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공항. 한가로운 소도시에 온 느낌을 들게 한다
김현
비가 연일 내렸다. 비는 내리지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마음이 줄곧 심란했다. 해외나들이인 중국행은 설렘보다는 심란함이 더 나를 잡아맸다. 그래도 약속된 것이라 취소할 수도 없었다. 또 무엇보다도 우리의 옛 선조들이 고난의 삶을 일구었던 간도지역과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돌아본다는 생각이 날 강하게 이끌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은 비와 함께 시작됐다. 8월 17일 새벽 1시 30분. 비는 세차게 어둠을 때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여행 가방을 챙겼다. 아내는 새벽에 길을 떠나는 남편을 위해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주고 우산을 받쳐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열심히 기도했으니 괜찮을 거야."
나의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무척 컸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김포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고막이 깨지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비행기에 내려서 2주일이 지났는데도 귀는 먹먹하고 두통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난 수없이 '괜찮을 거야'를 중얼거렸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혼자만 근심을 가득 가지고 공항으로 달리는 마음, 별로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세 시간 반을 달려 인천에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가지 전 아침으로 된장국을 시켜먹었다. 비는 그친 지 오래고 언제 비가 왔냐 싶게 태양빛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인천에서 장춘으로 떠나는 비행기는 9시 30분발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 심호흡을 크게 했다. 함께 간 일행들은 이러저런 이야길 나누려 바쁜데 나 혼자만 속앓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 비행기 못 타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행기 이륙과 함께 난 눈을 감았다. 난 눈을 감은 채 내 신체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귀에도 머리에도 통증이란 놈이 찾아오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날아가 장춘 공항에 도착할 때쯤에야 멍한 기운이 좀 들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서야 새벽에 집을 떠날 때 괜찮을 거라는 아내의 말이 정겹고 고마운 소리로 들려왔다.
장춘 공항은 인천공항보단 작고 한적했다. 출국 소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첫 느낌은 우리의 작은 지방 도시의 느낌이랄까, 뭐 그런 거다. 며칠동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길림성(지린성)의 성도인 장춘(창춘)에 머물면서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가 오기 전에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좀 색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