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 가득했던 땅... 휴, 한숨 나온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8] 제부도에서 평택호까지

등록 2010.09.23 15:11수정 2010.09.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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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2리 공터에 내걸린 현수막. ⓒ 성낙선


모텔 주인의 호의는 이번이 처음  

9월 21일 (화)


어젯밤 내 기도가 통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살피는데 바람은 강하게 불지만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 언제 또 비가 내릴지 몰라 서둘러 짐을 쌌다.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신발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다시 또 젖은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게 끔찍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짐을 바라바리 싸들고 내려오다가 모텔 입구에서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제 이곳에 들르면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무척 신기하게 바라보던 분이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거냐,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으냐, 언제까지 여행을 할 거냐며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해준다.

마지막 질문에는 거짓말을 했다. 두 달을 한 달로 줄였다. 쉰이 다 돼가는 남자가 혼자서 두 달 동안이나 여행을 한다고 하면, 혹시 집 나온 사람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보름 여행하고 집에서 쫓겨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다. 사실 한 달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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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방조제. 시원하게 뻗은 자전거도로. ⓒ 성낙선


떠날 때가 돼서 잘 쉬다 간다고 인사를 했더니,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양갱 2개를 꺼내 내게 건넨다. 뜻밖이다.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식당 주인들의 호의는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어도, 모텔 주인의 호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남자 혼자 모텔을 찾아드는 걸 의아하게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양갱을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용기가 없어서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한다. 참 존경스럽다"고. 양갱을 받아들고, 난 참 부끄러웠다. 숙박 손님 뒤치다꺼리에 1년 365일 단 하루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숙박업계 주인으로서야 나처럼 장기여행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 부러울 수도 있지만,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다는 데는 너무 황송해서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양갱 2개에 이렇게 마음이 뿌듯해 보기도 드물다. 하늘이 돕고 사람까지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니까, 페달이 훨씬 가볍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강풍인들 장애가 될까? 아무 걱정이 없다.

진흙탕 길... 아, 또 속았다

제부도 모세길을 달려, 얼마쯤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러다 궁평리 이정표가 나오기 전에 해안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얼마 안 가 철조망이 나오더니, 그 아래로 비포장 진흙탕길이다. 한동안 망설였다. 그 길이 여행 둘째날 강화도에서 만났던 길과 유사하다.

그때 두 번 다시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길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길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열악하다. 길의 절반이 물웅덩이다. 흙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다. 자전거바퀴가 흙 속에 파묻히면서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에서 자꾸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렇게 또 속았다. 게다가 이 길에서는 철조망 지지대를 넘기 위해 전체 30kg 가까이 되는 자전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 이 길은 처음부터 입구에 자전거 출입금지 표지판을 걸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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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자락에 달라붙은 풀씨 ⓒ 성낙선


이 길 끝에서 고약한 식물을 만났다. 좁은 길을 뒤덮고 있어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풀이 스친 자리가 따끔따끔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다봤더니, 옷이며 다리에 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쌀알보다 조금 작은 풀씨가 가시를 박고 옷과 살갗에 달라붙은 것이다. 풀씨가 박힌 장단지가 몹시 쓰라리다. 그 풀씨를 하나하나 뜯어내느라, 또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다. 풀씨를 그냥 잡아 뜯으면 가시가 남아 있게 돼 꽤 조심스럽게 들어내야 했다.

해산물 백 가지 맛을 볼 수 있다는 '백미리어촌체험마을'

궁평항 가기 전에 백미리어촌체험마을에 들렀다. 해산물이 풍부해 백 가지 맛을 맛볼 수 있다는 마을이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방문한 차와 오랜만에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놀러온 차가 마을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난 한 가족은 명절 때마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한다고 했다.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들어서면서 식당 안에 활기가 넘친다. 3대가 모였다. 조상이나 후손이나 모두, 한가한 한가위가 있어 행복한 하루다.

궁평항 역시 귀향길에 나선 차들로 북적이고 있다. 화성방조제가 생기기 전엔 한가한 어촌에 불과했던 항구가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규모의 관광지로 변했다. 항구에 들어가려는 차와 이제 관광을 끝내고 나가려는 차가 뒤섞여 몹시 혼잡하다. 주차장 한쪽에선 불우이웃돕기 트로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방파제는 강풍에 높은 파도가 일고 있는데도 낚싯대를 꼬나들고 있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방파제 아래에서는 즉석에서 회를 떠주는 사람들이 바쁘게 칼을 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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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리어촌체험마을. 체험객들을 실어나르는 트랙터. 뒤에 보이는 바위는 감투바위, ⓒ 성낙선


