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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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화폐금융박물관 건물은 1907년 일본 제일은행이 사용하기 위하여 착공되었지만 이후 1909년 '한국중앙은행 조례에 관한 협정'에 의해 구 한국은행이 인수하여 공사를 완료하여 조선은행 본점 건물로 사용하다 1950년 한국은행 본점 건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파손된 건물을 1958년 다시 복구했고, 1981년 국가중요문화재 사적 제280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청사나 경성우체국, 경성역사, 조선호텔 등과 더불러 일제강점기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건물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절충식 기법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원형 복원시 건물 외벽은 이전과 동일하게 복원하였으나, 내부는 현대적 건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다소 변경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한 시대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화폐금융박물관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할 문화재 명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이 문화재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스쳐가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게다가 화폐라는 이름으로 서울 유형문화재 제 259-6호로 지정된 상평통보(소재지: 도선사)가 전부인 것 같다. 이도 그런 것이 남대문 시장이나 인사동만 가도 '엽전(상평통보)'이라 이름 붙여진 옛날 돈들이 널리고 깔렸기 때문이다. 분명 그 중에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소견이 화폐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해 판매하거나 버리거나 함부로 굴리는 일이 파다하니 이를 통제하는 방법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옛날 돈은 모두 다 문화재!"라고 지정하는 것도 우습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화폐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조상들의 피와 땀이 가장 많이 서려 있고, 우리의 역사나 문화를 가장 먼저 알리고, 가장 오래 알리는 최고의 외교사절단이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남대문에서 화폐박물관까지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에 발품을 팔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리가 만난 외국인, 내국인은 누가 더 많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등하게 각자의 일을 보며 명동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 많은 관광객들은 모두 명동의 쇼핑문화만을 즐길 뿐 화폐박물관을 향해 눈길을 돌린다거나 발품을 팔지 않았다. 나 또한 명동을 약속 장소로 많이 잡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일부러 찾은 적이 거의 없으니 할 말은 없다.
내년이면 벌써 개관 10주년을 맞는 화폐 박물관. 그동안 무심하게 문화재를 지나쳤던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화폐박물관의 속을 들여다보고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