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줄줄 흐르는데, 일반진료는 안 합니다?

[경험기] 미용성형만 하는 성형외과... 얼굴 다친 아이, 결국 종합병원서 진료

등록 2010.10.22 11:58수정 2010.10.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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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가끔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그냥 교실 바닥에 넘어졌는데 이마가 찢어지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러졌는데 턱이 찢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1년에 1~2번씩 이런 사고가 나서 교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듭니다.

뛰어 놀다 얼굴 다친 아이, 성형외과로 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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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성형외과 진료 접수 창구 ⓒ 이윤기


며칠 전에도 아이 하나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놀다가 넘어졌는데, 미처 손으로 바닥을 짚지 못하고 얼굴이 미끄럼틀 난간에 부딪힌 것입니다. 눈 옆으로 크게 멍이 들고 붓고, 피부가 약간 찢어졌습니다.

팔이나 다리에 상처가 좀 깊이 나면 외과에 가서 몇 바늘 정도 꿰매면 되는데, 상처 부위가 얼굴이면 성형외과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친 아이를 데리고 성형외과에 가면 푸대접을 받기 일쑤입니다.

그냥 외과에 가서 꿰매면 의료보험이 되는데, 성형외과는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진료비도 적지 않게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친 부위가 얼굴이면 나중에 자라서 흉터가 남지 않도록 성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상처가 났을 때 성형외과에서 꿰매는 경우, 대체로 일반 외과에서 받는 진료비의 10배 가량을 부담해야 하더군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10배쯤 되는 진료비가 아니라 진료를 해주는 병원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진료는 안 합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작년 여름 교실에서 놀다 넘어져 이마가 찢어진 아이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성형외과(개인병원)에 갔는데, 진료를 거부하더군요.

"아이가 교실에서 놀다가 이마가 찢어졌는데요. 흉터가 안 남으려면 꿰매야 할 것 같아서요"
"저희 병원에서는 일반 환자 진료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아니, 애가 다쳐서 피가 줄줄 하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라니요? 의사 선생님 안 계신가요?"
"일반 환자는 안 받는 것이 저희 병원 방침입니다. 거즈를 드릴 테니 피가 흐르지 않도록 꼭 누르시고 다른 병원으로 가 보세요."


너무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더군요. 아무리 따져도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다친 아이를 데리고 계속 싸울 수도 없고 근처에 있는 다른 성형외과에 갔지만, 똑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경남 창원에 있는 제일 큰 응급의료 지정기관인 대학병원(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곳 성형외과에서는 진료를 해줄 거라고 말입니다.

사실, 제가 곧장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고 일반성형외과를 찾은 것은 종합병원의 긴 대기 시간 때문입니다. 보통 종합병원의 경우, 예약진료를 받기 때문에 응급실이 아니면 2~3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예사더군요. 종합병원에서도 성형외과 진료를 받으려면, 다른 예약 환자들 뒤에 긴 시간을 대기했다가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종합병원을 가더라도 응급실에서는 일반외과에서처럼 꿰맬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개인)병원 성형외과에서는 미용성형과 같은 수술만 하고, 아이들 얼굴 상처 같은 경우는 진료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성형외과 진료 없는 종합병원이었다면, 어쩌라고

이런 사정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며칠 전 아이가 다쳤을 때는 곧장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대학병원에서도 진료가 안 되는 겁니다. 담당 과장님이 오후에 수술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환자 진료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수술이 아니어도 요일별로 진료를 하기 때문에 제 경우처럼 얼굴에 상처를 입고 곧장 병원을 찾는 경우에도 진료를 못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형외과 진료를 하는 또 다른 종합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쪽 병원도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전화로 확인을 해보고 가세요."
"그럼, 그 병원에도 성형외과 진료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만약, 그 병원에서도 진료를 하지 않으면 그냥 저희 병원 응급실로 가서 봉합하셔야 됩니다."
"응급실에서 성형외과 진료를 해주나요?"
"아니요, 응급실에서는 일반외과 봉합 수술을 해줄 겁니다."

세상에. 아이가 다쳐서 얼굴에 난 상처를 꿰매려고 하는데, 인구가 100만이나 되는 이 큰 도시에서 성형외과 진료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참 황당하고 기가 막히더군요.

다행히, 다른 종합병원에 전화를 하니 성형외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신 예약환자가 많기 때문에 곧장 와서 접수를 하더라도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3시간이든, 4시간이든 기다릴 테니 걱정말고 진료나 해달라고 하였지요.

결국, 다른 종합병원 성형외과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 진료를 받았습니다. 아이 상처는 덧나지 않고 잘 아물고 있고, 흉터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지요.

미용성형만 한다는 일반병원 성형외과 좀 너무하지 않나요? 만약 성형외과가 있는 2군데 종합병원에 동시에 성형외과 진료 스케줄이 없으면 응급 환자들은 인구 100만이 넘는 이 도시 어디에서도 성형외과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참 기가 막힌 현실이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 #미용성형 #성형 #병원 #응급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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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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