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가 아니면 가르치지도 말란 말인가"

2009개정교육과정과 수능개편안 중단을 촉구하는 외침소리

등록 2010.09.12 11:46수정 2010.09.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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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로 되는 일도 없지만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

교과부가 발표한 수능개편안의 취지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감소시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걱정하고 있다.

학교 수업은 국영수 중심으로 편중될 것이고 이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학문 영역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관심과 기초지식을 현저히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걱정의 핵심이다. 덧붙여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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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개정교육과정 중단 촉구 전국교육주체 결의대회 9월 11일 보신각 광장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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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효 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 (미래형교육과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 대회사에서 2009개정교육과정 중단 의지를 밝히고 있다 ⓒ 이태향


9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는 "국영수 편중교육 반대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9개정교육과정 중단과 수능체제개선 촉구 교육주체 결의대회"가 열렸다. 미래형교육과정저지 공동대책 위원회와 전국교직원노조, 각종 학회 및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였다.

전교조만 2009개정교육과정 반대한다고? 교총도 반대일세!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요구'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이를 만나보았다. 현재 교총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오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범대학의 교수님들과 함께 왔다는 주상영씨(서원대학교 사범대 도덕윤리과 4학년)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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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수제로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 주상영씨(서원대학교 사범대학 4학년 도덕윤리과) ⓒ 이태향


"도덕교과는 인성발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중이수제를 통해 단기간 이수하게 된다면 교육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또 교과별 수업시간 20% 증감에 따라 국영수 이외의 수업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도덕 과목의 경우 새로운 교사를 뽑지 않고 시간제 임시직으로 교사를 수급하게 될 것입니다. 2009교육과정에 대해 교육단체에서 반대의견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급하게 강행하고 있는 교육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구에서 온 한 초등학교 교사(29세, 여)는 주변학교에서 벌써 방학 보충수업을 하기 시작했다며 초등학교조차 학업성취를 위주로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준다고 하지만 교육적 목적의 자율성이 아니라 학력신장을 위해 한 점으로 줄서서 달려 나가게 하는 비교육적인 자율성이라고 했다.

교과서도 없이 가르쳐라?

"2007교육과정이 시행되려면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내년이 되어야 비로소 2007개정교과서가 나옵니다. 그런데 2009교육과정을 내년부터 실시하라고 하면 내년에는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죠."

변미혜 교수(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는 현장적합성을 검사하지도 않고 시행하려고 하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졸속에 대해 지적했다.

"설사 2009교육과정이 이상적인 교육과정이라 하더라도 이런 어설픈 태도는 있을 수 없고, 게다가 그 내용이 지금까지의 어떤 교육과정과 비교해도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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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경쟁논리로 교육정책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왼쪽부터 임미경 교수(전주교대 음악교육), 변미혜 교수(한국교원대 음악교육), 조성기 교수(공주대 음악교육) ⓒ 이태향


"언론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현장에서 대다수가 반대하고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도 이 일을 마치 전교조가 하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폄훼하고,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교원단체의 모습으로만 보도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임미경 교수(전주교육대학 음악교육과)는 우리나라의 언론을 질책했다.

"음악을 통해 함양할 수 있는 정서는 한 학기에 집중적으로 교육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음악, 미술, 도덕, 체육, 기술, 가정 각 과목들을 학업의 전 과정에서 골고루 익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몰아서 가르치게 하고, 국영수 과목 교사가 더 필요하게 되자 타 과목 전공 교사들에게 국영수 과목을 부전공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교육부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성기 교수(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는 기능적인 교과로만 교육을 하겠다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지적했다.

"교육과정 전공자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적 정서를 무시하고 섣불리 외국의 교육정책 일부를 도입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학교는 삶을 영위하는 소양을 배울 수 있는 일반 교육과정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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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예체능" "살려줘"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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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가 아니면 가르치지도 말란말인가!" 비가 오는데도 참여한 교육주체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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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 편중교육 강요하는 2009개정교육과정 중단하라" 악천후보다 개정교육과정 중단이 더 절실한... ⓒ 이태향


교과부가 주장하는 집중이수제와 교과군의 재분류로 학기당 이수할 과목수가 줄어들면 얼핏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개정 전에 12과목을 배웠지만 개정 후에는 8과목 정도만 수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에 부담을 주는 주된 과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기초 교양과목의 수가 학생들에게 학습 부담을 준 것일까?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를 해 온 과목은 정작 국영수가 아니었던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초 교양과목을 줄이는 방식이 아닌 국영수의 학업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가야 마땅할 것이다.

한 학기는 밥만 먹고 한 학기는 반찬만 먹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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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수업시수는 1시간 더 늘지만 실질적으로 교원수급은 감소할 것" 정용태 교사(부천 부명정보산업고 체육) ⓒ 이태향


정용태 교사(부천 부명정보산업고 체육과)는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일주일에 2시간씩 2학기 동안 하던 체육수업을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일주일에 5시간을 한 학기에 해야 한다고 했다.

"1학년은 체육이 필수고 2~3학년은 선택인데, 현재 저희학교는 3학년에서 체육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바뀌면 체육과목을 선택할 것 같지 않습니다. 체육과목이 한 학기에 집중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상업학교에도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수능개편안이 국영수 위주로 편중이 되면 소수의 대학진학 준비생들을 위한 형태로 학교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지로 4년 전에 이 학교에 왔을 때는 없었던 야간자율학습이 최근에 생겼고요, 우열반도 편성했습니다."

"아이들이 죽어간다 국영수 편중개편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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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포기자들을 양산하는 교육과정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고현욱 교사(천안 북일여고 수학) ⓒ 이태향


"수학수업의 시수가 늘어나면 아이들이 수학을 더 좋아하고 더 잘 하게 될까요? 오히려 학급에는 '수학포기자'들만 더 늘어날 뿐입니다. 수학교육의 목표는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세계를 읽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교과부는 우리 교육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고현욱 교사(천안 북일여고, 수학과)는 두 번 다시 외치고 싶지 않던 구호를 이 자리에서 다시 외쳤다. "아이들이 죽어간다. 국영수 편중개편 중단하라!"

이날 행사에는 현장교사와 대학교수 사범대학교 학생, 학부모 단체 등이 참여했다. 정부가 지향한다고 하는 교육목표인 도덕적이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를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기능적인 교과목 위주의 지식교육에서 탈피하여 건강하고 창조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교육의 대상인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상식적인 교육과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개정교육과정 중단 #교육주체결의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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