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과 '난잡'의 차이, 읽어보면 알텐데..

최제훈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등록 2010.10.11 11:54수정 2010.10.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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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르발 남작의 성> 표지
<퀴르발 남작의 성> 표지문학과지성사
최제훈의 첫 번째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은 여러 가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첫 번째는 신인답지 않게 이야기를 혼합하는, 이른바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다. 더군다나 소설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이 "시공을 뒤섞어 한바탕 난장"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한 눈길은 더 또렷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소설은 표제작 '퀴르발 남작의 성'과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 '괴물을 위한 변명'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옛날이야기가 어떻게 변형되어 현대에까지 전해지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일단 그 서술방식부터가 흥미롭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대화,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대화, 소설가와 편집자의 대화는 물론 기자의 영화평, 어떤 학생의 리포트와 어느 교수의 강의, 블로거의 영화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면 소설은 굉장히 난잡한 작품이 될 뻔했다. 하지만 최제훈은 매끄럽게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이어간다. 덕분에 소설은 다채로우면서도 생생한 '맛'을 만들어내고 있다.

월간 '마녀 스타킹' 2007년 12월호에 수록됐다는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은 그리스로마신화부터 중세 유럽을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녀'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했고, 마녀를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덕을 부렸는지를 보고서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이 또한 최제훈 소설만의 특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공을 뒤섞는 이야기의 힘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보게 해준다.

프랑켄슈타인을 주목하고 있는 '괴물을 위한 변명'도 마찬가지. 소설은 외모 때문에 창조물에게 버림받은 괴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기에 그런가. 소설의 첫 장에서는 누구나 아는 것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접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읽는 맛이 꽤 쏠쏠할 뿐만 아니라 최제훈 소설의 특색을 다시 한 번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퀴르발 백작의 성>이 눈길을 끄는 두 번째 이유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지리멸렬한, 그리고 비참할 정도로 슬픈 인간 사회를 좀 더 생생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나'라는 건 무엇일까. '그림자 박제'의 '나'는 대형 마트 공중화장실에서 멍키스패너로 사람을 구타한 혐의로 체포된다. 그런데 '나'는 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범행을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또 다른 나'가 그것을 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상상 친구를 만들어 함께 논다. 하지만 그건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것에 불과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달랐다. 하지만 결혼한 후, 아내가 자식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느 날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내보려고 한다. 그것은 아주 치밀한 것이었다. 예컨대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또 다른 나'는 왼손잡이다. '나'와 달리 그것은 행동이 정열적이며 또한 거침이 없다.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들, 예컨대 나이트클럽에 가서 여자를 만나는 일 등을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했을까? 행복했다. '또 다른 나'가 또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의 매듭'에서도 '또 다른 나'가 출현한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친 후 '나'는 어떤 인물과 추억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또 다른 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걸까? 그것이 나의 마음을 심하게 옥죄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은 능청스럽게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들이, 현실 속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제훈이 그것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들은, 상처받고 고통 받다가 결국에는 그 속으로 숨어버리고 마는 나약한 현대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니 구별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야기를 매끄럽게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것이 난장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더 빛난다. 그 사이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그 고집스러움은 어떤가. 그 또한 미덕이다. 여러 모로 <퀴르발 남작의 성>은 눈 여겨 볼 이유가 많은 셈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0


#최제훈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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