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명패에 꼭 대추리라고 붙이고 말겨"

3년 7개월 만에 열린 대추리 마을 잔치... 대추리 투쟁 백서 발간 기념식도

등록 2010.11.01 18:26수정 2010.11.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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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단지 전경
이주단지 전경김연주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으로 대추리를 떠나온 지 3년 7개월. 지난 10월 30일, 구 대추리 주민 43가구가 정착한 평택 노와리 이주단지에서 '2010 대추리 마을잔치'가 열렸다(주민들이 정착한 곳은 '노와리'지만 여전히 '대추리', '대추리 주민'으로 불리기 원한다). 대추리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평택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추리 입촌식과 대추리 투쟁백서 <아! 대추리>의 발간 기념식을 진행했다.

대추리라는 이름, 절대 빼앗길 수 없어요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대추리 입촌식에서 신종원 이장은 "2007년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한) 투쟁을 중단하고 이곳 이주단지로 오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오늘 여러분들을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주민들에게 '함께 살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를 내쫓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신종원 이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주단지) 마을이 멋있다', '집을 짓고 싶거든 대추리에 가보라'는 말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는 어려운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분들은 은행에 융자를 얻고, 자식들의 도움 받으며 집을 마련했다. 왜 대추리 사람들이 쫓겨나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원망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0년 현재 벼농사를 짓는 가구는 이주단지 43가구 중 다섯 가구에 불과하며, 주민들 대부분은 공공근로를 하며 월 80-90만 원의 생계비를 벌거나, 이주단지 한쪽에 마련된 텃밭에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신 이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대추리 주민들이 떳떳하게 굳건히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앞으로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헤노코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토미야마씨는 입촌식 행사에서 "미군은 오키나와 헤노코의 아름다운 바다를 메워 미군기지를 만들려고 했다. 우리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국방부의 배를 상대로 싸웠다. 오키나와도 한국도 미군기지에 대한 싸움은 똑같다. 이곳에서 힘을 받고 오키나와로 가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멈춰 버린 콤바인이 평화 공원 한쪽에 전시 돼 있다.
멈춰 버린 콤바인이 평화 공원 한쪽에 전시 돼 있다.김연주

현재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에 위치한 이주단지에는 대추리에서 살았던 마을 주민 43가구가 입주를 마친 상황이며 마을회관과 노인정, 대추리기념관이 공사 중이다. 평화공원과 체육시설은 완공됐으나, 대추리에서 이주단지로 옮겨오기로 했던 <파랑새>, <갑오농민전쟁> 등의 조형물과 벽화, 벽시 등은 아직 설치되지 못한 상태.     


신종원 이장은 "마을 주민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곳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대추리'라는 이름만이라도 가져오고 싶지만 쉽지 않다. 원래 8월 중순 완공 예정이던 마을회관 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싸우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고, 담당자마저 바뀌기 일쑤"라며 이주단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밝혔다. 그는 "지명 변경 요구만 벌써 몇 년째다. 새로 지어지는 마을회관과 노인정에 반드시 '대추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준공식을 열겠다"고 말했다.

 잔칫날 풍물을 치다
잔칫날 풍물을 치다김연주

대추리 주민들은 이날 오랜만에 풍물을 치며 흥을 돋웠다. 새로 노인 회장에 뽑힌 방효태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꽹과리를 들었다. 대추리 이장을 지낸 바 있는 심영섭씨는 복색을 모두 갖춰 입고서 장구를 쳤다. 입촌식 행사를 앞두고 열린 마을 고사에서 구부정한 허리를 굽혀 정성스레 절을 올린 마을 주민 신광순옹(83)은 "앞으로 우리 마을이 내내, 천년이 가도록 사고 없이, 오래오래 잘 되도록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고 말했다. 신광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날마다 마을에서 나오는 폐품을 수집해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대추분교에서 풍물학교를 운영하다 2006년 5월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이후 연행되어 수원구치소에서 두 달 동안 옥고를 치른 송영민씨도 풍물 공연에 함께 했다. 대추분교 철거로 강제퇴거를 당하고 고가의 공연장비들을 모두 잃어 버리는 등 시련도 겪었지만, 지금은 '평택풍물학교 소리얼' 대표를 맡아 풍물 전수에 힘쓰고 있다. 송씨는 "앞으로 대추리 기념관이 완공되면, 이 자리에서 한 달에 한 번 풍물 공연을 열고 싶다"며 소망을 밝혔다.

오랜만의 대추리 잔치... 돼지 세마리나 잡았네

 대추리 할머니들
대추리 할머니들김연주

 대추리 투쟁 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주민
대추리 투쟁 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주민김연주

주민들이 돼지를 세 마리나 잡았다는 이번 마을 잔치는 대추리 부녀회에서 '종이가방 접기' 부업을 해서 모은 마을기금으로 치러졌다. 동네에서 '이 반장님'으로 불리는 이태헌 할아버지는 잔칫날에 먹을 김치를 위해 텃밭에서 키운 배추 20포기와 김장 무를 내놓았다. 서순희 할머니는 "대추리를 떠나와서도 항상 대추리에서 만났던 신부님들과 지킴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한다"며 "마을 잔치를 열어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대추리 투쟁 당시 마을에서 '들소리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했던 니나(예명)씨는 "마을 주민들과 만나서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현재 이주민 인권단체에서 활동 중인 그는 "현장에서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이 마을에서 나오고 나서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공동체가 파괴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을 찾아뵙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무대로 나가 '아리랑'을 불렀다
마을 주민들이 무대로 나가 '아리랑'을 불렀다김연주

이날 발간 기념식을 가진 투쟁백서 <아! 대추리>는 대추리 주민들의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기록을 엮은 것으로, 평택 투쟁 당시 행정대집행에 저항하다 두 차례에 걸쳐 구속된 바 있는 박래군 인권운동가가 글을 썼다. 박래군씨는 "역사는 누구에 의해 기록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욱한 글 솜씨로나마 대추리 주민들의 투쟁 기록을 책으로 내게 되었다. 주민 분들의 한이 클수록 앞으로는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추리 입촌식 #아!대추리 #이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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