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75회)

승전놀음 <3>

등록 2010.09.28 10:08수정 2010.09.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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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쇠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광대패거리들을 이끌고 조선 팔도를 유람한다고 했다. 피곤하면 드러눕는 게 잠자리고 잠이 깨면 줄을 타거나 땅재주 부리며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지난 단오 날에 윤치호가 집안으로 불러 한바탕 놀이판을 벌였는데 행화를 지불하지 않아 어제 받으러 왔다고 했다.

"물론 박씨가 줬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방 나갔지요."
"꼭두쇠 이름을 아십니까?"


"이름은 알 수 없고 사람들이 천가(千哥)라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나이 스물일곱인가에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된 걸 보면 빈 머리는 아닌 모양입니다."
"여기에도 관원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특별한 일이 떠오르면 알리십시오."

박씨의 주검을 사헌부로 옮긴 후 정약용은 흥미있는 얘기를 의원에게 들었다.
"이런 사체는 처음 봅니다. 아주 희한한 일이죠."
"?···."
"박씨 부인은 방사를 나누던 중 목숨을 잃었으니 당사자로선 아주 행복한 죽음이었겠지요. 중독사지만 살해 도구는 '양의 창자'입니다."

검시의는 '양의 창자'에 대해 웃는 낯으로 들려주었다. 기원전 100여 년 경, 사라누스라는 희랍의사가 임신해선 안 될 처녀의 피임법을 설명했는데, '여인은 성교시에 사내가 사정하면 일단 호흡을 멈추고 정액이 자궁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몸을 뒤쪽으로 빼치면서 곧 일어나 무릎을 꺽은 자세에서 재채기 하면 된다'고 했다.

자궁피임법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훗날인 1803년 뮬러가  만든 도뇨관(導尿管)의 깍지였다. 그 이전엔 영국의 찰스 2세(1660~1685)의 주치의 콘돔 박사가 피임도구를 만들었는데 지금의 고무 제품과 같은 것이라 했다.

"···사내는 박씨 부인과 관계를 가질 때 양의 창자 표면에 독물을 발랐어요. 독물은 박씨에게 치명상을 안겨줬지만 사내는 이상이 없었겠지요. 사내가 이런 행위를 하는 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난 상대가 원하는 물건을 얻었거나, 아니면 영원히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생각엔 그 잔 분명 원하는 물건을 얻었다고 봅니다."


삼개나루를 건너려던 꼭두쇠가 기찰포교에게 끌려온 건 다음날 오후였다. 품에 지닌 게 별로 없었다. 간밤에 웃고 얘기하던 '양의 창자'란 것도 보이지 않았고, 돈푼이나 나가는 건 전연 없었다. 다만, 근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두루마리 산수화 한 폭이 있었다.

"이건 뭔가?"
정약용이 그림을 치켜들며 물었다.


"별것 아닙니다. 인근 도선사 스님이 소인에게 청정심(淸淨心)을 가지라고 미인도를 한 점 주셨습니다. 표구방에 들러 겨우 접지를 마친 상태인데, 전라도 광주에서 놀이판을 열어달라는 연락이 와 서둘러 내려가는 길입니다."

다른 물건은 없었으나 정약용의 마음자리를 파고든 건 그림이었다. 접지를 마쳤는데 그 솜씨가 참으로 엉성했다. 귀통이를 약간 뜯자 쉽게 벗겨졌다. 좀 더 밑으로 내려가자 모습을 드러낸 건 미로 놀이처럼 꼬불꼬불 얽혀진 집의 조감도(鳥瞰圖)였다.

"왜 조감도를 접지했는지 말하게."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리 종이가 없기로서니 집의 형태를 그린 조감도를 사용하는 건 합당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도선사의 스님이 접지한 것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엉성했다. 아무래도 입을 열 것 같지 않아 정약용이 슬쩍 비틀었다.

"아무리 원한이 깊기로서니 여러 사람을 죽인 건 법에 의해 처벌 받네. 그런 줄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살아나갈 생각은 말게. 자네가 말하지 않는다 하여 영원히 묻혀질 비밀은 없네. 다소 시간이 걸리겠으나 사실은 밝혀질 것이고 모든 건 백일하에 드러나네. 그리되면 내가 자네를 도울 길은 아무것도 없으니 오늘 하루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하게."

다음날 오전 11시가 됐을 때 꼭두쇠가 정약용을 찾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담고 가기엔 한이 무겁고 많은 탓이었다.

"나는 천양호(千陽浩)란 자로 광대 패거리의 꼭두쇱니다만, 본래는 관우희란 광대패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세 해 전 한양에 왔을 때 이경호 선생이 생각났어요. 그 분이 돌아가신 지 꽤 시간이 지났으나 내 마음엔 그 집에 있는 사금이란 계집종이 자리를 잡고 있었거든요. 얼굴이 곱상한 그 아인 우리가 올 때마다 나를 보면 얼굴을 붉히고 도망치듯 돌아가곤 했으니까요. 그 처자가 지금은 무얼 하나 싶어 은밀히 수소문 했는데 인근 사람들 얘기론 뱃속에 아이를 담은 채 맞아 죽었다지 뭡니까. 너무 놀라 하루 종일 강가에 앉았다가 광대 패거리들이 모여 있는 마포나루로 돌아왔는데 뜻밖에 윤씨댁에서 손님이 와 있지 뭡니까."
"그래서 단옷날 윤치호 집에서 놀이판을 벌였구먼."

