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못 꺾은 '항쟁 기념사업'에 대한 그의 '의지'

[인터뷰] 최규만 11·8안면도항쟁 기념사업회장

등록 2010.11.07 16:04수정 2010.11.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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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만 회장은 5.16 현대장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항쟁을 진두지휘하며 승리로 이끌었다. 최 회장의 바람은 항쟁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정대희


"안면도는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런 땅을 안면도민의 힘으로 지켜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후회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이번 11·8 행사에서 다시한번 안면도민의 결집력과 힘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정부의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했던 당시 고남면핵폐기물처분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이하 고남면투쟁위) 위원장 최규만(58) 현 11·8안면도항쟁 기념사업회장은 16년만에 개최되는 20주년 기념 항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38살의 젊은 혈기로 고남면투쟁위원장을 맡았던 최 회장은 11·8안면도항쟁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그는 당시 안면도 개발의 청사진 속에 묻혀 정부가 추진하려던 핵폐기장 건설 반대의 최선봉에 서서 위기에 빠질 뻔했던 안면도를 구해낸 핵심 인물.

그는 소위 '5·16 현대장 여관 사건'(아래)으로 불구속 기소되는 시련도 겪었지만, 결국 안면도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지금도 안면도항쟁의 역사와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줄 방법을 고심하느라, 편히 잠들 날이 없다.

그는 지난 1994년 이후 명맥이 끊겨버린 11·8안면도항쟁 기념행사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준비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받은 위암 통보를 받았다. 이로인해 행사준비는 커녕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핵심 구심점이었던 최 회장이 병마와의 싸움에 들어가자 기념행사 준비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최 회장은 병원에서도 포기한 위암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식이요법 등을 잉요해 암과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위암 발견 1년 후 올해 8월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그는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암덩어리가 사라졌다는 검진 결과를 받아낸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즉시 곧바로 다시 20주년 행사준비에 돌입했다.


이 모든 것이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최 회장은 이제 안면도항쟁의 주역이란 이름과 더불어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군사정권에서 주민이 승리한 일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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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항쟁의 주역 최규만 기념사업회장 소위 5.16현대장 사건의 주역인 최 회장은 정부의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에 대항해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다. 최근 위암에서 벗어나 안면도항쟁 20주년 기념사업회장을 맡으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정대희

이렇듯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안면도항쟁의 중심으로 돌아온 최 회장은 변광인 사무처장 등 기념사업회 조직원들과 함께 본격적인 20주년 행사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 회장은 안면도항쟁에 대해 광주민주화항쟁과 빗대어 "정부의 밀실행정으로 일방적 추진하려던 핵폐기장을 주민들의 힘으로 항거를 해서 승리한 사건이기 때문에 명백한 항쟁"이라며 "중고등학생들도 순수한 목적으로 등교거부를 하면서 참여한 것이고 특히 군사정권 시기에 승리를 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항쟁을 주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 그는 잠시 침묵한 뒤 목 메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위원장을 맡고 항쟁을 하면서 장례도 치르지 말 것, 상가에도 가지 말 것, 장례용품도 사지 말 것 등 10개항을 선포했는데 선포 3일 후에 고모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직책이 위원장이다보니 찾아가보지도 못하고 기막힐 노릇이었다. 위원장이 뭔지, 왜 위원장을 맡아서 인륜까지 저버려야 했는지 회의도 많이 들었다."

최 회장은 안면도항쟁의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했던 5·16 현대장 여관 사건 이후 함께 경찰조사를 받았던 박주훈씨가 구속됐을 때도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무료변론인 33인 중 한 사람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귀띔해줬다.

1994년 4주년 행사 이후에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다가 20주년이 돼서야 다시 기념행사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그는 "안면도항쟁 이후 핵폐기장이 부안을 거쳐 경주로 가기까지 17~8년이 흘렀다"며 "내가 힘이 남아있을 때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면도의 역사속에 이 사건이 남을 수 있도록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 20주년을 기점으로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35살 아래는 안면도항쟁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라며 "기념탑과 기념관 건립을 통해 안면도항쟁의 의미와 의의가 묻히지 않도록 하고, 후세에도 알리기 위해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을 묻는 질문에 최 회장은 "지금의 안면도민들이 청정바다에서, 땅에서 잘 살고 있지 않느냐"며 "11·8항쟁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11월 8일 안면읍 터미널에서 열리는 20주년 행사에 많은 안면도민과 태안군민들이 모이는 것"이라며 "20주년 행사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결집력과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면도민, 태안군민이라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사에 스스로 참여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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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밝힌 현대장 사건의 최대 도우미는 다방종업원이었다. 다방종업원이 없었다면 현대장 306호의 문은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정대희


치열했던 1990년 11·8 안면도 반핵항쟁이 시들해지던 1992년 5월 16일, 다시 안면도항쟁의 불씨를 지피는 사건이 발생한다.

역사는 이날을 소위 '5·16 현대장 여관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주도했던 고남면핵폐기물처분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는 '서류압수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을 총 지휘했던 인물이 바로 최규만 당시 고남면투쟁위원장이다. 최규만과 박주훈, 편진범, 김종익, 전재진 5인은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2003년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박주훈은 구속, 최규만은 불구속 기소, 나머지 인원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최규만 회장이 기억하는 당시 현대장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최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이날 현대장 사건의 최대 도우미는 바로 다방 종업원이었다.

5월 16일 고남면의 한 이장으로부터 최 회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회유하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 이장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넘겨받은 최 회장은 번호의 출처를 알기 위해 4명의 정예요원을 추려 서산으로 차를 몰았다.

서산에 도착한 최 일행은 곧바로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전화번호책을 입수한 뒤 이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전하번호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전화번호 책 한 권을 샅샅이 뒤지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현대장 여관 전화번호'였다.

당시 현대장 여관은 서산경찰서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신속한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관을 습격하기 전 작전을 짜야 했는데, 때마침 등장한 인물이 바로 차 배달 온 다방 종업원이었다.

최 일행은 이 종업원에게 먼저 찻값을 계산하고 종업원을 매수한 뒤 시키대로만 말하고 돌아가라고 시켰다.

"똑똑"
"누구세요?"
"커피왔어요."

그렇게 현대장 여관 306호실의 문이 열렸고, 최 일행은 이를 틈타 2명이 비밀작업 중이던 원자력환경연구센터의 핵폐기장 유치 관련 서류를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관방은 깨진 소주병 파편과 피로 얼룩지게 되고 서류를 확보한 최 일행은 신속히 여관을 빠져나온다.

여기까지가 오후 10시의 상황으로 최 일행의 목적은 본래 핵폐기장 관련 서류보다 저들에게 매수된 연명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밀서류는 물론 연명부까지 손에 쥐게 된 최 일행은 신고를 받은 연육교 인근의 안면파출소로부터 강한 저지를 당하지만 "우리는 안면도 열사여!"라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빼온 서류도 최 회장의 재치로 긴급 복사를 한 탓에 원본은 경찰에게 넘겨줬지만 자료는 모두 손에 넣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안면도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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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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