이곳에도 제부도에서 본 것과 같은 형태의 바다낚시터가 있다. 바다 한가운데 잔교를 세우고, 그 위에서 낚시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제부도보다는 2배 이상 더 규모가 커 보인다. 낚시도 낚시지만, 잔교 위에 서서 바라보는 광대한 풍경이 무척 시원하다.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데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강풍에 파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화성방조제는 궁평항에서 시작된다. 방조제 왼쪽으로 자전거도로가 일직선으로 나 있다. 처음엔 방조제 오른쪽으로 올라섰다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감기면서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자전거도로 끝이 소실점으로 사라져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매향리', 매화 향기 가득했던 땅... 휴, 한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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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방조제에서 바라본 농섬. 2005년까지 미군 폭격장으로 사용됐다. ⓒ 성낙선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오른쪽으로 2005년까지 미군 폭격장으로 쓰였던 농섬이 보인다. 55년여 동안 사격과 폭격에 시달린 나머지 지금은 섬 머리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섬의 일부가 사라지는 동안 주민들이 당한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화성방조제를 나오면 오른쪽으로 또 다시 철조망 아래 비포장 길이다. 휴, 한숨이 나온다. 형편 무인지경의 길을 보고도 미련 없이 돌아서지 못하는 내 심정 아무도 모른다. 이 길 역시 흙탕길이다. 그나마 이전길들보다는 좀 나은 게 물웅덩이가 덜하고 땅이 비교적 단단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 길을 빠져 나오면 미군 사격장 반대 투쟁으로 유명한 매향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매화 향기 가득했던 땅이 전쟁 이후 미군의 사격장과 폭격장으로 쓰이면서 55년 가까운 세월을 미군의 사격과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 사이 오폭 등으로 사망한 주민만 20여 명, 굉음에 청력을 잃거나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게 된 사람은 부지기수다. 사람만 고통을 당한 게 아니라, 가축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그 사이 언론은 주민들의 고통을 알고도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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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마을 입구에 쌓아놓은 탄피. 매향리의 끔찍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 성낙선


반대 투쟁이 일어난 건 1980년대 말이다. 그 이후로 험난한 투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한국 땅에서 미군의 힘은 무소불위다. 미군 기지를 없애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고, 미군 기지를 이전하는 것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구속과 투옥이 반복된 끝에 실로 55여 년 만에 사격장을 이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사이 매향리 앞바다에 떠 있는 섬, 농섬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했다.

매향리 마을 입구 도로가에 포탄 껍데기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주민들이 농섬 등지에 버려진 포탄을 일부 수거해 쌓아놓은 것이다. 전쟁 시기도 아닌 때, 마을 주변에 이런 포탄이 나뒹굴고 있는 게 섬뜩하다. 아마도 매향리의 과거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읽힌다. 나도 모르는 새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간간히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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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2리 공터에 설치된 노래자랑대회 무대. ⓒ 성낙선


매향2리 마을 앞 공터에서 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기 직전이다. 마을 주민 한 분이 "명절이니 신나게 놀아야 한다. 아무나 와서 놀아도 된다"며 한껏 들뜬 표정이다. '아무나' 와서 놀아도 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 청년들이 탁자와 의자를 나르느라 부산하다. 어른들의 표정은 넉넉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천진난만하다. 마침내 매향리에도 평화가 찾아온 것인가?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마을이 매향리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향리를 지나 남양만방조제를 건넌다. 이 길은 평소 화물차가 많이 지나다니고 도로 폭이 좁아 꽤 위험한 편이다. 그런데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차량 한 대 찾아보기 힘들다. 그 긴 길을 오로지 자전거 한 대가 외롭게 지나가고 있다. 방조제를 지나면서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점점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있다. 조만간 큰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비 핑계로 하루 편히 쉬어 가면 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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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방조제 선착장. 높은 파도에 배들이 출렁이고 있다. ⓒ 성낙선


방조제를 넘고 나서 상당히 길을 헤맸다. 길 안내 표지판이 상당히 아리송하다. 우회전해서 한참을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오고 다시 아산만방조제 표지를 재확인하고 나서 직진했다가 이번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해군2함대사령부 정문과 마주쳤다. 그 무렵 때맞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 한 번 시원하게 쏟아져서 좋은데, 이번에는 길을 잃고 막다른 길의 차량 진입 장애물 앞에서 맞는 비라 짜증이 솟는다. 바닷속이든 빗속이든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다. 마침 그 길을 가는 공사장 인부가 있어 길을 물었다. 그 분들 내가 참 딱하다는 표정들이다.

해가 지기 전에 아산만방조제를 건널 생각이었는데, 결국 해가 져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평택호에 머무른다. 평택호관광지 주변에 횟집들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느 집 하나 비 맞은 외로운 나그네를 불러 세우는 집이 없다. 오로지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댈 뿐이다.

숙소에 들어와, 물폭탄에 서울 도심이 마비됐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그 사이 내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도 여러 통 걸려 왔다. 지금은 비구름이 경기 남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평택 역시 호우주의보 지역에 포함이 되어 있다. 차라리 비가 올 바에, 아침 일찍부터 퍼부었으면 좋겠다. 비를 핑계로 만사 제쳐두고 하루 편히 쉬어 가면 좀 좋은가? 오늘 달린 거리는 85km, 누적거리 508km이다.
#고온리 #매향리 #백미리어촌체험마을 #평택호 #궁평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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