"그렇습니다. 놀이판이 끝나갈 무렵, 윤치호는 급한 연락을 받고 나가고 우리들은 하룻밤 그 집에 묵게 됐지요. 한밤중에 윤가의 부인이 저를 별당으로 불러 값나가는 노리개 몇 개를 던져주며 자신의 아픈 곳을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야 안마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지 육신을 주물렀는데 나중엔 제 몸을 끌어당기며 요동했어요. 거부하면 살아나기 힘들다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봉사한 탓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백일 후 다시 한 번 집에 들르면 행화를 넉넉히 주겠다고 약조 했습니다."

"행화야 받았을 것이고, 무슨 이유로 윤치호를 죽였는가? 반드시 죽여야 했는가?"
"아닙니다. 미운 건 끝이 없었습니다만, 죽일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박씨를 만나려고 월장한 후 정을 통하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예전과는 달리 근자엔 하루가 멀다않고 계집질이니 윤가를 살려둘 수 없다는 겁니다. 최근에 '청금상련'이란 문자를 쓰며 거만을 떠는 게 그렇게 보기 싫더랍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자신이 보기나 한 것처럼 박가가 악에 바쳐 씹어낸 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들 광대패가 흥얼대는 타령 속에 <한양가>가 있습니다. 그 안에 별감에 대한 댓거리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십시오."

별감의 거동 보소. 난번 별감 백여명이
맵시도 있거니와 치장도 놀라울사
편월상투 밀화동곳 대자동곳 섞어 꽂고
곱게 뜬 평양망건, 외점박이 대모관자
상의원 자지팔사, 초립밑에 팔괘 놓고
남융사 중두리의 오동입식 껴서 달고
손뼉같은 수사갓끈 귀를 가려 숙여 쓰고

위의 타령에 나오는 편월상투는, 상투를 뭉치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을 낱낱이 편 후 빗질을 하여 조각달처럼 보이게 하는 상투다. 상투가 풀어지지 말라고 꽂는 동곳도 사치를 하는데 누런 호박(琥珀)이 '밀화동곳'이다. 누런 호박은 꿀이 엉킨 것 같다 하여 '밀화'라 한다.

상투를 짰으니 이번엔 망건이다. 상투를 튼 머리카락이 흩어지지 말라고 동여매는 데 윤치호는 평양망건을 썼다. 액정서 별감 윤치호가 평양망건을 쓴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정조가 보위에 오른 후 규장각 각신이 쓴 와룡관이 평양에서 제작되어 이름이 높았다. 벼슬아치가 옥관자를 달면 나리, 금관자를 달면 영감, 도리옥을 달면 대감이다. 별감들은 금관자나 옥관자가 아닌 대모관자를 달았다. '대모'는 누런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바다거북이의 등뼈로 고급재료였다. 그렇듯 정성을 다했는데 서방이 하루 다르게 변하니 이젠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원들이 쓰는 마취약을 구해 놓았으니 그것을 수건에 묻혀···."
"박씨 청으로 그런 일을 했다는 건가."

"예에."
"헌데, 어찌하여 박씨는 죽였는가?"

"보약이라는 건 사내 몸이 어떤 체질인가를 알아낸 후 약을 써야 탈이 생기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현모양처는 방사를 나누는 남편이 어떤 몸을 하고 있는 지에 따라 보약을 쓴다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현모양처란 말을 쓸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이를테면 방사를 치르는 중에 흘리는 땀도 종류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걸 기설(氣泄)이라하는데, 여러 가지 구분법이 있습니다. 음식을 많이 먹고 흘리는 땀은 '위'에서 나오고, 깜짝 놀라 탈정해 흘리는 땀은 '심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멀리 갔던 탓에 흘리는 땀은 '신장'에서, 달음질 치거나 공포로 인해 흘리는 땀은 '간장'에서, 몸을 흔들어 나오는 땀은 '비장'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방사를 하면 비장의 기운이 쇠해 위장의 기운이 빠져나오려 하는데 이것이 종기설(宗氣泄)로 몸이 위험해지는 경웁니다. 현모양처는 남편의 몸에서 흐르는 땀을 냄새와 맛으로 알아보고 처방전을 만들어 보약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얘기는 이내 이어졌다. 박씨는 자신이 좋은 약재를 구해 남편에게 보약을 만들어주면 원기를 회복해 다른 곳에 힘을 쓴다고 이를 갈았다. 결국 그로 인해 윤치호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박씨는 내게 제안 했습니다. 집안 어느 곳에 금덩이와 엽전을 무더기로 보관시키고 있는데 그것만 있으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고 소곤거리지 않겠어요. 당분간 집은 다른 사람에게 살게 하면 되는 것이니 훌훌 어디로든 떠났다가 몇 해가 지나 돌아와 시치미 떼고 살면 어느 귀신이 알겠느냐였어요."

그런 얘기 끝에 박씨는 교활한 미소를 머금었다.
"날 업신여기면 사금이란 년처럼 처참한 죽임을 당할 게야. 그년은 뱃속에 든 새끼와 함께 죽었으니 저승길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게야."

그제야 꼭두쇠는 사금이를 죽인 사람이 윤가의 마누라 박씨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윤치호의 목을 자르고 함께 도망가 살자고 한 인연이니 박씨도 저승으로 떠나는 순간만은 기쁨을 줘야지 않겠어요. 승전놀음은 항상 힘없고 나약한 자가 이기잖아요. 허허허!"

[주]
∎관자 ; 망건에 달아 당줄을 걸어넘기는 작은 고리
∎동곳 ; 상투가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는 것
∎숙초 ; 삶은 명주실로 짠 비단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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