는 모양으로 그리고나니 5시가 넘었다. 전날 작업 경험을 믿고 한두 시간에 끝 날것으로 예상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 프로그램에 너무 서투른 탓이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은 인터넷 포탈 사이트를 운영하는 구글(Google)회사가 초기 프로그램을 인수한 후 3차원 물체를 스케치 할 수 있는 기능을 보강하여 건축 설계에 적합하게 개발하여 무료로 개방한 프로그램이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보면 필름사진에서 디지털사진으로 바뀐 과정이 생각난다.

3차원 공간에서 쉽고 자유롭게 물체를 그리고, 간단하게 편집할 수 있으며 다양한 스타일로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은 건축주와 상의하면서 설계할 수 있게 하였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낙서장부터 건축설계사의 전문 설계까지 수용할 수 있는 기능의 다양성을 경험한 사람들은 미래 건축 분야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적당한 핑계를 잘 찾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다. 아직은 할 일이 있는 나를 게으른 천성과 비겁한 핑계에 내 길 수 없다. 배운 것을 복습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 임을 잘 알고 있는지라 오마이뉴스 인터넷 신문에 한옥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연재기사로 작성해보겠다고 신청했다. 안 쓰면 금방 잊혀지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전 경험을 통해 숙달시키고 싶다.

인터넷 신문 연재기사 작성과 건축 설계 프로그램에 나를 단단히 묶었더니 3~4시간 이상 누워있을 수 없다. 피곤이 누적되어 수업시간에 자꾸 졸게 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사람에게 하루 일과를 보고했더니 적당히 일하고, 약 잘 챙겨먹고, 백팔배와 걷기를 거르지 말란다. 과로사(過勞死) 할 수도 있단다.

저녁 산책을 위해 학교 앞길로 나선다. 500리 먼 길을 달려와 배우겠다고 매달리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대견스럽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길을 느릿느릿 오가며 잡념으로 자신을 저울질 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지용한옥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아내의 존재가치, 씨족의 중심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