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7일 개최된 P20민중회의의 모습1017빈곤 철폐의날 투쟁 "빈곤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집회 도중 참가자들이 P20 민중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대학생사람연대
"자활근로로 얻은 수입이 39만 원이었다. 이 중에서 고시원비로 21만 원이 나간다. 이 자활근로마저도 서울시가 끊어 버렸으니 살길이 막막하다."
홈리스행동 한정우씨의 탄식이다. 고달픈 삶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G20회의는 1박 2일로 개최된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정상들이 보기 좋게 만들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없앤다.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농담을 서로 한다." 강남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민주노련 이경민씨의 말이다.
지난 17일 서울역에서는 G20 정상회의에 맞선 P20 민중회의가 개최됐다. G20정상회의가 가진 자들의 회의라면 P20은 Poor 20, 가난한 사람들의 회의다.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빈곤 없는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제목의 집회가 개최됐고 그 중간에 P20회의가 개최된 것이다.
홈리스, 노점상에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최근 불법파견근로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해고자 이청우씨다.
"최저임금 4110원,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다 이 돈을 받고 일한다. 이걸로는 생활이 안돼서 10시간 13시간 잔업과 특근을 한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이 불법이라고 판결하자마자 사내하청노동자를 모두 해고했다." 동희오토는 현대·기아차의 '모닝'을 만든다. 사장은 당연히 정몽구 회장이지만 아웃소싱이라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결국 쫓겨난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90일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현대는 물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따로 인터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는 솔직했고, 솔직한 만큼 현실적이었고, 현실적인 만큼 잔인했다.
"물난리 났을 때, 특별지원금 준다고 하더니..."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 주민연합(주비연합)의 이춘숙씨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쪽방 사는 분들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비닐하우스촌은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살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부자들만 산다는 강남 서초동의 '잔디마을'도 대표적인 비닐하우스 촌이다. 이춘숙씨는 이번 물난리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곳은 지하방만이 아니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촌도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는 것. 그런데 지원은 조금도 안된다고 한다.
"물난리 나서 대통령이 특별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이번에는 좀 우리를 위해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기가 주는 게 아니고 지자체 보고 주라고 한 것이었다. 지자체의 공무원이 와서 둘러보더니 무허가라고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언제부터 국민이 허가받고 국민이었는지 모르겠다."며칠 뒤 담당공무원이 300만 원 정도를 들고 와서 주민들 보고 얼마씩 나누자고 했다고 한다. 화가 난 사람들은 이를 거부했다. 서울을 'G20 정상회의 개최도시'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정부와 서울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장애인과 빈민, 노숙인, 노점상,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빈곤없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P20 민중회의에 앞서 격려인사를 한 조승수 신임 진보신당 대표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것은 옛말이다, 현재 생산은 넘쳐흐르고 있다"며 "그런데도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의료보험 민영화 되면, 사람들 치료할 엄두도 못 낼 것"집회 참가자들은 '빈곤심화, 경제위기 책임전가 G20을 규탄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목소리로 기초법 전면 개정하자!', '민중의 건강권마저 내다파는 의료민영화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G20을 핑계삼아, 노점상, 노숙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인간청소를 자행"한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 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 집회 마지막에 함께 읽은 '1017 빈곤 철폐의 날 '빈곤 없는 세상을 향한 선언''은 "160만 수급자를 빈곤의 감옥에 몰아넣고, 복지 수급을 필요로 하는 400만 명 인구를 사각지대에 방치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얼마 전 자식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만들기 위해서 부모가 자살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 하에서는 부양가족이 있을 경우 현실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수급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날 마지막 발언을 한 현정희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의 공공노조 부위원장은 "정부가 영리법인을 설립을 허가하고, 삼성과 함께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이어 "병원에 하루입원하면 1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비싼 2인실만 지어서 이것만 이용해야 한다"며 "거기에 요즘 1000~3000만원 짜리 로봇수술을 하라고 난리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되면 없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G20정상회의 때 회의장인 코엑스 주변으로 두꺼운 방호벽을 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사회 빈자와 부자 사이엔 이미 두꺼운 방호벽이 쳐져 있다. 지금은 방호벽을 칠 때가 아니라 방호벽, 빈곤을 철폐해야 할 때가 아닐까? 주비연합의 이춘숙씨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G20한다고 150여명이 살고 있는 판자촌 주변에 펜스를 치고 예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빈곤은 펜스 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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