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송사에 휘말릴 줄 꿈이나 꿨겠시유?"

국제 결혼 파탄난 길병씨의 하소연

등록 2010.10.27 18:23수정 2010.10.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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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잘하지, 궂은 일 마다 않지, 술·담배 하지 않지. 종합복지관에서 십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길병(41, 가명)씨는 나름 인기 있는 신랑감 후보였습니다. 그러던 길병씨도 어느덧 훌쩍 마흔 줄에 접어들자, 누군가에게 선뜻 나서서 결혼하자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넉넉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길병씨는 결국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국제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늦가을 이야기입니다.

길병씨는 노부모를 봉양하며 살기 원했지만, 부모님은 며느리가 싫어한다며 처음부터 분가를 시켜주었습니다. 길병씨는 깨가 쏟아져도 모자랄 것 같은 신혼을 기대했지만, 국제결혼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직장까지 거리가 멀어 아침 일찍 출근하는 길병씨는 아내가 잠이 깬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파김치가 다 돼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기만 할 뿐, 살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길병씨는 아내가 아직 철이 없어 그러려니 생각하고, 먼저 시집온 베트남 신부들을 만나다보면 달라지겠거니 하는 기대를 갖고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일부러 보내기도 해 봤습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결혼한 지 다섯 달이 지나면서 지치기 시작한 길병씨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다니던 복지관을 그만두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아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면, 어르신들로부터 살림이며 한국 풍습도 배우고, 부부관계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시골에도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아서 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준다는 말을 들은 길병씨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귀향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간다는 말에 아내는 며칠간 길병씨와는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며, 시골에 가기 싫다며 엉엉 울기만 해댔습니다. 길병씨는 아내가 아직 마음에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에 귀향을 잠시 미루겠다며 달랬습니다.


대신 거리 등의 문제로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늦은 저녁에 퇴근하는 복지관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요리사 자격증이 있던 길병씨는 가까운 고등학교 기숙사 급식실에 요리사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내 마음을 달래며 아내가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기만을 기다렸으나, 아내는 지난 3월에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간 후 확인한 통화 내역서에는 하루에도 십여 회씩 장시간 국내 통화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국제전화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길병씨는 아내에게 후불제 전화카드를 사 주고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핸드폰 이용 요금이 한 달에 이십만 원이 넘게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외로워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던 길병씨는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자책했지만, 다 지나간 일이었습니다.

길병씨는 집을 나간 아내의 통화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아내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억지로 데려온다 한들 마음이 떠났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제결혼이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도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모순된 시간을 여섯 달이나 보낸 후, 길병씨는 결국 자신의 고향 법원에 이혼청구를 하였습니다. 길병씨는 그렇게 지난 일을 다 잊고, 청산하고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 길병씨의 속을 긁는 일이 며칠 전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이혼청구를 했던 법원과는 다른 법원에서 소장이 날라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위자료 400만원을 청구하는 이혼청구 소장이었습니다. 모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쓴 소장에 의하면, 모르는 사람은 길병씨가 아주 죽일 놈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소장에는 '길병씨가 결혼할 때, 한국에 데려가서 대학도 보내주고, 도시에서 산다고 해 놓고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시골 간다고 직장도 그만두고, 자신은 집에 있는데 패물과 돈을 갖고 가출했다는 신고를 해서 이혼 청구를 했다'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소장을 쓴 날짜를 보니 더욱 기가 찼습니다. 체류기간 만료 하루를 남기고 쓴 것이었습니다. 가만있으면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우려한 아내가 출입국에서 체류기간 연장을 목적으로 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쓴 것이었습니다.

소장을 받아든 길병씨는 "제가 이런 송사에 휘말릴 줄 꿈이나 꿨겠시유?"하며 탄식을 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잘 아는 입장에서 소장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터라, 소장을 쓴 변호사에게 한 번 연락해 보자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길병씨는, "가만 놔 두세유. 저도 변호사 사서 그 사람 혼낼테니께"하며 울음을 삭였습니다. 길병씨가 변호사를 사서 법정에 간들 아무런 소득도 없을 싸움이란 것을 말을 해 봤지만, 길병씨는 이제껏 남에게 해코지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이런 송사를 겪는다는 사실이 억울해 죽겠다며 가슴을 마구 쳐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길병씨의 아내는 매주 일요일 한국어교실에 참석하며, 인사성이 밝아 주위에서 참 성실하다는 평을 듣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잘못을 길병씨에게 뒤집어씌우며 체류 자격 연장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더더욱 믿기지 않았습니다.

길병씨는 "이런 일은 브로커가 있는 게 분명해유. 지난번에 가출했을 때 느낀 건데, 전화내역서도 그렇고, 이렇게 체류기한 만료를 앞두고 이런 억지 소장을 쓰는 것도 그렇고, 차라리 사람을 잡으라고 그러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하며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꼬인 게 다 국제결혼 탓이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길병씨는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아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있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움을 한들 소득은 없고 마음만 상할 재판일 것이 뻔한 노릇이고 보면, 송사에 휘말린 길병씨를 돕고 싶어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길병씨는 국제결혼이 파탄나며 아내만 잃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애인이 어떤 장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까?'란 설문을 한 결과, 요리 잘하는 남자가 1위로 뽑혔다는데, 연애와 결혼은 달라도 한참 다른 모양입니다. 요리사 자격까지 있는 길병씨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국제결혼 #베트남 #이혼 #소송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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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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