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4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 벌금 150만 원과 추징금 952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2004년 5월 국회의장을 퇴임한 박 전 의장은 2006년 4월 서울역 앞 택시정차장에서 박연차 회장 측으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통해 현금 2억 원을 받고, 또 그 해 7월 부산의 한 호텔 내 주점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2형사부(재판장 이규진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돈을 받은 2가지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해 박 전 의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2억 952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박 전 의장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박연차 회장이 민간연구소 후원금으로 2억 원을 제공한 것으로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고, 설령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1심 형량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박 전 의장은 2002년 7월부터 2004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역임했고, 의장 퇴임 이후 현재까지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2006년 6월부터 현재까지 한나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2007년 5월에는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관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1월 정당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전 아들을 통해 2억 원을 받은 정치자금법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로 판단하며, 박 전 의장에게 벌금 150만 원과 추징금 952만 원(당시 1만 달러 환율로 산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식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사회활동을 주로 한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인의 사회활동이 기존의 소속 정당이나 다른 정당과 인적·물적으로 연계돼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고, 고령의 나이 등을 감안할 때 피고인을 정치자금법상의 '정치활동을 하는 자'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당직으로 복귀하기 이전에 수령한 2억 원에 대해서는 도덕적·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고, 다만 한나라당 상임고문으로 복귀한 이후의 1만 달러 수수행위만을 처벌할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치권력에 영합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가로부터 정치자금법에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미화 1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깨끗한 정치를 염원하는 일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피고인은 국회의장을 역임한 원로정치인으로서 정치 관련 법령을 준수해 다른 후배 정치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그에 반하는 행태를 보여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준 점 등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평생에 걸친 정치역정 속에서도 정치 관련 범죄 등의 위법행위로 처벌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했던 것으로 보이고, 오랜 기간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의 입법 활동이나 정치 발전에 헌신한 점, 정치자금을 수수할 당시 국회의원 등과 같이 현실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공직을 보유하지 않았던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