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요양시설에서 일하는 한 남성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의 일터는 중증 정신장애인의 요양과 복지를 위해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정신요양시설입니다. 시설에 입소한 생활인(정신장애인)은 대부분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 절실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생활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정신질환으로 인해 크고 작은 시비가 발생하며, 때론 생활인들이 시설 종사자들에게 매우 거칠게 불만을 표하기도 합니다.
정신요양 시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데,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말들로 설득이 쉽지 않은 정신장애 생활인들을 돌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요양시설 노동자들은 보람과 자긍심 없이는 장기간 일하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합니다. 대부분 복지시설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과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이유는 보람과 자긍심 때문입니다.
갖은 위법의 면죄부 '노동자 아닌 봉사자이기 때문'
해당 노동자는 40대 가장으로, 6년여 동안 100여 만 원 남짓한 임금을 받으면서 일해 왔습니다. 가족에게는 많은 돈을 벌어다주지 못해 늘 미안하지만, 오랜 타지 생활을 하다 고향에 내려온 그는 다른 직업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을 느끼며 근무해왔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힘든 것은 생활인들의 돌발 행동과 위협행위도, 낮은 급여도 아니었습니다. 한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보니 원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소위 '내사람' 심기 관행과 시킬 일은 다 시키면서도 노동자가 아닌 봉사자라 말하며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시설장의 잘못된 행태였습니다.
이에 뜻이 맞는 5명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노동자로 대우받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설 종사자가 30여 명이지만, 5명만 나섰습니다. 소수의 조합원이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을 강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단체교섭을 요청하자 잘못된 노조관을 가진 사용자가 그러하듯 조합원을 대상으로 불이익 취급을 하기 시작합니다.
더 낮은 임금을 받도록 조합원 5명에게만 시간외 근로를 시키지 않았고, 단체교섭에 성실히 나오지도 않은 채 노조 자체를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용자 행위는 노동부, 검찰로부터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처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증거 부족했지만 법은 사용자 손 들어줘
이때 사용자가 반격에 나섭니다. 바로 인사권을 이용해 주도적으로 노조를 설립한 한 노동자를 해고한 것입니다. 해고 사유로 내세운 것은 수년 전과 몇 개월 전에 발생했다는 생활인들에 대한 폭행 및 가혹 행위였습니다. 이후 사용자는 증거자료를 내놓습니다. 시설 노동자 2명의 진술과 생활인들의 진술서였습니다.
이후 사실들을 살펴보니, 사용자는 진술서 이외 객관적 자료를 하나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진술서를 제출한 시설노동자 두 명은 시설장이 부임하면서 데려온 직원들이었습니다. 이 두 직원은 계속해서 노조 탈퇴 및 해산을 종용했던 사람들로 노조 집회 때마다 나와 사진을 찍고 녹취하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생활인들의 진술서 역시 폭행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미리 사용자가 작성한 진술서에 생활인들이 서명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진술서였습니다. 소위 '조작된' 겁니다. 진술서대로 당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같은 업무를 하는 10여 명의 다른 노동자들도 알았을 텐데 그들은 전혀 모르는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폭행을 당했다면 있어야 할 흉터도 없었고, 시설 내 상주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치료를 받은 적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욱이 생활인들이 반창고 하나라도 붙이면 모두 기록되는 간호일지에는 어떠한 것도 기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 뒤 사용자는 해고노동자에게 다른 제안을 합니다. 해고 노동자에게 반성문만 쓰면 해고는 없던 걸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노조는 조심스레 해고노동자에게 의향을 물어봅니다. 해고노동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어떻게 하지도 않은 일에 반성문을 씁니까, 양심에 걸려 반성문을 쓸 수 없습니다"라고.
결국, 해고 다툼을 법의 판단에 맡기기로 합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하는 해고 심문 회의 당일, 사용자는 생활인들을 증인으로 데리고 나와 폭행사실을 입증하려 하였으나, 생활인들은 의사무능력자인 금치산자 선고를 받은 장애인으로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생활인들의 진술은 폭행 및 가혹행위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단지,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작성된 시설 노동자 2명의 진술서만이 폭행사건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지루한 심문 회의가 종료되고 결과는 정당한 해고로 판정되었습니다. 법에 의하면 노동자가 진 것입니다. 해고 노동자는 "결코 생활인을 폭행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냐"며 분통해했습니다.
법은 정의와 양심의 절대판단 기준 될 수 없어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필자는 우연히 간 새벽 과일도매시장에서 몇 주간 소식을 접하지 못하던 해고노동자를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한다고 말도 못 하고, 새벽 도매시장에서 단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고 싸움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심문회의를 며칠 남겨놓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해고노동자가 싸움을 그만두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고노동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낮고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양심을 팔아서 하지도 않은 일로 반성문 쓰고 복직하기도 싫고, 지금껏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더 이상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며 해고 싸움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1년 7개월의 노조 설립과 해고투쟁에서 노동자가 진 싸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법에 의해서만 양심과 정의를 판단받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억울하지만, 법이 정의와 양심의 절대적 판단기준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학진 기자는 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 지원 노무사입니다. 노동세상 9월호에 실렸습니다.
2010.09.16 10:30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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