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해수욕장
성낙선
그러다 어느 한 순간, 1km 정도 떨어져 보이는 거리의 짙은 어둠 속에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도시'가 보였다. 그 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대규모 리조트였다. 그 리조트가 어둠 속에서 마치 중세 유럽의 성곽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는 왜 이런 곳에 저처럼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온사인은 사막에 건설했다는 환락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시켰다. 그 이국적인 도시가 바로 격포항과 채석강을 지역의 대표 명소로 내세운 관광지, 격포였다.
농촌인지 어촌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한 시간 넘게 어둠 속을 헤매다가 느닷없이 높은 건물 아래 불빛으로 번쩍이는 거리로 들어서는 게 상당히 어색했다. 나 또한 도시인임이 분명한데 격포가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졌던 건 빛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데다, 격포가 단지 도시의 유흥지를 본 따 옮겨 놓은 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빛이 사라진 격포, 비로소 격포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오늘 아침, 불빛이 사라진 관광지 격포에서 눈을 떴다. 비로소 격포가 좀 더 격포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눈엔 그나마 화장기를 지운 격포가 더 편하고 익숙해 보이는 까닭이다. 소박한 마을이었던 격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하루, 날이 맑을 줄 알았다. 단지 바람이 좀 거세게 부는 게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숙소 밖을 나서서 채 100미터를 가지 못해 또 비를 맞는다.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맘 놓고 숙소를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오다니. 비가 오니까 바람도 더 거칠게 부는 기분이다. 하늘을 보니, 금방 그치고 말 비 같아 보이지 않는다.
숙소를 나선 지 10분도 안 돼 다시 숙소로 기어들어갈 수도 없고, 다시 거리로 올라선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하늘을 가만히 서서 올려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복한 내 인생, 이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려니 체념하고 만다.
격포해수욕장 앞, 파도가 뜻밖에 높다. 해변으로 달려드는 파도소리가 으르렁거리는 짐승 소리를 닮았다. 바다가 무슨 이유인가로 잔뜩 성이 나 있다. 가까이 다가서기 두렵다. 2, 3십 미터 밖에서 셔터를 누른다. 그런데도 바닷물이 바람에 묻어 날아오는 걸 피할 수 없다. 해변을 걸어서 채석강으로 가는 길이 매우 위험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